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금융 피해 예방, 제대로 된 소비자 금융교육부터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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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 금융 피해 예방, 제대로 된 소비자 금융교육부터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4.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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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다음 문장의 빈칸이 무엇인지 알아 맞춰보자. 상품도 없고 벌칙도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말이다. “△△△△△은 필수적인 삶의 기술이다” “△△△△△은 사람의 삶과 기회, 성공에 중요한 격차를 만든다. 그것은 웰빙과 기업가 정신, 사회적 성공 가능성(mobility), 포용 성장의 초석이다”.

갑자기 이런 질문에 맞닥트린 독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힌트를 주자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중점 정책과제로 밀고 있는 사업이다. 나도 모르는 가운데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금융당국은 이러한 국제적 변화추세에 형식적으로 대응하고 금융산업은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힌트가 독자에게 더 혼란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자료1(출처-OECD)
자료1(출처=OECD)

빈칸을 채울 용어는 바로 ‘금융이해력(Financial Literacy)’이다. OECD 각 정부는 벌써 20여 년 전인 2002년에 금융이해력의 중요성을 인지했고,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후 회원 각국 국민의 금융교육을 위한 OECD 네트워크(OECD/INFE)를 결성했다. 앞서 제시한 문장은 2017년 OECD/INFE가 발간한 성인 대상 금융이해력 조사 보고서에 실린 내용이다. 무엇이 급해서 OECD는 금융교육을 위한 국제기구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삶의 기술이라고까지 명기한 것일까? 필자가 그 의미를 해석하자면 이 질문은 한마디로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 개인(또는 가계)가 생존과 진화를 하기 위한 기초 능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금융소비자에게만 참혹했던(금융산업은 보너스 잔치를 벌여 비난받은) 금융위기를 목격한 OECD는 금융자본의 과다한 횡포가 자본주의 질서와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고 확신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산업이 금융소비자의 금융이해력을 높이기 위한 금융교육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유다. 30년 금융 현장 경험에 비추어 보면 금융당국은 금융산업을 금융시스템과 동일시 하는 시각(금융소비자는 정책 통제 대상이거나 선거철 표밭 관리할 정책 시혜 이슈 대상이다)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금융이해력과 금융교육 의미는 녹녹지 않다.

자료2(출처=OECD)
자료2(출처=OECD)

금융소비자가 온전한 삶을 위해 금융을 이해해야 한다는 OECD/INFE의 기준은 무엇일까? OECD가 제시하는 금융이해력은 자료2의 평가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금융에 관한 지식(knowledge), 행위(Behaviour), 태도(attitude) 세 가지로 구성된다. 그러나 금융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 금융이해력과 그 요소가 왜 필요한지 정작 한국 금융시장의 국민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눈치 빠른 분은 알아챘겠지만,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에 이미 모순이 담겨있다. 한편 OECD/INFE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국에 상세한 이유와 기준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국내에서는 금융소비자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도 적극적으로‘금융이해력’을 설명하지 않는 것 같다.

자료2-1(출처=금융위원회)
자료2-1(출처=금융위원회)

지난 3월 20~26일은 OECD가 권장하는 ‘국제 금융교육 주간’이었다. 해당 기간에 세미나, 한시적 금융 교육프로그램이 열린다. 이러한 행사가 있었는지 인지하고 있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과거에도 필자가 늘 보던 사진 기록용 이벤트성 정책 시행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과연 이런 행사가 국민 금융이해력 향상에 도움을 주었을까?

자료3(출처=한국은행/금융감독원)
자료3(출처=한국은행/금융감독원)

한편 3월 말 금융당국은 <2022년 全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자료3처럼 OECD/INFE 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이 기준을 중심으로 간단히 금융이해력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보자. 먼저 ‘금융 지식’은 화폐의 시간 가치를 의미하는 금리, 화폐 실질 가치를 잠식하는 인플레이션, 분산투자의 주요 요소인 위험과 수익의 관계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다음 ‘금융 행위’란 경제적으로 합당한 구매 결정을 하고 시의적절하게 지급하며, 개인 재무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행위와 장기적 재무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미래와 현재 소비와 연계한 재원 마련·사용과 관련한 금융 행위를 금융소비자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끝으로 ‘금융 태도’는 돈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인식을 말한다. 평가항목은 저축과 소비, 현재와 미래 사이의 선호와 돈이 소비 수단인지(화폐의 거래적 동기) 또는 미래를 대비하는 수단인지(화폐의 예비적 또는 투기적 동기)에 관한 금융소비자의 인식을 측정한다. 이러한 태도에 따라 금융 소비에 관한 의사결정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자료4
자료4

