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 달, 다사다난했던 검은 토끼해를 보내야 하는 연말에 한 금융상품 때문에 시장이 시끄럽다. 바로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Equity Linked Security)이 그 장본인이다. 홍콩H지수의 정식 명칭은 항셍중국기업지수(HangSeng China Enterprises Index)이며, 중국 국영 기업들 가운데 알리바바, 텐센트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우량기업 50개 기업을 포함하는 대표 주가지수이다. 이 홍콩H지수의 변화 패턴을 기초로 일정한 수익을 약속하는 ELS에 투자한 사람 대다수가 수익은커녕 손실이 발생할 처지가 되어 금융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일반인은 보통 주가가 오른 후 그 과실로 수익이 발생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문제가 된 홍콩H지수 ELS는 이러한 투자자의 상식을 뒤튼다. 2021년부터 금융회사가 대량 판매한 ELS는 홍콩H지수가 하락할 때를 가정하여 일정 수익을 약속했다. 자료 1은 최근 하이투자증권이 판매한 ELS와 유사한 사례다. 하이투자증권은 난리가 난 이후에도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하는 유일한 증권사다. 자료 1의 ELS 손익구조에서 보는 것처럼 기초자산 하락 폭이 6개월 단위로 일정 수준 미만에 있으면 약속한 연수익률 기준으로 수익을 지급하며 ELS를 조기 상환한다. 이를 스텝 다운형 ELS라고 한다. 물론 최대 손실률이 100%라는 등 위험도 상단에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 금리의 2배 이상 수익률과 조기상환이라는 조건에 대형 은행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면,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고위험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ELS는 고수익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투자자 기억에서 탈바꿈한다. 여기에 은행원이 유리한 수익 조건은 큰 소리로 강조하고, 손실은 작은 소리로 말하면 투자자 스스로 ELS 상품 가입을 예금한 것처럼 믿게 된다. 2021년 은행이 나서서 실제로 이러한 심리적 트릭을 대거 벌이자, 만기가 다가오는 2024년 심각한 금융 불안 사태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ELS 판매 통계는 한국예탁결제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발행액은 지난 10월 말 기준 26조원에 이르며, 연말까지 2개월이 남아있어 연간 발행 총액은 지난해 수준인 28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앞서 2021년에는 49조원의 ELS가 발행됐는데, 이 중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의 미상환 잔액은 약 21조원이며, 3년 만기가 닥치는 시점인 내년 5개 대형 은행의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은 무려 12조3319억원이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 6조7526억 ▲신한은행 2조3360억 ▲NH농협은행 1조8018억 ▲하나은행 1조4002억 ▲우리은행 413억원 순이다. 이들 홍콩H지수 ELS는 상품별로 조건이 다양하므로 얼마나 손실이 발생할지 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경제 억제, 중국의 고질적 그림자 경제 탈피를 위한 부동산 규제 등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홍콩H지수 반등 기대는 희박하다는 전문가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 상반기 5대 은행의 홍콩H지수 ELS 만기 예정액 8조4100억원에서 10%만 손실이 발생한다고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피해 규모는 8000억원이 넘는다. 2019년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DLF(파생결합펀드) 총판매액 규모가 795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금융시장이 떠들썩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당국이 감독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우려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일부 언론은 2019년 DLF 손실 사태로 은행의 ELS, DLF 등 파생상품의 판매 총량을 2019년 말 판매액 수준에서 제한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KB국민 13조, 하나 6조, 신한 5조, 우리 4조, NH농협은행 3조원의 판매 잔액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기형적인 판매 잔액 여유가 현재의 KB국민은행에 쏠린 홍콩H지수 ELS 문제로 귀결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코스피200, S&P500, 유로 스톡 50, 홍콩H지수, 니케이225 등 한국과 대륙별 선진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5개 대표 주가지수만 ELS 등 고난도 금융 상품이 취급하도록 했다. 과거 DLF 손실 사태가 독일 국채금리 및 영국·미국 CMS 등 생소한 기초자산에 근거한 금리파생상품이었기 때문인데, 이 5개 지수 가운데 유독 홍콩H지수가 인기를 몰아갔다. 왜일까?
