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엔론’ 없다?… 신용위험평가 믿어도 될까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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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엔론’ 없다?… 신용위험평가 믿어도 될까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2.2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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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9·11 테러의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2001년 12월 2일, 분식회계의 대명사 엔론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신용평가 회사들은 엔론이 문을 닫기 직전까지도 ‘투자적격’ 등급을 매겼다. /사진=픽사베이
9·11 테러의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2001년 12월 2일, 분식회계의 대명사 엔론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신용평가 회사들은 엔론이 문을 닫기 직전까지도 ‘투자적격’ 등급을 매겼다. /사진=픽사베이

“내 노후 자금인 회사 주식이 휴짓조각이 돼버렸다.”

9·11 테러의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2001년 12월 2일, 연간 매출 1000억달러인 미국의 에너지기업이 파산보호를 신청합니다. 퇴직연금 대부분을 자사 주식에 투자한 정규직 2만2000명은 넋을 잃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기 직전까지 신용평가 회사들이 ‘투자적격’ 등급을 매겼으니 충격은 갑절에 달합니다. 분식회계의 대명사 ‘엔론’ 이야기입니다.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과 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정기 신용위험 평가는 등급(A~D)에 따라 C등급은 채권단의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 등 자체 회생절차로 처리된다. /자료=금융감독원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과 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정기 신용위험 평가는 등급(A~D)에 따라 C등급은 채권단의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 등 자체 회생절차로 처리된다. /자료=금융감독원

‘신용평가’. 기업의 각종 살림살이를 바탕으로 빚 갚을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는 일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특히 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은행은 해마다 기업의 부실을 미리 막으려, 신용위험을 평가합니다. 신용평가 결과는 A(정상), B(일시적 유동성 위기), C(구조적 유동성 문제가 있으나 회생 가능), D(정리대상) 등 4단계로 나뉩니다.

올해 정기 신용위험 평가 C·D 등급인 부실징후기업을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 3, 중소기업 157개이다. 지난해보다 대기업은 1곳 줄고, 중소기업은 4곳 늘었다. /자료=금융감독원
올해 정기 신용위험 평가 C·D 등급인 부실징후기업을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 3, 중소기업 157개이다. 지난해보다 대기업은 1곳 줄고, 중소기업은 4곳 늘었다. /자료=금융감독원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채권은행의 2021년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 조사대상 3373개(대기업 639, 중소기업 2734개) 가운데 160개 기업이 C·D 등급인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됐습니다. 부실징후기업을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 3, 중소기업 157개입니다. 지난해보다 대기업은 1곳 줄고, 중소기업은 4곳 늘었습니다.

정기 신용위험평가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금융권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과 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채권은행이 해마다 재무 및 영업위험 등을 따져 부실징후기업을 선별합니다. 평가등급(A~D)에 따라 C등급은 채권단의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 등 자체 회생절차로 처리됩니다.

부실징후기업 157곳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대기업 3곳과 중소기업 76곳은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입니다. 나머지 중소기업 81곳은 법정관리 등 퇴출 대상인 D등급입니다. C등급은 1년 전보다 12개 늘었고, D등급은 8개 줄었습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만기 연장이나 상환유예 등 유동성 지원 조치, 기업 실적개선 등이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실징후기업을 업종별로 보면 금속가공이 가장 많고, 기계장비, 자동차부품, 철강업이 뒤를 이었다. /자료=금융감독원
부실징후기업을 업종별로 보면 금속가공이 가장 많고, 기계장비, 자동차부품, 철강업이 뒤를 이었다. /자료=금융감독원

부실징후기업을 업종별로 보면 금속가공이 21개로 가장 많고, 기계장비(17개), 자동차부품(16개), 철강(11개) 순이었습니다. 이들 160개 기업의 신용공여액은 모두 1조3000억원으로, 은행권이 8000억원을 차지했습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이 추가로 쌓아야 할 충당금은 1124억원으로,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입니다.

금감원은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기업에 대해 자구 계획 수립과 이행 및 채권단 금융지원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추진할 것”이라며 “미신청 기업에 대해서는 채권은행이 사후관리를 강화하도록 지도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신용위험 B등급 기업에 대해서는 채권은행이 적극 지원하도록 유도해 나간다는 방침입니다.

내년 경영 환경이 올해보다 좋아질 것으로 보는 중소기업은 10곳 가운데 2곳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중소기업중앙회
내년 경영 환경이 올해보다 좋아질 것으로 보는 중소기업은 10곳 가운데 2곳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중소기업중앙회

한편 부실 징후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수치와 달리,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22~26일 500개사를 조사한 결과, 내년 경영환경이 좋아질 것이라 보는 중소기업은 15.4%였습니다. ‘현재와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이 65.8%로 가장 많은 가운데, ‘악화’할 것으로 보는 응답도 18.8%였습니다.

내년에 예상되는 주요 애로사항은 원자재가격 상승을 39.0%로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또 내수 부진(26.0%), 인력수급 곤란(21.8%) 등도 작은 기업들이 걱정하는 문제였습니다. 내년 정부가 가장 힘을 써야 할 정책은 ‘적극적인 금융 및 세제지원’(41.6%)을 꼽았습니다. 이밖에 내수 활성화(36.8%)와 인력 수급난 해소(26.8%)도 필요한 정책이었습니다.

작지만 앞날이 밝은 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부실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사진=픽사베이
작지만 앞날이 밝은 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부실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사진=픽사베이

‘상시적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엔론이 파산하던 해인 2001년 8월 국회에서 처음 공포되었습니다. 작지만 앞날이 밝은 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부실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도 필요합니다. 한 누리꾼의 말처럼 ‘한국판 엔론’이 숨어 있지 않은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때입니다.

“2년간 빚 안 갚고 만기 연장 핵폭탄 260조. 3월 말 이후 분할 연장 만들고 몇번 넣다가 도저히 못 넣겠다고 배 째라 할 게 뻔하다. 이런 정책으로는 내년 후반기 우주 핵폭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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