한국인의 금융이해력 조사는 18~79세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한국 국민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6.5점으로 조사됐다. 이 점수는 자료3의 20점 기준 평가를 100점으로 환산한 것이다. 점수 분포 특징을 연령별로는 20대와 70대의 금융이해력이 낮았고, 고소득자일수록 그리고 고학력자일수록 금융이해력은 높았다. 이전 조사 시점인 2020년과 비교하면 70대의 금융이해력이 대폭 상승했고, 고졸 미만자도 상대적으로 개선 폭이 커진 점이 눈길을 끈다. 참고로 2016년 기준 OECD 발표인 자료2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가 중 한국은 금융이해력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한국인의 금융이해력 수준이 유럽 금융 선진국인 영국과 독일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다소 의아한 결과다.

자료5
자료5

한편 보고서에서 한국 국민은 금융 지식이 금융 행위, 금융 태도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필자 생각에 세부적인 내용은 다소 앞뒤가 안 맞는다. 즉 자료에 따르면 한국 국민은 ‘복리’는 잘 모르는데 ‘이자 개념’ 이해도는 극히 높다. 또한 ‘위험과 수익 관계’, ‘분산투자’를 잘 안다고 응답했는데, 사실 복리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훨씬 고등 개념인 과학적 분산투자 요소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금융이해력 조사는 금융교육의 내용을 결정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는데 이번 조사 결과는 당연히 금융교육을 왜곡할 수 있다.

자료6
자료6

조사 결과에 나타난 한국 국민의 금융 행위 양태는 더 흥미롭다.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아는 한국 국민은 역시 저축에 관한 관심은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장기 재무 목표에 관한 관심은 낙제점에 가깝고, 가계수지적자 해소 항목 점수가 높아 저축을 극히 단기적인 필요성에 의해 실행하는 것으로 보이며 다른 한편 부동산 소유에 대한 높은 열망도 상당히 영향을 주었다고 필자는 추정한다.

자료7
자료7

금융 행위의 또 다른 중요한 단서는 정보에 입각한 금융상품 선택 여부인데 이 점수 또한 한국 국민은 낙제점 수준이다. 즉 대부분 국민은 자기 스스로 합리적 판단에 따른 금융상품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높은 금융 지식 평가 결과와 상충하는 결과다. 금융회사 마케팅·판매채널 전략에서는 금융소비자를 금융자산 규모에 의한 분류와는 별도로 스스로 금융 의사결정 하는 독립적 금융소비자와 타인에게 의사결정을 맡기는 의존적 금융소비자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구분은 금융회사의 고객 접점 채널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구분에 따르면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는 한국 금융소비자 상당 부분은 의존적 금융소비자일 것이다. 자료7은 이러한 경향을 확인해주는데 친인척과 지인, 금융회사 직원. 전문가에게 금융 의사결정을 맡기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비중이 높으면 일방적으로 금융 정보를 제공하는-이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한다-금융회사가 금융상품 판매에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키코, 사모펀드 사태 등 수많은 금융 사고와 사건이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불공정·부당 정보와 이에 크게 의존한 금융 행위에서 출발했다. 제대로 된 금융이해력은 금융산업 건전화의 기반이다.

그림
그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자본의 횡포에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 국민에 대한 금융교육을 강화할 것을 OECD는 강조한다. 금융교육은 금융 의사결정을 스스로 하는 금융소비자는 물론 지인, 금융회사, 금융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금융소비자도 불공정, 부당 금융 사기극에 말려들지 않는 식별력을 갖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또한 금융시장의 불규칙한 위기가 점점 잦아지지만, 저금리가 지속하고 금융소비자의 기대 수명 증가가 결합하는 금융환경에서 금융이해력은 OECD 주장처럼 현대인이 갖춰야 할 생존 기술임이 틀림없다. 국민 생존에 필수적인 금융교육이 OECD 회원국으로 관련 회의 참석을 위한 금융당국의 형식적 업무나 관련 국가 예산을 따먹기 위한 교육 사업 비즈니스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국민의 금융이해력 제고를 위해서 금융산업 이해에서 벗어난 중립적인 정보 제공과 공정한 금융 자문을 담당할 공공성 있는 금융지원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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