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 흔든’ CJ ENM, 구창근 사퇴로 “책임지는 문화” 만들까 [마포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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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통 흔든’ CJ ENM, 구창근 사퇴로 “책임지는 문화” 만들까 [마포나루]
  • 최석영 기자
  • 승인 2024.02.0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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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한류 르네상스 이끌며 브랜드 파워 높였던 시절도 있었는데…
마이너스 영업이익에 재무구조 악화… 최근 회사채 흥행 실패 굴욕까지
이번 달 말 예정된 그룹 인사에서 구창근 대표 책임지고 사퇴할지 주목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CJ올리브영 본사에서 임직원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CJ그룹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CJ올리브영 본사에서 임직원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CJ그룹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 왝더독)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주객이 전도되거나 일부가 전체를 지배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가리킬 때 쓰인다. 특히 증권시장에서 선물이 현물 시장을 흔드는 모습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분양권 거래가 과열되거나 급랭하면서 아파트값을 급등락시키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글로벌 한류를 이끄는 국내의 대표적인 문화기업 CJ그룹과 CJ ENM의 관계도 왝더독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CJ ENM의 선전 여부가 그룹의 이미지와 미래를 좌지우지하고 있어서다.

금관문화훈장 수훈, 한국인 최초 ‘아부다비 페스티벌 어워즈’ 수상,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여성 파워 100인’에 3년 연속 선정. CJ ENM을 이끌며 한국 문화(K-컬처)를 전 세계에 전하고 있는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수식어다. 문화사업에 거침없는 투자로 ‘한류 르네상스’를 꽃피웠기에 이룬 성과다.

실제 중세 유럽에 르네상스 문화를 이끈 메디치 가문이 있다면 2024년 한국에는 한류를 이끄는 CJ가(家)가 있다. CJ그룹은 영화 제작과 투자·배급부터 드라마와 예능, 음악, TV와 디지털 채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뮤지컬까지 대중문화 전 분야에 걸쳐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핵심 계열사 CJ ENM이 자리하고 있다.

CJ ENM이 수익성 악화로 흔들거리며 CJ그룹의 문화사업 혹한기가 이어지고 있다. 계열사의 위기가 그룹의 위기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통상 매년 11~12월 단행되던 CJ그룹 인사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해를 넘겼다.

이달 중순인 오는 13일부터 CJ제일제당 등 계열사들의 실적 발표가 있는 만큼,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 이전인 이달 하순쯤에야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이재현 회장이 올해 인사에서 ‘인적 쇄신’을 택할 가능성 크다고 전망한다. 쇄신 대상에는 실적이 부진한 CJ ENM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CJ ENM은 1994년 국내 최초의 TV홈쇼핑으로 창립한 홈쇼핑텔레비전(HSTV)을 모태로 2018년 CJ오쇼핑과 CJ E&M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이후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을 이끌면서 큰 수익을 올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2018년 182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2019년 2694억원 ▲2020년 2721억원 ▲2021년 2969억원을 벌면서 선방했다.

이랬던 CJ ENM이 2022년부터 수익이 급격하게 쪼그라들면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2023년 3분기 누적)에는 733억원 영업 적자를 냈고, 특히 순손실은 2644억원으로 2년 연속 적자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재무적 안정성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부채 비율이 153.0%로 전년 대비 15.2%포인트나 늘어난 것. 차입금 총액은 3조3691억원으로 2022년(3조4587억원)보다 약 896억원이 줄었지만, 1년 내 갚아야 할 유동성 차입금(1조5129억원)이 현금 및 현금성 자산(7618억원)보다 두 배나 많은 점이 걱정이다.

지난해 6월 CJ ENM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자회사인 OTT 업체 티빙에서 600억원 단기 차입을 하기도 했다. 적자 자회사인 티빙에 손을 벌릴 정도로 회사 상황은 어려웠다는 방증이다.

