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통장 이름과 ‘죽어간 은행들’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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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통장 이름과 ‘죽어간 은행들’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6.1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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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사진=우리은행
/사진=우리은행

“‘우리’라는 단어에 대한 자유로운 사용을 방해한다.”

2009년 5월 28일 대법원 2부. 주심인 양승태 대법관은 7년간 이어온 은행명칭 논란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출범한 한빛은행은 2002년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다른 은행들은 즉각 반발했고 법리 다툼 끝에 최종심에서 상표등록 무효를 결정한 것입니다. 다만 ‘상호’가 아닌 상표 소송이기에 우리은행은 계속 쓸 수 있습니다.

금융정의연대와 DLF피해자대책위원회 피해자모임이 지난 4일 ‘DLF 금융거래정보 무단 유출’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뒤로 ‘KEB’를 뺀 하나은행 본점 간판이 보인다. /사진=참여연대
금융정의연대와 DLF피해자대책위원회 피해자모임이 지난 4일 ‘DLF 금융거래정보 무단 유출’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뒤로 ‘KEB’를 뺀 하나은행 본점 간판이 보인다. /사진=참여연대

“‘KEB’를 빼고 ‘하나은행’으로 돌아간다.”

올해 1월이 끝나는 금요일 오후. KEB하나은행은 부리나케 다음주부터 브랜드 명칭을 바꾼다고 밝힙니다. 4년5개월 동안 써오던 이름에서 ‘KEB’를 빼기로 한 것입니다. “직원들에게 소속감을 고취하고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이다”. 은행의 설명에 노조는 즉각 중단을 촉구했지만 명칭 변경에 따른 간판 교체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명칭변경’.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이름을 다르게 바꾸어 새롭게 고침을 뜻하는 네 글자입니다. 네이버가 미래에셋대우와 손잡고 출시한 ‘네이버통장’이 명칭변경을 해야 할지도 모를 운명에 처했습니다. 오늘(1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미래에셋에서 발급한 네이버통장이 이름에 ‘네이버’만 넣은 게 문제가 되지 않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미지=네이버통장 홈페이지
/이미지=네이버통장 홈페이지

네이버통장은 지난 8일 네이버파이낸셜과 미래에셋대우가 함께 출시한 RP(환매조건부채권) 기반의 CMA(종합자산관리계좌)입니다. 명칭만 봐서는 제조사(미래에셋)와 판매사(네이버)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네이버은행’에서 내놓은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책임은 미래에셋이 지는데 네이버만 앞세운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최근 금융업계는 이처럼 판매와 제조사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상품을 내놓는 경우가 흔합니다. 네이버통장이 출시된 날, 카카오페이도 하나은행과 협업해 ‘하나 카카오페이 통장’을 출시했습니다. 또 현대카드는 이보다 앞서 지난 4월 대한항공과 함께 ‘대한항공카드’를 내놨습니다.

이번 논란으로 금융권에서는 네이버파이낸셜이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중개업자 성격도 갖는데 전자금융업자로만 등록돼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중개업자가 되면 다른 금융사의 상품을 소개하면서 불완전판매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 각종 투자자보호를 위한 규제까지 받게 됩니다.

네이버파이낸셜 관계자는 “미래에셋과 연계했다는 것을 감춘 것도 아니고 광고부터 가입까지 미래에셋대우 CMA인 것을 분명히 알리고 있다”라며 “명칭 그 자체만 네이버라 했다고 소비자가 오인한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장을 대신 판매한 대가를 받는 구조도 아니기 때문에 중개업자로 보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통장가입부터 제조사를 알 수 있다며 지나친 간섭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나도 저 통장 만들었지만 미래에셋 cma rp형인 거 명확히 표기돼 있던데” “N Pay x 미래에셋 네이버 통장이라고 되어있긴 한데... 이건 안되고 네이버페이x신한통장 처럼 네이버페이x미래에셋 통장이라고 해야 합법이라는 의미?” “비대면통장 개설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미래에셋통장 개설되는 통보 받아서 다 잘 알고 있는데 금융감독원은 무슨 쓸데없는 딴지 걸고 있나” “난 미래에셋cma통장인 거 명시된 거 보고 개설했는데”.

무조건 규제는 나쁘다는 생각은 버리라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핀테크라고 다 허용하다가 언젠가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뭐든 규제는 나쁘고 신기술이 이롭다고만 생각하는 발상은 위험” “이건 금감원이 잘하는 게 맞다 브랜드의 힘 마케팅의 힘을 아는 자는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이런 류는 절대 허용해서는 안된다 나중에 악용의 여지가 크다” “제재해야지요! 나부터 오인했는데!!!”.

이윤만 좇는 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장난 치냐.. 이름이 전부여.. 네이버 핸드폰 만들고 밑에 설명에 네이버랑 상관없다고 하면 책임 없냐?.”

금융민원 및 상담 통계.(단위 건, %) /자료=금융감독원
금융민원 및 상담 통계.(단위 건, %) /자료=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19년도 금융민원 및 금융상담 동향’을 보면, 지난해 접수된 금융민원은 8만2209건, 금융상담은 44만8683건이었습니다. 권역별로 보면 은행 민원이 전년보다 7.4% 늘었습니다. DLF 불완전판매 313건, 라임펀드 환매중단 168건, KB국민은행 부동산시세산정 불만 202건 등 이와 관련한 민원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생명보험 민원은 5.4% 감소했지만 2만건을 넘었고(2만338건), 손해보험은 3.5% 늘어 3만건을 돌파했습니다. 이 중 생보 민원과 관련, 공시 축소 의혹이 나왔습니다. 이달 8일 금융소비자연맹은 금감원 발표와 달리 생보협회 공시 민원이 5337건이나 적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감독기관으로부터 건네받은 대로 공시했다지만 검증절차 없는 협회의 해명은 옹색해 보입니다.

‘조상제한서’.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의 머리글자입니다. 1998년 6월 25일 삼청동 대통령 안가. 금감위원장은 대통령에게 두쪽짜리 문서를 건넵니다. 부실은행의 운명을 담은 ‘살생부’. 이를 본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원칙대로 하세요”. 1997년부터 7년 간 부실 금융회사에 쏟아 부은 공적자금은 165조원이었습니다.

죽은 은행은 이름을 남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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