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신용 강등 롯데그룹, ‘친일 꼬리표’가 전화위복?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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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신용 강등 롯데그룹, ‘친일 꼬리표’가 전화위복?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6.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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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중국 역사상 탁월한 지략가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계속됐던 전국시대다. 이 시기에 소진이라는 책사는 그 유명한 합종책을 치세 전략으로 내세워 무려 6개국의 왕들을 설득하며 천하의 균형을 유지했다. 기원전 333년 그가 만든 합종연횡의 균형은 수십 년 유지됐는데 아마 수십만의 목숨을 건졌을 것이니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다만 소진은 세 치 혀를 굴리는 권모술수의 대가로 긍정적 평가는 얻지 못한다). 소진이 연나라를 침입한 제나라 왕을 설득한 이야기 한 구절 ‘(전화위복 인패위공(轉禍爲福 因敗爲功)’에 등장하는 유명한 사자성어가 전화위복이다. 어제의 약점이 오늘의 강점으로 바뀐다는 이러한 사회변화의 다이내믹스는 확률은 높지 않지만, 분명 극적이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역사 속 사회현상이다. 최근 롯데그룹의 상황을 보면서 문득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자료 1(출처=나이스신용평가)
자료 1(출처=나이스신용평가)

지난 20일 나이스신용평가는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등 5개 롯데그룹 계열사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보고서를 냈다. 기업은 경영활동을 위해 주식(자기자본)이나 대출, 채권(타인자본)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 자기자본은 만기와 기업의 상환의무가 없으나, 타인자본은 자금 제공자에게 약속 기간 후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할 의무가 기업에 있다. 기업의 신용이란 타인자본에 관한 이자 지급과 상환 가능성이다. 기업이 타인자본을 조달하는 금리는 기본적으로 무위험 수익률에 기업의 신용 상태에 따른 위험 프리미엄을 가산하여 결정된다. 신용등급이 악화하면 극단적으로 상환 불능 위험이 커지므로 자금 제공자(채권투자자)가 대출(투자)을 꺼리고 요구하는 대출(투자)금리는 높아진다. 나이스신용평가는 6월과 11월 정기적으로 기업 신용을 평가하는데, 지난 20일 평가에서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신용은 일제히 악화했다. 자료 1에서 장기신용등급은 만기 1년 이상, 단기신용등급은 1년 미만 대출에 대한 평가다.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의 단기신용등급은 개선되었으나 장기신용등급이 이전 평가보다 한 등급씩 악화했다.

자료 2(출처=나이스신용평가)
자료 2(출처=나이스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의 기준에 따르면,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의 장기 신용 등급은 최고 수준 다음 단계에서 미세하게 하향 조정됐거나 한 단계 내려갔다. A등급 이상은 원리금 지급 확실성이 확실한 최고 신용 단계이므로 롯데그룹 채권자에게 당장 큰 문제가 발생할 염려는 기우일 것이다. 롯데그룹은 직전 장기신용등급 전망이 ‘Negative’였는데, 이는 중기적으로 등급이 하향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직전 등급 전망을 개선하지 못하자 이번 평가에서 하향 조정되고 말았다. 다만 이번 평가에 달린 등급 전망은 ‘Stable’이므로 더 하향할 가능성은 중기적으로 낮다. 그렇다고 단어 의미처럼 롯데그룹 사업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자료 3(출처=롯데지주 2023. 1분기 경영실적)
자료 3(출처=롯데지주 2023. 1분기 경영실적)

그러나 전반적인 신용등급 하향은 그룹 경영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신용등급 악화는 롯데그룹 전체적인 조달 비용 증가를 초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롯데지주 경영실적 보고에 따르면, 연결기준 그룹 총부채는 약 6조9000억원이다. 만약 신용 악화로 연간 조달금리가 100bp(=1%) 상향하면 대략 690억원의 이자 비용이 증가한다. 또한 투자자들이 신용등급의 악화를 추세적이라고 판단하면, 자금 조달은 일시적 애로에 그치지 않고 경색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최근 미국 중소 은행이 은행 자금 대량 이탈에 빠지는 것처럼 신용에 대한 심리적 악화는 차근차근 진행하는 게 아니라 투자자의 심리적 임계점에 다다르면, 가속단계에 진입하며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몰릴 수 있다. 특히 정보가 많은 기관투자자는 일반 투자자보다 한발 앞서 위험 관리에 나서며 기업 자금줄을 조일 수 있다.

