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불씨 여전… 조양래 생전에 가족 화해·화합은 언감생심일까
잊을 만하면 터지는 혈육간 경영권 분쟁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한국앤컴퍼니그룹의 송사가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게 됐다. 조양래 명예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심판 청구가 항소심에서 기각됐지만,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부친의 건강을 검증한 서류가 부실하다며 대법원 항고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조영호 수석 부장판사)가 조 명예회장에 대해 청구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의 항고심에서 조 이사장의 항고를 기각하면서 분쟁이 종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달 31일 조 명예회장이 친형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장례식장을 찾아 건재한 모습으로 조문,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데다, 법원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조 명예회장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더 이상 이견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조 이사장은 법원의 항고심 기각 이후 지난 15일 서울가정법원에 재항고장을 제출, 재판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기로 했다. 재판 절차상의 문제와 판결에 의혹이 많이 남아 승복할 수 없으며, 부친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 표명과 함께였다.
조 이사장은 항고심 진행 과정에서 조 명예회장의 정밀 정신감정을 맡은 의사가 치료와 추가 검사 필요성을 비서에게 말했지만, 실제 재판부에 제출된 감정서의 내용은 이와 달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건강 상태를 설명하는 감정서에 후견 개시와 아무 상관없는 후계자 문제가 언급된 점을 지적하며 “후견 소송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버지의 건강을 이용하는 세력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법원에 제기한 사실 조회와 문서제출 명령 신청이 안 지켜졌음에도 법원이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 이사장은 “감정의가 말한 내용과 왜 추가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알기 위해 법원에 제기한 사실 조회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법원도 감정 과정을 기재한 진료 기록과 자료 일체를 제출하도록 문서제출 명령을 병원에 보냈지만, 병원이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1심 재판부도 아버지의 뇌영상 자료 열람을 제게 허락하지 않고 의료감정 없이 재판을 기각하더니 항소심에서도 신뢰성이 부족한 감정결과를 사실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기각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조 이사장은 또 “정확한 진단과 치료, 보살핌을 받지 못해 아버지의 상황이 더 악화하게 만든 감정의, 재판부는 물론 아버지 건강에는 관심조차 없고 재산에만 관심 있는 조현범(회장)까지 모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 이사장이 ‘천륜을 거스르는 불효’란 비난을 무릅쓰고 진행하는 이번 재판은 한국앤컴퍼니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비롯됐다. 조 명예회장은 2020년 6월 자신이 갖고있던 한국앤컴퍼니 지분 전량 23.59%를 차남 조현범 회장(당시 사장)에게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이로 인해 조현범 회장이 지분 42.90%로 한국앤컴퍼니 최대주주가 됐다. 조 이사장은 부친의 이 같은 결정이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자발적 의사로 이뤄진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법원에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했다. 앞서 2022년 4월 1심에서도 재판부는 조 명예회장의 신체 및 정신상태에 이상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었다.
재계와 법조계에선 조 이사장이 이번 재판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긴 했지만, 특별히 반전을 이룰 만한 계기는 없어 보인다는 입장이다. 조 명예회장이 법원 심문기일에서 자신의 의사를 일관되고 명확하게 진술했을 뿐 아니라, 매일 그룹 본사로 출근해 정상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부친과 차남 대 3남매’가 벌이는 경영권 분쟁을 ‘이상한 싸움’으로 보고 있다. 일반인으로선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부친이 가족회의 한번 없이 차남을 후계자로 정하고 경영권을 넘겨 분쟁의 불씨를 만든 일이나, 자식이 부친을 피한정후견인으로 몰아세우는 일이 평범해 보이진 않는 일이다.
한국앤컴퍼니의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간 싸움은 지난해말에도 한 차례 이목을 끈 바 있다. 3남매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조현범 회장에 맞서 공개매수를 통한 지분 확보에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앞으로 재발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이번 송사는 결국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마침표를 찍게 됐다. 가족간 송사의 끝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기 전에, 조 명예회장이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때 직접 나서서 결자해지하는 심정으로 가족간 화해와 화합을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면 순진한 생각에 불과한 것일까. 한국앤컴퍼니 오너 일가의 향후 행보에 오지랖 넓게도 업계와 주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