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이 올해 하반기 2개 회사로 분리하기로 하면서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타계한 고 조석래 명예회장의 장남 조현준 회장과 삼남 조현상 부회장은 각각 기존 지주사 ‘효성’과 새로 만드는 지주사 ‘효성신설지주(가칭)’를 분할 하기로 합의하고, 이에 따른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지주사는 각각의 이사회를 두고 ㈜효성 산하의 계열사들을 나눠 독자 경영한다는 계획입니다.
지난 2월 ㈜효성의 이사회에서 조현준 회장이 효성,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효성TNS 등을 지배하는 존속 지주회사의 경영을 이끌고, 조현상 부회장은 효성에서 효성첨단소재, 효성인포메인션시스템, 효성토요타, Hyosung Holdings USA, 물류회사 등을 인적분할해 신설 지주회사를 만들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회사 지분 관리와 투자를 주 목적으로 하는 2개 지주사와 각각의 총수를 둔 기업집단이 꾸려지는 셈입니다.
이 청사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순자산(자본총계)을 기준으로 8대 2비율로 계열기업들을 나눴다는 점입니다. 기존 효성 지주사가 자본총계의 80%만큼을 소유하고, 분할되는 신설지주가 20%를 갖는 구조입니다.
신설되는 지주사가 크게 반발할 것 같은 불평등한 구도이지만, 이는 양측의 합의로 도출된 결과입니다. 맏형 조현준 회장과 막내 조현상 부회장이 모두 포함된 이사회에서 결의했다는 점에서 가족 간에도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재계에서는 이에 대해 조현상 부회장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결론이라고 해석합니다. 당장은 조 부회장이 형인 조현준 회장에 비해 적은 몫을 가져가는 그림이지만, 향후 어느 정도 신설 그룹을 자력으로 키워낼 수 있다는 확신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이와 함께 조 부회장이 신설 그룹의 순자산을 확충해 나갈 수 있도록 가족 내부의 합의된 시나리오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옵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형제간에 그룹을 80대 20으로 나누는 불평등한 출발이지만 장기적으로 몇 년, 몇십 년에 걸쳐 계열 분리 후속 작업까지 모두 마무리되면 각각 그룹의 자본 가치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라며 “분할 계획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50대 50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조 부회장은 보유 중인 ㈜효성 계열사들의 주식 매각 작업도 서두르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친족 간 계열분리를 위해선 상호 보유 지분 비율을 3% 미만(상장사 기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달 효성중공업 지분을 매각해 지분율을 4.88%에서 2.68%로 낮췄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 부회장은 효성중공업 주가가 역대 가장 높은 30만원대에서 형성돼 큰 차익을 거뒀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 부회장은 앞으로 보유 중인 효성화학 지분율(6.16%)도 3% 밑으로 낮춰야 합니다. 재계는 조 부회장이 효성중공업과 효성화학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현금으로 상속세와 신설지주 지분 매입에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일부 잡음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조현준 회장이 지난해 12월 효성토요타 주식 20%(8만주)를 22억2152만원에 ㈜효성에 매각했는데, 이 과정에서 효성토요타의 기업가치를 고의적으로 저평가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조현상 부회장의 신규 지주사 설립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도 나옵니다.
실제 조 회장이 효성에 지분을 매각한 가격으로 효성토요타의 기업가치를 계산하면 111억원인데,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인 108억원을 근거로 산정한 것이라는 추정입니다. 순자산 가치만으로 기업가치를 계산하는 방식은 청산을 앞둔 기업에게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그룹 내 다른 외제차 위탁판매 법인이었던 더클래스효성이 시장가치보다 낮게 조현상 부회장에게 넘어간 것과 비슷하게 효성토요타가 매각될 것으로 점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조현준 회장의 입장에서는 기업가치 저평가가 현금확보에 불리하지만, 조현상 부회장이 80대 20의 비율로 계열분할에 합의한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조현준·현상 형제는 앞으로 계열사 지분 정리 외에도 각자가 이끌 ㈜효성과 신설지주의 지분도 정리해야 합니다. ㈜효성에서 인적분할로 신설지주가 설립되면서 조 회장과 조 부회장의 신설지주 지분은 각각 21.94, 21.42%로 ㈜효성 지분구조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지주사 지분 정리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분 스와프 방안 등이 거론됩니다. 이와 함께 아버지 조 명예회장의 상속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지, 이에 따른 상속세 마련은 어떻게 할지 과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기술과 현장을 중시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 지시하는 꼼꼼한 업무 스타일로 ‘조 대리’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주요 섬유 기술들을 국산화하고 한국 섬유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업적을 쌓은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조현준·현상 형제도 향후 수년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를 계열분리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 외부로 작은 잡음도 새어 나오지 않도록 살피는 지혜를 배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