홍콩H지수의 지난달 말 시가총액은 약 2531조원(15조HKD)이다. 중국 증시는 중요한 글로벌 투자 대상이므로 홍콩H지수는 지수 구성 종목의 직접투자는 물론 선물, 옵션, ETF, 장외파생 상품 등을 통해 시가총액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포지션을 전 세계 금융시장의 기관투자가, 펀드, 연금, 개인투자자가 보유한다. 문제는 자료 3에서 보는 것처럼 홍콩H지수의 변동성이 심하다는 점이다. 2008, 2015, 2020년에 홍콩H지수는 2분의 1 또는 4분의 1까지 폭락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중국 증시 투자자는 중국 증시가 50% 이상 급락할 때를 대비하여 상당한(예를 들면 미국 국채금리 3~4배 이상) 비용이 들더라도 헤지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헤지를 위해서는 대표적으로 장내 파생상품인 선물을 매도하거나 풋옵션을 사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유용한 방법이 장외 파생상품인데 대표적인 것이 ELS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즉, 펀드·연금·기금 등에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증권사는 고객인 기관투자가의 수요를 만족하기 위해 중국 증시의 추락 위험에 대한 프리미엄을 금융 공학으로 계산하고, 일정 범위 내에 주가가 머물면 시중 금리 대비 몇 배의 수익을 지급하는 스텝다운형 ELS를 제조한다. 이를 증권사, 자산운용사, 은행 등이 각자 금융업에서 허락하는 상품에 담아 판매한다. 예를 들어 ELS를 펀드에 담으면 ELF, 은행이 신탁 상품화하면 ELT라는 명칭이 붙는다. 앞에서 홍콩H지수의 변동성을 확인했으므로 홍콩H지수 ELS의 고정 수익 지급 약속을 해제하고 지수 평가에 따라 손실이 발생하는 기준(녹인 배리어)이 왜 40~50%에 이르는지 대략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H지수 ELS를 사는 순간 그 고객은 헤지 필요성이 있는 투자자에게 풋옵션을 파는 효과가 있고, 그 반대편 투자자는 풋옵션을 사는 효과를 본다. 자료 4는 이러한 ELS 수요와 공급 구조를 해부해 본 것이다. 풋옵션이란 미래에 기초자산을 지정가격(행사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이므로 풋옵션을 산 사람은 행사가격 이하로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시장에서 싸게 사고 풋옵션 매도한 상대에게 팔면 차익이 발생한다. 풋옵션을 판 사람은 반대 처지로 처음 풋옵션을 팔 때 대가(프리미엄)를 받고 가격하락 위험을 무한대로 지게 되는 무시무시한 운명에 처한다. 그러나 ELS는 처음 대가(프리미엄)를 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지급하고 무한대 위험을 지는 풋옵션 매도 행위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홍콩H지수 ELS의 손실 공포는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자료 3에서 보는 것처럼 2008년과 2015년, 중국 증시 주가 폭락기에 ELS 손실 사태가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 당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투자자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런데 언제나 ELS 손실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새로운 일마냥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만약 투자자가 홍콩H지수 ELS에 가입하는 것이 바보처럼 풋옵션을 무보수로 판매하는 행위인 것을 알았다면,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을까? 자학이 취미이거나 영화 <메멘토>에 나오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아니라면 투자자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한편 금융회사는 위험이 크면 기대 이익을 높게 제안해 고객을 유인하는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 수 있고, 금융회사는 수수료나 보수로 이익을 획득한다. 금융회사에 홍콩H지수는 정말 효자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기대손실을 기대수익으로 바꿔 인간의 ‘손실 회피’(Loss Aversion) 경향을 망각하게 하는 장치까지 장착한 홍콩H지수 ELS는 글로벌 투자 은행에 IB와 소매금융 양측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고, 그 먹이사슬 끝단에 자기 고객들을 갖다 바치려는 국내 증권사, 은행 등이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포식자들 앞에서 금융에 무지한 금융소비자가 가련한 신세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먹이사슬 끝단의 고객을 갖다 바치는 은행
은행은 고객의 자산을 지켜주는곳이라고 생각한것이 잘못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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