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To. 우리은행 ‘비번도둑’… “니네은행으로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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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To. 우리은행 ‘비번도둑’… “니네은행으로 바꿔라”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2.06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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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사진=우리은행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사진=우리은행

‘남산골 한 늙은이 고양이를 길렀는데 / 해묵고 꾀 들어 요사하기 늙은 여우로세
밤마다 초당에 둔 고기 뒤져 훔쳐 먹고 / 항아리며 단지며 술병까지 다 뒤지네
어둠 타고 살금살금 못된 짓 다하다가 / 문 박차고 소리치면 그림자도 안 보이나
등불 켜고 비춰보면 더러운 자국 널려 있고 / 이빨자국 나 있는 찌꺼기만 낭자하네.
…(중략)…
그런데 너는 지금 한 마리 쥐도 잡지 않고 / 도리어 네 놈이 도둑질을 하다니’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인 1810년에 지은 시 ‘이노행(貍奴行)’의 내용입니다. ‘이노’는 고양이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고 ‘행’은 한시의 형식인 ‘체(體)’의 하나입니다. 백성인 ‘남산골 늙은이’의 양식을 훔치는 도둑(쥐)을 잡으라고 키운 고양이(탐관오리)가 되레 도둑질을 한다는 우화입니다.

‘비번도둑’. 남의 ‘비밀번호’를 훔치거나 빼앗는 따위의 나쁜 짓을 하는 사람. 새로 생긴 말들을 모은 신조어사전이나 포털의 오픈사전에 등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제(5일) 우리은행은 2018년 일부 영업점 직원들이 고객 인터넷·모바일뱅킹 비밀번호를 동의 없이 바꾼 것과 관련해 금감원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1년 이상 거래가 없는 비활성화(휴면) 계좌 고객의 온라인 비밀번호를 임의로 바꿔서, 고객이 새로 접속한 것처럼 꾸몄습니다. 직원들이 핵심성과지표(KPI) 점수를 따낼 목적으로 고객 개인정보를 악용한 것입니다.

우리은행은 이에 대해 “2018년 7월 자체적으로 적발했고 모두 시정 조치했다”라면서 2만3000여건 정도로 피해규모가 알려진 언론 보도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금감원 검사 결과는 달랐습니다. 우리은행은 2018년 10월 경영 실태 평가 당시 2만3000여건을 적발했다고 보고했지만, 이후 금감원이 1만7000건 가량을 추가로 적발해냈습니다.

은행별 휴면계좌 잔액.(단위 백만원) /자료=김병욱 의원실
은행별 휴면계좌 잔액.(단위 백만원) /자료=김병욱 의원실

고객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무단으로 이용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가능성이 큽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9조와 전자금융거래법 제26조 위반일 경우 각각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당장 ‘우리은행 불매운동’에 나설 기세입니다.

“지금 해지하러 간다” “은행이 가장 해야 할 소양을 무시했네요. 우리은행 계좌 유지하는 분들은 호구 인증” “은행이 고객정보를 털면 그건 끝난 거다. 그 은행은 문 닫는 게 맞다” “불매운동 들어갑시다. 이런 XXX은행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습니다” “이름부터가 무슨 우리 은행이야 니네 은행으로 바꿔라”.

전수 조사와 함께 책임자 사법처리 촉구도 빠지지 않습니다.

“전수 조사해서 실적 올린 직원 징계해라. 책임자는 사법처리하고”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나? 도덕적해이가 지나치다.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와... 할 말을 잃었다... 소름끼친다... 직원 반드시 형집행 받아야 된다”.

자신이 겪은 경우를 이야기하며 이익만 쫓는 은행을 나무라기도 합니다.

“설마... 나 우리은행 안 쓰다가 돈을 우리은행으로 받아서 뱅킹 들어갔는데 비밀번호가 틀리다는 거임;; 내가 암만 오랜만이라고 해도 쓰는 비밀번호가 딱3개인데 안됨. 그래서 결국 우리은행 찾아갔고 30분 넘게 기다려서 비밀번호 바꾸고. 이체하고 옴;;;; 이게 얼마전 일인데” “이러고들 성과급잔치들을 하셨어요?”.

4대 시중은행 사망자 명의 예금계좌.(2019년 9월 기준) /자료=전해철 의원실
4대 시중은행 사망자 명의 예금계좌.(2019년 9월 기준) /자료=전해철 의원실

지난해 10월 전해철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에 남아 있는 사망자 명의의 요구불·저축성 예금계좌는 총 549만7227개이며 잔액은 5817억2978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 최근 1년간 여전히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계좌는 7만1933개, 이들 통장에서 거래된 금액은 3529억3131만원에 달합니다.

계좌 주인이 사망한 뒤에도 거래가 이뤄진 것은 가족이 계속 이용하거나 이른바 ‘대포통장’ 등 금융범죄에 이용된 것으로 의심됩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이 2년 전 실태조사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제대로 고쳐지지 않은 것입니다. 당시 감사원은 새로 개설된 계좌도 989개(12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남산골 늙은이가 애지중지 키운 ‘고양이’가 지켜야 할 것은 실적쌓기용 휴면계좌 비밀번호가 아니라 여전히 방치하고 있는 7만개가 넘는 사망자 명의의 계좌입니다. 오늘도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산골 늙은이가 ‘우리은행 고양이’에게 준엄히 말합니다.

‘하늘이 너를 낼 때 본래 무엇에 쓰렸더냐? 너에게 쥐를 잡아 백성 피해 없애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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