코리아디스카운트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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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디스카운트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2.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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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2024년 들어 금융당국이 한국 자본시장의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코리아디스카운트’란 한국 주식시장에 있는 기업의 시가총액이 해외 주식시장에 속한 동류 기업과 비교하여 본래 적정 가치보다 부족한 현상이다. 특히 기업의 영업력, 자본력 등이 우수함에도 외국 주식시장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한국 증권시장에 속한 기업의 주식가격이 낮게 형성되는 것을 지적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 원인에 대해서는 한반도가 휴전 상태라는 지정학적 요인이 대표적이며, 자본 자유화를 방해하는 제도적 요인과 ‘재벌’이라는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인 기업 경영 행태가 지적됐다.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존재는 주식시장에서 자주 쓰는 평가지표인 PBR(price book value ratio, 주가 자산가치 비율)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론을 증시 분석가는 가치평가(valuation)로 부른다. PBR은 기업이 당장 영업을 정지해도 매각할 수 있는 순자산 가치에 대한 투자자의 평가를 얘기한다. 그런데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계가 소속한 증권시장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가격을 달리한다는 코리아디스카운트의 논리는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이유를 찾자면 이렇다. PBR 분모인 주식가격은 해당 시장 투자자가 거래할 의사가 있는 가격이다. 투자자가 시장에서 거래하는 가격은 기업의 영업활동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크기와 그 지속 가능성, 성장 이외에 영업활동에 미치는 외부적 요인 등이 포괄적으로 기업의 적정한 가치에서 가산(premium) 또는 감산(discount)하여 최종적으로 실현된다. 즉, 가격에는 정량적, 정성적인 복합적 요인이 반영되는데, 특정 투자자 1인이 이 모두를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수많은 투자자가 거래를 반복하며 거래를 위한 탐색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가격에 반영된다. 특히 시장에는 기관투자자와 한국시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외국인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더욱 정밀한 정보를 가격에 반영한다. 가격은 일종의 주식시장 참여자의 집단 지성과 감성이 구현하는 현상이며, 코리아디스카운트도 같은 현상이다.

자료 1.
자료 1.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자본시장 정책과제 추진 방향>을 발표했는데, 한국증시의 PBR은 1.05배로 신흥국 평균 1.61배에 뒤지며, 선진국 평균의 3.1배에는 3분의 1 수준, 미국에는 무려 4분의 1 이상 할인되었다. 주가수익비율(PER) 기준으로도 한국증시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기업이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주는 PER은 과거는 물론 미래 추정 수익을 기준으로 산출할 수 있어 좀 더 세밀한 투자자 평가를 확인할 수 있다. 자료 1의 표2에 따르면 한국증시 PER은 과거 5년 수익 기준으로는 물론 향후 12개월 후 예상 수익 기준으로도 가치평가 열세가 고착하고 있다. 즉 한국시장 투자자는 과거는 물론 미래에도 한국증시 디스카운트를 스스로 해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총선거가 가까워진 연초부터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민심 잡기에 적절한 주제로 판단하고 금융당국이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자료 2. /출처=금융위원회
자료 2. /출처=금융위원회

과거 오랫동안 코리아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두 가지 원인은 ‘남북 대치에 따른 전쟁위험’과 ‘비효율적 경영의 대명사인 재벌’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론이 없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한국증시의 선진국 지수 편입을 검토할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에 관한 제도적 차별을 장애물로 지적하는데, 연초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정책과제 추진 방향>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개선하겠다고 제시한 방안도 주로 자본시장 제도를 수정하겠다는 것이어서 MSCI와 기본 입장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차근히 생각해 보면 재벌 이외 디스카운트 요인은 영향력에서 우선순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미국 다음 군사력 초강대국 중국과 대치하며 어떤 면에서 한국증시보다 지정학적 위험이 더 큰 타이완은 PBR이 두 배 이상 높고, 다른 신흥국과 비교해 한국증시가 자본 자유화에서 크게 후진적이라 단정할 수 없어 제도적 요인은 보완할 요인이지 시급한 필수 불가결 요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결국 지정학적 불안과 제도적 불편의 요인보다 본질적으로 한국 기업의 성격을 규정하는 ‘재벌’ 문제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미 ‘재벌’ 문제에 대해서는 외국 언론이나 경제전문가가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그럼에 불구하고 이번 금융위원회 보고서에서 보는 것처럼 정부나 제도권 경제학자가 재벌을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적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신흥국 경제개발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정경유착이 후진국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력이지만 부패 등으로 곧 한계로 작용함을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빅 푸시’ 경제개발 전략으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경제성장에 이바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재벌이 정권과 언론을 비롯한 사회 지배층 권력과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며,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특권층 관계화(關係化) 과정이 지속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금융당국의 코리아디스카운트 처방이 제도적 요인에 국한하고 ‘재벌’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지 않다.

자료 3. /출처=Palliser capital
자료 3. /출처=Palliser capital

그러나 최근 한 재벌의 경영 지배권에 관해 내놓은 사법부의 판단을 보고 필자는 더 깊은 곳에 존재하는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을 관찰한 것 같아 우려를 넘어 공포를 느낀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부정에 관한 1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의 손을 번쩍 들어 줬다. 이전에 국정농단 사건 등에서 대법원 판례 등에 담긴 재판 논리가 정면으로 뒤집히며 이재용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부터 시작한 승계전략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 회장은 십수년 대를 이어 공들인 ‘빅 픽처’를 완성했다. 이 회장이 오랜 법적 구속에서 벗어날 것을 예견했는지 삼성그룹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의 주가는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올해 1월 중순부터 상승하며 설 이전에 15만원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아직 삼성물산 주가는 승계전략 구체화 직전인 2015년 5월 전 고점(21만5000원)보다 마이너스 27%를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회장 승계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는 오랜 기간 저평가를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Palliser capital)은 삼성물산이 인수합병 이후 심각하게 본질적 가치에서 벗어나 저평가받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사법적 판단과 시장의 판단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사법부 재판 논리를 논박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 밖이며, 독립적 재판은 헌법상의 권리이므로 이의제기 자체가 부질없다. 다만 이번 삼성 재판 결과는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고 경계를 할 뿐이다. 앞으로 기업들은 (저렴한 승계를 위해) 건전하고 혁신적 경영 추구보다도 정권과 사법, 그리고 언론과의 탄탄한 유착 네크워크 만들기를 추구할지 모른다. 이를 통해 극단적인 경제 집중에도 한국 경제에서는 머리 좋은 법률가, 회계사를 고용하면 무리 없이 이익을 지키고 초저비용으로 승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다음 승계 작업에 들어갈 자신감을 얻었음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삼성 재판은 한국 사회에 정경유착을 넘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촉진하는 사법적 인프라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키며,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한국사회 현상이므로 결코 수정하기 쉽지 않다는 인식을 글로벌 투자자에 확산할 수 있다. 즉 삼성재판은 코리아디스카운트에 지금까지는 부정하고 싶었던 ‘회색 코뿔소’가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는 적확한 표본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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