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엔지니어링 등 국내 업체들이 공을 들여온 호주의 대형 희토류 광산 개발 프로젝트가 최근 미국 업체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의존도가 큰 희토류의 공급망 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한 계획이 틀어진 셈입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호주 광산 개발 ‘더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호주 광산 대기업 ASM(Australian Strategic Materials)이 한국 기업 대신 미국 벡텔사를 파트너로 선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2022년 ASM과 기본설계(FEED) 계약을 맺고 각종 사업을 추진하려 했던 현대엔지니어링은 상세 설계와 시공의 기회를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ASM이 한국이 아닌 미국 업체와 손을 잡은 이유는 자금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호주 ABC방송은 ASM의 독립 감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말을 인용해 “회사 운영을 위해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 회사 존속 능력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미국 수출입은행(USEXIM)이 6억달러 규모의 자금 지원 계획을 담은 투자의향서(LOI)를 제출하자, ASM이 그동안 공을 들여온 한국을 배제한 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더보 프로젝트는 ASM이 보유한 더보지역 광산에서 희토류, 지르코늄, 네오디뮴, 하프늄 등의 광물을 분말·금속 형태로 생산하는 플랜트 건설 사업입니다. 희토류는 전기자동차·배터리·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각종 첨단 제조업의 핵심 원료이며, 코발트·구리·리튬·니켈 등 광물과 더불어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번 더보 프로젝트를 잃은 것이 더욱 더 뼈 아픈 이유입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희토류 매장량이 세계 6위인 호주에서 더보 프로젝트의 기본설계를 수행함에 따라 향후 EPC(설계·조달·시공) 공사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업체들이 더보 광산 프로젝트 초기부터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며 사업 주도권을 가져온 것은 사업성도 컸지만,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희토류 공급망을 호주로 넓히기 위해서였죠. 게다가 광물자원 정제사업 분야의 수주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ASM 자료에 따르면 더보 광산에서는 연간 1342톤의 네오디뮴과 1만6000톤의 지르코늄, 30톤의 하프늄 등이 채굴됩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7000억~8000억원 규모입니다. 현재 밝혀진 매장량 기준으로 20년간 광산을 운영한다면 매장 가치가 약 15조원에 달합니다.
우리나라가 더보 프로젝트를 독점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ASM이 우리 정부의 지원으로 국내 최초 희토류 생산 법인을 한국에 설립했지만, 정작 국내 기업들은 이를 외면했습니다. 미국 금리 인상 등에 따른 글로벌 경제 둔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시장 불확실성 등이 아직 성장 단계인 희토류 시장에 대해 투자를 꺼리게 만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반면 해외 기업들은 희토류 공급망 확보에 열을 올렸고 더보 프로젝트도 결국 미국 업체로 넘어간 것입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더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채굴한 핵심 광물을 국내로 들여와 공급망 위기와 중국 의존도에서 탈출할 계획이었다”라며 “우리 정부와 업체들이 해외자원 투자에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