CJ ENM 수익 악화는 회사의 매출 양대 축인 ‘미디어 플랫폼’과 ‘영화·드라마’ 사업이 모두 부진해서다. tvN, 티빙 등 미디어 플랫폼은 지난해 3분기까지 653억원 적자다. 같은 기간 영화·드라마 부문도 922억원 영업 적자가 났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국내 영화 산업이 회복하고 있지만, 같은 기간 CJ ENM이 배급한 영화 관객 수는 606만명으로 전년 동기(1128만명) 대비 반 토막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관객 점유율도 2022년 13.1%에서 지난해에는 6.5%로 줄었다. 지난해 CJ ENM이 투자·배급한 영화들이 한결같이 흥행에 실패한 결과다.

국내 최초 아레나 공연장인 CJ라이브시티 사업이 표류하는 점도 회사의 큰 부담이다. CJ라이브시티는 2021년 4분기 착공했지만, 지난해 4월 인건비, 건자재 인상 등으로 한화건설과 공사비 재산정 논의에 들어가며 공정률은 17%에서 멈췄다. CJ ENM이 CJ라이브시티에 지급 보증한 규모가 3000억원을 넘는 점을 감안하면 개발사업이 좌초될 경우, 자칫 CJ ENM의 재무 안정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탓인가. CJ ENM은 지난달 23일에는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망신을 당했다.

2년 만기 회사채 700억원, 3년 만기 회사채 1300억원 등 총 2000억원을 발행할 예정이었는데, 3년 만기 회사채 매수 주문이 1250억원에 그쳐 미달한 것. 추가 청약을 통해 나머지 50억원을 확보했지만, 발행 금리는 민평금리(민간 채권 평가사들이 평가한 기업의 고유 금리)보다 29bp(1bp=0.01%포인트)나 높았다. 모자란 신용 탓에 이자를 더 주고 돈을 빌린 셈이다. 올해 회사채 발행에 나선 회사 중 성공하지 못한 첫 사례다.

CJ ENM 채널들이 민족 대명절 설을 맞아 다채로운 콘텐츠를 준비했다.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tvN, tvN SPORTS 독점생중계, 영화 ‘더 문’, 영화 ‘카운트’, 영화 ‘신차원! 짱구는 못말려 더 무비 초능력 대결전~날아라 수제김밥~’ 포스터(왼쪽부터). /사진=CJ ENM
CJ ENM 채널들이 민족 대명절 설을 맞아 다채로운 콘텐츠를 준비했다.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tvN, tvN SPORTS 독점생중계, 영화 ‘더 문’, 영화 ‘카운트’, 영화 ‘신차원! 짱구는 못말려 더 무비 초능력 대결전~날아라 수제김밥~’ 포스터(왼쪽부터). /사진=CJ ENM

그나마 CJ ENM의 올해 실적 개선을 점치는 금융투자업계의 시선은 위안이다. 자회사 티빙이 지난해 12월 구독료를 평균 20% 올리고,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3>이 신규 유료 가입자를 끌어 모으고 있어서다. <환승연애3>은 드라마 대비 제작비도 낮아 수익성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프로야구 중계권 확보와 KBO리그 경기 온라인 생중계에 하이라이트 장면을 모아둔 주문형비디오(VOD), 스트리밍 재판매 권리까지 따내 관련 수익이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티빙의 구독료 인상과 동시에 이용자 유입 기여도가 높은 인기 시리즈 <환승연애> 신규 시즌이 방영되고, 웨이브와의 합병 가능성도 아직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CJ ENM의 적자 축소를 내다봤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창립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계열사 대표이사 및 경영진에 “반드시 해내겠다는 절실함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또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그룹이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조직문화 근본 혁신을 위해 탁월한 성과를 달성했을 때는 파격적 보상을 하고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반드시 책임을 지는 문화를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달 말로 예상되는 그룹 인사에서 임기가 2025년 3월까지인 구창근 CJ ENM 대표가 수익성 악화를 책임지고 사퇴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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