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억소리’ 어린이 집부자와 ‘황구첨정’
상태바
[사자경제] ‘억소리’ 어린이 집부자와 ‘황구첨정’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2.05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자료=국토교통부
/자료=국토교통부

“고령(高靈·경북 고령)은 한낱 작은 고을인데 군액(軍額·군용으로 쓸 곡물의 양)의 많음이 큰 고을과 같아서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의 폐단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조선 숙종 28년(1702년) 4월 4일, 경북 고령에 사는 유생 정재송 등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입니다. 숙종실록에 따르면 같은 해 7월 4일에는 전국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같은 달 30일에는 큰 비가 내려 2208호의 집이 떠내려가고 238명이 익사하거나 압사했다고 전합니다.

이처럼 어려운 조선 후기, 군역(16~60세 남성이 군대에 가야 하는 의무)을 편법으로 면제받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지역에 할당된 군포(군역을 대신해 내는 옷감)를 징수하기 위한 관서의 횡포도 상상을 초월하게 됩니다.

이미 사망한 군역 대상자(백골·白骨)의 가족에게서 군포를 거두기도(징포·徵布) 하고, 심지어는 16세 미만의 어린 아이(황구·黃口)를 군역 장부에 올려(첨정·簽丁) 그 가족들에게 군포를 징수했습니다. ‘황구’는 새 새끼의 주둥이(口)가 노랗다(黃)는 뜻에서, ‘어린아이’를 일컫습니다.

2018년 우리나라 조세부담률(국민총생산 대비 조세총액 비율)은 21.2%로 OECD 회원 33개 국가 가운데 일부 개발 도상 국가를 제외하고 7번째로 낮습니다. 하지만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조세 저항’은 매우 강합니다. 이는 황구첨정과 백골징포로 대변되는 조선시대 세정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역별 '부동산 이상 거래'. /자료=국토교통부
지역별 '부동산 이상 거래'. /자료=국토교통부

어제(4일)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서울시 등 합동 조사팀은 지난해 8∼10월 서울에서 신고된 주택 거래 1333건에 대한 조사를 벌여 절반에 달하는 670건을 탈세 의심사례로 분류하고 국세청에 통보했습니다.

합동조사팀은 지난해 6월 서초구의 아파트를 10억원에 구입한 20대 A씨의 경우를 대표적인 편법 증여 의심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A씨는 구청에 제출한 주택구매 자금조달계획서에서 집을 부모에게 전세로 제공하고 받은 보증금 4억5000만원에 금융기관 대출 4억5000만원을 보태고, 나머지 1억원은 자신의 통장에서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10억원짜리 집을 샀는데 본인 돈은 1억원밖에 쓰지 않은 A씨는 부모에게 전세를 준 집에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전세 계약을 하기 2개월 전에 부모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부동산 투기와 탈세행위를 싸잡아 성토하고 나섰습니다.

“투기꾼들 편법 증여하는 것들 싹 잡아라” “탈세는 철저하게 뿌리뽑아 주세요” “괘씸죄로 양도소득세 따블로 징수해라” “30살미만 10억이상 집 있는 사람들 다 조사해봐라 문제 많다. 학교 다니고 군대 갔다 와서 로또 맞았냐. 남자들 4년제 대학에 군대하면 26살, 27살이다. 연봉 3억짜리 회사에 들어가서 집 구입했냐?. 보증금 끼고? 부모에게 빌려?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딱 봐도 탈세구만”.

임대사업자 등록현황. /자료=정동영 국회의원실
임대사업자 등록현황. /자료=정동영 국회의원실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가 정동영 의원에게 제출한 ‘임대사업자 등록현황’ 자료에 따르면, 인천에 사는 열살배기가 19채의 임대주택을 등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료에는 10대 미성년자 30명이 가진 임대주택이 174채에 달했고 특히 10대 임대사업자의 절반가량은 강남3구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숙종 28년 8월 10일 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근래 사대부로부터 하천(下賤·신분이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사치하고 큰집을 짓고 있다 하여 한성부와 오부(五部·한성부 사람들의 위법사항 등을 관장하던 다섯 관서)로 하여금 이를 엄히 금단(禁斷·어떤 행위를 딱 잘라 금지함)하게 하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