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그 많은 ‘마스크’는 어디로 다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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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그 많은 ‘마스크’는 어디로 다 갔을까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1.3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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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내가 10년을 작정하고 공부를 마치려 했는데, 7년 만에 끝내야 되다니…. 사나이로 태어나서 한번 마음먹은 일을 도중에 꺾게 되다니 안타깝고 섭섭한 일이로다.”

박지원의 소설 속 주인공 ‘허생’은 생활고를 호소하는 아내에 못 이겨 ‘장사’의 길에 나섭니다. 한양의 갑부 변부자에게 1만냥을 빌린 허생은 요즘 말로 대박을 터뜨립니다. 그의 대박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장사 별 것 아니더군. 과일장사로 번 돈 10만냥으로 호미·낫·베·무명 등을 사서 제주도에 가서 파니 수만냥이 또 불더군. 이 걸로 제주도 말총을 가져와 곱곱곱으로 파니 100만냥이 되더군. 거 참 쉽지 않은가.”

1만냥이 100만냥이 된 허생의 놀라운 수익률, 그 비결은 바로 ‘매점매석(사재기)’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상품 아이템들인 과일·호미·낫·베·무명·말총 등을 모두 사들였다 비싼 값에 되팔아 차익을 남긴 것이었습니다.

훗날 부자가 된 비결을 묻는 변부자의 질문에 허생은 ‘매점매석’을 통해 돈을 벌었으며 조선은 외국과 무역이 없고 수레가 통용되지 않는 까닭에 매우 손쉬웠다고 답합니다. 그러면서 ‘매점매석’은 백성들을 못살게 하는 방법이므로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입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2번째)이 지난 23일 인천공항검역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2번째)이 지난 23일 인천공항검역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매점매석(買占賣惜)’. 특정한 상품의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것을 예상하여 그 상품을 한꺼번에 많이 사 두고 되도록 팔지 않으려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매점매석’으로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경기도의 마스크 생산 공장 앞에는 새벽부터 중국 등 각지에서 온 외국인 바이어들과 한국인 중개상들이 많게는 수십억원씩 현금을 들고 모여든다고 합니다. 제품을 대량 선점하기 위해서입니다.

온라인에서도 구매열풍은 뜨겁습니다. 한 커뮤니티에는 “중국 거래처에 보낼 마스크를 구한다”라며 웃돈을 얹어 사겠다는 이도 나타났고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마스크 가격을 하루 새 몇 배씩 높여 파는 얌체족까지 등장했습니다.

폭리를 목적으로 물품을 사재기하거나 판매를 기피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업체들이 짬짜미로 마스크값을 올리다 적발되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과 매출액의 10%까지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정부도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이 같은 시장질서 교란 행위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달 초까지는 ‘매점매석 행위 금지’ 고시도 만들 계획입니다. 이처럼 마스크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자 누리꾼들도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시민의 불안을 이용하여 폭리를 취하는 제조 및 판매 업체는 정말 엄벌에 처해야 한다” “마스크 업체들 3월 중순까지 중국이랑 계약했다잖아 그것부터 계약 파기해” “지금 상황에서는 버는 것보다 벌금이 더 쌀 수도 있음” “국가비상사태는 마스크공장 정부에서 관리·감독해야 한다. 총 제조수량 판매 공개하라” “인터넷 쇼핑몰 가봐라. 다 품절이고 가격도 몇십만원대 말이 되냐. 벌금 왕창 때려라”.

한편 중국 위생건강위원회는 지난 27일 전국 31곳의 성을 대상으로 의료약품을 불법적으로 매매 또는 고가에 판매하려는 이들에게 최대 300만위안(우리 돈 5억원)의 벌금을 내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고 합니다.

/자료=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
/자료=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

사마천이 지은 중국의 역사서 ‘사기’에는 모두 70편의 열전(여러 사람의 전기를 차례로 벌여서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그 중 69번째가 부자들의 철학에 대한 기록인 ‘화식열전’입니다. 화식열전에 나오는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책사 계연은 왕인 구천에게 이렇게 간합니다.

“쉽게 저장할 수 있는 물건을 견실하게 비축하되 지나치게 오래 보관하지 않음으로써 자금 회전을 쉼 없이 해야 합니다. 만약 상품의 교역을 진행할 때에는 쉽게 부패하거나 부식되는 물자는 절대로 오래 비축하지 말 것이며 특히 희귀한 물건을 쌓아놓고 이익을 노려서는 안 됩니다.”

공포심을 팔아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을 보면 오래된 책 속에서 허생이 튀어나올 듯합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돈 버는 매점매석은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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