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재난지원금’ 기부? 셰익스피어가 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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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재난지원금’ 기부? 셰익스피어가 봤다면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4.23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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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셰익스피어 동상. /사진=픽사베이
셰익스피어 동상. /사진=픽사베이

“저들이 미친 게 아니라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게 틀림없다.”

1605년,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는 저마다 책을 들고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며 확신합니다.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라만차 지방의 어느 마을에 시골 양반이 살고 있었다”. 평생 불행했던 작가에게, 세상은 풍차가 아닌 ‘모닝스타(별 모양의 무기)’를 든 거인이었을지 모릅니다. 4월 23일, 오늘은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죽은 지 40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 /사진=픽사베이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 /사진=픽사베이

“조용한 비가 땅 위에 떨어져 내리듯, 그렇게 쏟아지는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재판관으로 변신한 포셔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자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세르반테스와 달리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생전에 최고의 지위에 오릅니다. 이러한 물질과 정신적 ‘여유’는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투영됩니다. 그의 ‘기부론’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오늘은 셰익스피어가 죽은 지 404주기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튀어나올 것 같은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의 집' 발코니. /사진=픽사베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튀어나올 것 같은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의 집' 발코니. /사진=픽사베이

‘부자기부’.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이 물품을 나누는 것을 뜻하는 네 글자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4인 가족 기준) 지급 대상을 놓고 엇박자를 냈던 당정이 어제(22일) 합의했습니다.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대신 고소득층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부자기부’에서 해법을 찾은 것입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정 부담을 경감할 방안도 함께 마련하고자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세균 총리는 이에 대해 “자발적 기부가 가능한 제도가 국회에서 마련된다면 정부도 받아들이겠다”라고 화답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3조3400억원의 재원은 국채 발행 형식으로 메워야 합니다. 그동안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 악화 등을 우려하며 ‘소득 하위 70%’에 지급하는 원안을 고수했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4·15 총선에서 여야가 내건 공약을 지켜야 한다며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해 왔습니다.

총선 패배 이후 “정부 안을 받아들이겠다”라며 입장을 선회한 미래통합당은 민주당과 정부의 합의 내용을 공개하라며 반발했습니다. 통합당 소속 김재원 예결위원장은 “정부 측과 합의됐다면 하루빨리 수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 주기 바란다”라면서도 “자발적 기부를 어떻게 받아서 3조원이 넘는 국채를 갚겠다는 것이냐”라고 따졌습니다.

민주당의 해법인 ‘부자기부’, 즉 고소득층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세액공제’입니다.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되, 이 과정에서 지원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경우 ‘기부’로 간주해 세액공제를 해주겠다는 구상입니다. 현재 기부금 세액공제율 15%를 적용할 경우 미수령액이 100만원이면 15만원의 세액공제를 받게 됩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전국민 지급을 거듭 강조하며 ‘기부몰이’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30대 작은 오피스텔 전세 사는 1인 가구, 아낄 건 아끼고 필요한 건 고민하고 비교해서 사고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지만 이전 기준으로는 받지 못합니다. 더 힘든 분이 있어 공정히 지급된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전국민 지급으로 받게 된다면 주변 작은 가게들에서 모처럼 다 써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냥 저 안이 통과되더라도 기부가 당연시되거나 찬사 받는 분위기가 조성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빨리 힘든 분들께 지급되길”.

기부에 인색한 부자들에 대한 반감도 드러냅니다.

“부자들이 더 지독한 거 모르는가베 ㅡ오강단지 옆에 붙은 밥풀도 떼어먹는 것이 한국졸부들인디” “글세 우리 한국은 워낙 졸부들이 많아서 벽에 붙은 빈대 똥도 돈이라면 걷어 먹으려고 아우성치는데 미국 빌게이츠처럼 사회로 환원하는 모범갑부들이 있을까 ㅡㅡ 경주최씨 갑부처럼 내집 10리 안에 굻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즉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라 ㅡㅡ싫어 싫으면 관둬요”.

차라리 수급을 거부한다는 반발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안 받고 기부도 안 할 거니까 니네 맘대로 해봐라” “저희 가족도 안 받습니다. 국가장학금, 성적장학금 또한 받지 않았고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양보할 것입니다. 다만 경제적 기득권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시선과 손길에서 벗어난다라는 생각만은 들지 않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2019년 사회조사' /자료=통계청 SNS
'2019년 사회조사' /자료=통계청 SNS

한국경제연구원의 임동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발간한 <기부 활성화를 위한 세법상 지원제도 검토>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부금 지원세제 개선을 주장했습니다. “기부금에 따른 절세혜택을 높이기 위해서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세액공제를 선택하게 하고 고소득층은 소득공제를 선택하게 한다면 기부 활성화 효과가 클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전국 13세 이상 3만7000여명)’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기부경험이 있는 사람은 25.6%였습니다. 4명 중 3명꼴인 기부하지 않은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51.9%)’였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기부방법을 몰라서’라고 응답한 사람이 3%로 나타난 것입니다.

기부는 나눔입니다. 더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노래로 기쁨을 안기는 것도 나눔입니다. 글로 감동을 선물하는 것도 나눔입니다. 오늘은 수많은 이들을 울리고 웃긴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함께 기리는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입니다. ‘기부’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하는 미덕 중에서 최고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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