자료 4(출처=한국기업평가)
자료 4(출처=한국기업평가)

롯데그룹에 관한 신용평가는 한국기업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롯데지주 분기 보고에 따르면, 그룹 매출은 증가했으나 매출원가 상승률이 높았고, 각종 비용 증가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26%, 당기순이익은 마이너스 42% 감소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롯데그룹 주 수익원인 롯데케미칼의 경영악화와 대규모 투자,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상황 악화로 인한 롯데건설 유동성 공급 등이다.

자료 5(출처=한국기업평가)
자료 5(출처=한국기업평가)

롯데그룹은 고 신격호 회장이 1948년 일본에서 껌을 주력 사업으로 출범한 유통 중심 그룹이다. 이후 일본에서 사업을 확장하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2년 뒤 롯데제과를 세우며 한국에 진출했다. 자료 5에서 보듯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는 일본 롯데가 있다. 현재 그룹을 총괄하고 있는 신동빈 회장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일본에서 나왔으며, 1981년 노무라증권에서 근무한 뒤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일본 귀족 가문 출신과 결혼했고, 자녀들도 모두 일본 국적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의 부친 신격호 회장은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인연이 있었으며 한일 국교 정상화를 막후에서 도운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그룹은 지배구조는 물론 총수 일가의 개인 성향도 일본 영향력이 크다. 롯데그룹의 출생과 성장 배경으로 미루어 보건대, 과거 일본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롯데그룹의 친일본 성향은 강력한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2015년 신동빈 회장과 형 신동주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면서 롯데 지배구조 정점에 일본 롯데와 광윤사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롯데는 일본 기업이라는 정체성이 우리 국민에게 더욱 확실하게 각인됐다. 이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비밀에 싸였던 롯데그룹의 일본 지분이 지난해 5월 구체적으로 공개되었다. 과거 물밑에서 롯데그룹 성장 추동력으로 작용하던 일본 기업이라는 출신 배경은 2018년 한일 초계기 갈등, 2019년 일본 정부의 수출 제재로 인한 양국 갈등이 불거지자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친일본 기업으로 낙인된 롯데그룹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윤석열정부가 들어서자 롯데그룹의 친일본 성향이 반전의 계기를 만들 전망이다. 윤석열정부는 정권 인수 이후 줄곧 한일 관계 개선을 외치며 친일본 조류를 만들었고, 대표적 친일본 기업집단인 롯데그룹의 회장을 사면했다. 이에 호응하듯 신동빈 회장은 현 정부가 국민 정서 반전을 위해 적극 추진하는 부산 엑스포 사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정부의 친일본 지향 정책을 민간 기업에서 지원할 중요한 파트너인 만큼 롯데그룹은 경제·금융 당국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 메리츠금융그룹이 롯데건설에 12%대 대출을 지원했을 때도 가혹한 대출 시행 아니냐는 업계 평가에도 금융감독원장은 유동성 공급의 우수 사례로 소개하며 롯데건설 구제를 측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롯데그룹의 친일본 배경은 정부와의 관계에서 다시 숨겨진 핵심 역량으로 발전할 것으로 추정되며, 그 결과 국민의 반일본 정서를 얼마나 상쇄할지 주목된다. 금감원장이 주도하는 관치금융 여건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일본과의 민간 가교 노릇을 성실하게 하는 한, 적어도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현 정부 그늘에서는 역사적이고 숙명적인 친일본 성향이 롯데그룹에는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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