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 한국은행과 ‘크라이시스 파이터’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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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 한국은행과 ‘크라이시스 파이터’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6.12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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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화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국은행 옛 본관 건물. /사진=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국은행 옛 본관 건물. /사진=한국은행

“오늘부터 100원(圓)을 1환으로 바꾼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던 1953년 2월 15일. 우리나라 화폐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긴급통화조치’가 단행됩니다. 전쟁으로 산업 활동이 위축되고 물가가 급등하자 정부가 내놓은 타개책입니다. 김유택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인플레가 어찌나 극심했던지 돈을 가마니로 싣고 다녀야만 거래가 될 정도로 화폐가치가 떨어졌다”.

1953년 긴급통화조치 당시 화폐교환 창구. /자료사진=한국은행
1953년 긴급통화조치 당시 화폐교환 창구. /자료사진=한국은행

“195억달러 전액 상환, 3년을 앞당겼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분노가 들끓던 2001년 8월 23일.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수혜국에서 ‘재원공여국’으로 전환합니다.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가 IMF 차입금의 마지막 상환서에 서명한 것입니다. 호르스트 쾰러 당시 IMF 총재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한국의 IMF 자금 조기 상환은 획기적인 일(milestone)입니다”.

2001년 8월 IMF 차입금 최종 상환. /자료사진=한국은행
2001년 8월 IMF 차입금 최종 상환. /자료사진=한국은행

‘중앙은행’. 한 나라의 금융과 통화 정책의 중심이 되는 은행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통화를 발행하고 외환을 조절하는 등 금융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운영하는 은행을 말합니다. 오늘(12일) 일흔 생일을 맞은 한국은행이 역대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를 당분간 동결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크라이시스 파이터(crisis fighter)’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창립 기념사에서 “우리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될 때까지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금융시장 안정과 원활한 신용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 시 금리 이외의 정책수단도 활용해야 한다”라며 “정책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은행 연도별 기준금리 추이.(단위 %)
한국은행 연도별 기준금리 추이.(단위 %)

새로운 수단으로는 ▲양적완화(QE·국채 매입으로 장기금리 안정 유도) ▲수익률곡선 제어정책(YCC·장기국채금리 상하한선 통제) ▲포워드가이던스(통화정책방향 선제 안내) 등이 꼽힙니다. 이날 이 총재의 발언도 ‘경제 회복세를 보일 때까지’ 완화정책을 유지한다고 밝혀 통화정책방향을 사실상 시장에 예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총재의 기념사에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담겼습니다. 그는 “크라이시스 파이터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라며 ‘중앙은행의 준재정적 역할’과 시장개입 원칙은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사회적 공감대를 도출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이 총재는 또 저금리·저물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물가안정목표제를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통화정책 운영체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논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앞서 통화정책 운영체제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BOK 2030’을 발표했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지난달 28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지난달 28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저금리 기조는 집값만 올린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부동산 올리려고 애쓴다...나도 하겠다...금리인하...ㅜㅜ” “자산가격에 거품이 끼어 부글부글 끓어 넘치기 일보 직전이다. 저금리가 경기부양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집값만 폭등시킨다는 게 지난 5년간 입증됐는데도 똑같은 짓거리를 반복하는 XXX” “올라라 주식아 올라라 부동산아. 내려가라 내 자산 가치야..” “경제 살릴 자신 있어요? 부동산으로 나라 망칠 생각만 하는 거 같네” “부동산 투기로 전국민 앞으로...종이화폐 끝장을 보내요...” “금리 올리지 않으면 부동산 주식 자영업자 폭탄 곧 터짐”.

꿈쩍도 하지 않는 대출금리를 내리라고도 목소리를 높입니다.

“은행 대출 금리는 기준금리의 3배 이상인 게 코미디.!” “대출금리 즉시 인하하라!” “그래도 얼마 전에 신협에서 대출 받았는데 연 5.5%”.

칭찬 글이지만 당근보다 채찍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요.

“작년 말, 올해 초 코로나 초기에 금리 낮춰야한다고 여기저기서 거품 물어도 끝까지 금리 동결하다가 미국 금리 내린 뒤에야 따라서 내린 결정에 찬사를 보냄. 수출경제,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이 버티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중앙은행 역할이 컸다고 생각함”.

만원권 지폐에 찍힌 '한국은행총재' 직인. /출처=NeungGom(neoh1) 블로그
만원권 지폐에 찍힌 '한국은행총재' 직인. /출처=NeungGom(neoh1) 블로그

‘총재의인’. 1950년 처음 나온 백원·천원짜리 종이돈에는 이 네 글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56년 뒤, 네 글자 직인은 새 종이돈과 함께 ‘한국은행총재’로 바뀝니다. 2011년 이명박정부는 “총재라는 명칭이 민주화 사회에 맞지 않는다”라며 ‘한국은행장’으로 바꾸려 합니다. 하지만 직인 교체, 지폐 회수 등에만 2000억 정도의 비용이 예상되자 무위로 끝납니다.

바꿀 수 없는 건 ‘중앙은행의 독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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