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지고 ‘원유ETN’ 뛰어든 개미들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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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고 ‘원유ETN’ 뛰어든 개미들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2.03.18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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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금융감독 당국이 설명의무를 어기고 원유선물지수를 좇는 해외 ETN에 투자하라고 권유한 증권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진=픽사베이
금융감독 당국이 설명의무를 어기고 원유선물지수를 좇는 해외 ETN에 투자하라고 권유한 증권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진=픽사베이

“고객님, 기름값이 0원이 될 수 없으니 ETN도 0원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해 주부 A씨는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습니다. “3배 수익”을 보장한다는 상품은 ‘해외 레버리지 원유선물지수 ETN’. 해외주식에 투자한 적도 없지만, 투자에 나선 A씨는 두 달 뒤 땅을 칩니다. ETN의 상장이 폐지되며 ‘97.85%’의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당국은 뒤늦게 분쟁조정에 나서 손해배상을 결정합니다. ‘설명의무’를 어겼다는 것입니다.

‘원금손실’. 투자한 돈까지 잃어버리거나 손해를 보는 일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금융감독 당국이 원자재와 연계된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에 소비자경보를 내렸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정세 불안으로 원자재 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원금손실 등 투자자들의 피해가 걱정된다는 것입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원자재 관련 ETF와 ETN을 하루 평균 948억원어치를 사고팔았다. 한 달 전(336억원)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자료=금융감독원
개인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원자재 관련 ETF와 ETN을 하루 평균 948억원어치를 사고팔았다. 한 달 전(336억원)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자료=금융감독원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1일까지 원자재 관련 ETF·ETN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1752억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달(620억원)과 견줘 183% 늘어난 것입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하루에 948억원어치를 사고팔았습니다. 한 달 전(336억원)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소비자경보 ‘주의’를 전날 발령했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 기간에 주로 원유 상품(71.5%)을 거래했습니다. 특히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되는 인버스,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거래가 46.8%를 차지했습니다. 개인 매수가 많은 상위 5개 원유 ETF와 ETN의 괴리율은 지난 10일 기준 9.37~13.77%였습니다. ‘괴리율’이란 거래시간이 차이가 나거나 유동성 공급 부족으로 발생하는 일시적인 가격 차이를 뜻합니다.

원유 선물 가격을 음의 2배수로 추종하는 ‘신한 인버스 2X WTI원유선물 ETN(H)’의 경우 지난 16일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돼 다음 날 거래가 정지됐습니다. 니켈 선물 가격을 음의 2배수로 추종하는 ‘대신 인버스 2X 니켈선물 ETN(H)’은 니켈 가격 폭등으로 기초지수 산출이 어려워 지난 8일부터 거래정지 상태입니다.

원자재 관련 ETF·ETN은 괴리율이 커 투자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자료=금융감독원
원자재 관련 ETF·ETN은 괴리율이 커 투자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자료=금융감독원

가격 상승과 하락에 각각 베팅하는 레버리지와 인버스 ETF·ETN의 수익률은 기초자산의 수익률에 배수를 곱한 값으로 결정됩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짧은 기간에 투자손실이 크게 확대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처럼 변동성이 커진 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례적인 가격 폭등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나라들입니다.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는 세계 니켈 공급량의 10%를 생산합니다. 또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는 40% 정도입니다. 러시아와 함께 세계 공급량의 29%에 해당하는 밀을 생산하는 우크라이나는 옥수수(13%)와 보리(12%)도 두 자릿수 이상 세계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 투자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뛰어오르면서 지금이 고점이라고 판단해 인버스 상품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단기간 투자수요 급증으로 수급 불균형이 초래될 경우, ETF·ETN의 괴리율이 확대돼 투자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라며 “한국거래소에서 투자자 보호와 시장안정이 필요할 경우 ETF·ETN에 대한 투자유의 종목 지정과 거래정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투자자들은 이 같은 정보를 확인하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레버리지와 인버스 ETF·ETN의 수익률은 기초자산의 수익률에 배수를 곱한 값으로 결정돼,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짧은 기간에 투자손실이 크게 확대될 우려가 있다. /자료=금융감독원
레버리지와 인버스 ETF·ETN의 수익률은 기초자산의 수익률에 배수를 곱한 값으로 결정돼,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짧은 기간에 투자손실이 크게 확대될 우려가 있다. /자료=금융감독원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상품 구조 자체가 믿을 수 없다며, 판매와 운용을 책임지는 증권사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빚을 내지 말고, 투자하더라도 위험성이 큰 곱버스 상품은 베팅을 삼가라고 조언합니다.

“국제 선물가격 변동 제대로 반영도 안 되는 사기 etf/etn” “ETN 죄다 사기 상품임. 판매사가 유동성을 공급 안 하고 지들 편한 대로 조작해버림. 팔아야 할 때 마음대로 팔 수가 없음. 꾸준히 엄청나게 오르거나 하지 않으면 뭘 해도 손해” “저런 괴리가 결국엔 가상매매, 호가조작의 증거지!! 증권사도 해외선물들 가상매매 돌리는 거 알만한 사람은 다 앎” “증권사들이 운용을 못 해서 발생하는 피해를 투자자가 보는 게 맞나? 추종하는 지수가 변동되어도 수익이 따라가지 못하는 모순덩어리 상품 운용하는 것들한테 징벌적으로 손해 배상하게 해야 됨!” “증권사가 고의로 벌려놓은 건데 주의하라니. 당장 시정 조치해라!”.

“끝물이네~~~ 개미 반대로” “내돈내산이면 몰라도 신용 미수로 투자하는 20대는 정말 갈물 없을 건대 유튜브 보면 빚지고 망해서 배달 투잡 쓰리잡 하는 사람들 있던데 잠깐이면 몰라도 그리하다 한 방에 훅 갑니다” “행여 하더라도 레버리지나 곱버스는 큰돈으로 하지 마라” “유가 상승 베팅에 여럿 물렸겠네. 존버해봐야(오래 버텨봐야) 롤오버(만기가 찾아온 종목을 다른 종목으로 교체하는 것) 땜에 살살 녹을 걸”.

미국처럼 ‘투자자 손실이 우려될 경우 상품 운용사가 자진 상장폐지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금융감독원
미국처럼 ‘투자자 손실이 우려될 경우 상품 운용사가 자진 상장폐지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금융감독원

한편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설명의무를 어기고 ‘벨로시티셰어즈 3X 롱 원유 ETN(UWT)’을 판매한 증권사에 손배해상 책임을 물었습니다. 해외 ETN과 관련해서는 최초입니다. 당시 미국처럼 ‘투자자 손실이 우려될 경우 상품 운용사가 자진 상장폐지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석 달이 지난 지금, 당국은 또 ‘주의보’만 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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