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이정희 ‘회장’? 유일한 박사가 지켜보고 있다 [마포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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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이정희 ‘회장’? 유일한 박사가 지켜보고 있다 [마포나루]
  • 최석영 기자
  • 승인 2024.02.22 09: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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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총 안건에 ‘이사회 결의로 회장 선임’… “특정인 염두에 둔 것 아니냐” 논란
블라인드와 인터넷에선 “이정희 이사회 의장의 장기적인 경영권 장악 의도” 비판도
/사진=네이버 블로그 캡처
/사진=네이버 블로그 캡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존경받는 기업과 기업인을 꼽으라고 질문하면 단연 ‘유한양행’과 ‘유일한 박사’라는 답이 압도적이다. 1971년 7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지 어느덧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회자되고 있다. 1960~1970년대 만연했던 정경유착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직하고 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한 것이나,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장을 통해 부자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했기 때문이다.

특히 손녀에게 학자금 1만달러, 딸에게 묘지와 주변 땅 5000평만 주었을 뿐, 아들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고 소유 주식 모두를 ‘한국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는 그의 유언장은 우리 사회와 기업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끔 했다.

그는 1956~1968년 유한 사우공제회, 보건장학회, 유공관리기금 등을 설립했고, 1970년에는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을 설립해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원조사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했다. 이 기관은 1977년 법률규정에 따라 ‘재단법인 유한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돼 현재까지 각종 공익사업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또 타계할 당시 내놓은 개인소유 주식 14만941주(발행주식 수의 20.6%)는 모두 이 기관에 기부돼 현재 유한재단의 기틀이 마련됐다.

당시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이 생소한 시절이었는데도, 세계적으로 칭송받는 스웨덴의 국민기업 발렌베리 가문 못지않은 국내 기업 유한양행이 있었던 셈이다.

또한 유일한 박사가 1969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 전 회사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회사 내 친인척을 모두 해고하고, 함께 고생한 직원 또는 유한양행 정신에 걸맞은 사람이 회사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녀가 아닌 회사 임원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 준 것도 유명한 일화다.

새삼스럽게 유한양행과 유일한 박사의 얘기를 길게 꺼내는 것은, 2024년 현재 유한양행에서 유일한 박사의 유지를 거스르는 듯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다름 아닌 회사 내 특정 인물이 창업자의 정신을 무시한 채 회사 경영권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회장·부회장직을 신설하려고 한다는 논란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다음 달 15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재무제표의 승인 ▲정관의 변경 ▲이사의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의 선임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정관 변경의 건’으로 제33조 대표이사 등의 선임에 “이사회의 결의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동안 유한양행은 창업주 가족이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채택했고,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회장에 올랐던 인물도 유일한 박사와 연만희 전 고문뿐이다. 연 전 고문이 1993년 대표이사 회장을 수행한 이후 현재까지 회장과 부회장직은 공석이다. 만약 주총에서 회장·부회장 신설안이 통과되면 약 30년 만에 부활하는 셈이다.

업계와 유한양행 내부에서는 회장 후보자로 이정희 의장을 거론한다. 이 의장은 1951년생으로 유한양행 평사원 출신이다. 그는 2015년 제21대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 후 2021년까지 6년간 유한양행을 이끌었다. 이 기간 이사회 의장직도 같이 맡았는데 이는 정관에 이사회 의장 선출 규정이 따로 없고, 관례상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표이사 퇴임 후에도 이사회 의장직을 따로 떼어내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면서 막후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에는 “유일한 박사님은 누군가가 회사를 개인 사유로 하지 못하도록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하고, 3년 임기 1번 연임만 가능하게 해두었다. 그러나 현재 유한양행은 변질되고 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 블로그에도 “창업주의 유지를 훼손하며 회사를 사유화하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이정희 이사회 의장“이라며 “곧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유일한 박사의 유한양행이 계속 한국인에게 존경받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정상적인 행보를 보여주길 바란다”라고 적었다.

한편 유한양행 측은 언론에 이번 정관 개정에 대해 조직 개편과 글로벌 사업 진출을 위한 내부 시스템 정비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희 의장은 <더벨>과 인터뷰를 갖고 "나와 관련한 여러 논란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사안을 엄중하게 생각한다"라며 "회장직엔 절대 오르지 않겠다"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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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2024-02-22 09:48:39
이정희 의장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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