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더 걸리는데… ‘한국 부자의 꿈’에 담긴 불편한 진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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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더 걸리는데… ‘한국 부자의 꿈’에 담긴 불편한 진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1.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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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갑진년(甲辰年) 푸른 청룡을 상징하는 해가 벌써 보름여가 지나갔다. 우리는 늘 연말이나 새해에 지인을 만나면 ‘새해 복 많이 받고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를 아낌없이 건네곤 한다. 중국인들도 ‘꽁시파차이’(恭喜發財)라는 인사를 새해에 나누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한자문화권의 공통 정서라고 할 수 있다. 복을 부르는 행위의 결과가 가져오는 이상적 상태가 ‘부자’(富者)로 실현하는 것인데, 모두의 바람임에도 사실 ‘부자’에 대한 구체적 정의는 모호하다. 부자에 관해 중국에서는 거상(巨商)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치부(致富)에 관한 철학적 방법론과 견해를 공자 등 다양한 철학가가 남기고 있다. 그러나 서양은 부자를 중상(中商)적 또는 자본가(資本家)적 관점에서 금, 화폐나 생산 수단을 축적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즉 동양에서 부자는 공동체를 경영하는 정치나 철학적 대상이었으나, 서양 자본주의 배경의 부자는 더 큰 생산이나 소비를 위한 축적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에서 부자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구나 한 번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전부는 아니겠지만),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과연 부자란 누구인가? 내가 아는 한 부자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금융회사다. 금융회사의 수익 원천은 돈이다. 금융회사는 정지상태에 있는(정태적) 돈에서는 이자(interest)나 보수(pay)를, 흐르는(동태적) 돈에서는 수수료(commission)를 수익으로 취한다. 당연히 돈의 양이 많으면 금융서비스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커지므로 돈을 많이 보유한 부자를 고객으로 다수 유치하기 위해 금융회사는 필사적으로 애써야 하는 동기를 갖는다. 그 결과 금융회사는 부자에 관한 정보를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축적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일부 금융그룹은 자기 고객 정보를 중심으로 나름 부자에 관한 분석보고서를 발표하는데, 대표적인 곳이 KB금융그룹(정확히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이다. 지난해 말 발표한 <2023 한국 부자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통해 한국 부자들의 모습을 가늠해 보자. 상식적 내용도 있지만, 처음 접하는 내용도 있어 재밌을 것이다.

자료 1. /출처=KB경영연구소
자료 1. /출처=KB경영연구소

먼저 금융회사는 어떤 사람을 부자로 인정하는 걸까? KB금융그룹의 한국 부자 보고서의 조사 대상인 ‘부자’는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이면서 10억원 이상 부동산(거주 주택 포함)을 소유한 사람이다. 언뜻 ‘이 정도 재산 소유자가 부자야?’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조사를 위한 하한(下限)이다. 필자 경험상 여기서 금융자산 10억원은 KB금융그룹 한 곳에 노출한 금액일 수 있다. 부자는 한 곳에 자신 재산을 몰아 맡기지 않으며, 좀처럼 전체 자산 규모를 노출하지 않는다. 부자 마케팅이 어려운 이유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부자의 지난해 1인당 평균 금융자산은 60억2000만원이다. 역시 보고서가 추정하는 한국 부자의 모습도 10억원이라는 기준과는 많이 동떨어진다. 보고서는 부자를 금융자산 보유 규모에 따라 자산가(10억~100억원), 고자산가(100억~300억원), 초고자산가(300억원 이상)로 정의한다. 2023년 현재 한국에서 자산가는 41만6000명이 1061조원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고자산가는 3만2000명이 558조원, 초고자산가는 불과 9000명이 무려 1128조원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1인당 금융자산으로 환산하면 초고자산가 약 1253억, 고자산가가 약 174억, 자산가 약 26억원에 이른다. 또한 부자들 자산은 한국 전체 금융자산 4652조원의 59%를 차지하며, 부자 숫자는 2023년 말 기준 인구 5133만명의 0.9%에 해당한다. 놀랍게도 1% 이하 부자가 대한민국 금융자산의 59%를 차지하고 있다. 초고자산가에 집중하면 더욱 격차가 선명해진다. 9000명은 대한민국 인구 0.02%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대한민국 금융자산의 24%를 차지한다. 2023년 12월 말 인구로 환산한 대한민국 1인당 평균 금융자산 약 9000만원과 비교하면 자산가는 29배, 고자산가는 193배, 초고자산가는 1392배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부자들의 총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은 60.3%로, 금융자산보다 더 많다. 총자산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보나 마나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서민이 보기에 부자가 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 모른다.

자료 2. /출처=KB경영연구소
자료 2. /출처=KB경영연구소

이러한 부자의 기대 수준을 들여다보면 서민과 격차는 더 커진다. 한국 부자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총자산이 100억~200억원은 되어야 스스로 부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응답이 71%였다. 2023년 3월 말 기준(가계금융복지조사) 가구당 평균 자산은 5억2727만원인데, 부자의 기대 자산은 17~35배 수준이었다. 또한 이들 부자가 목표로 하는 평균 자산 규모는 122억원으로, 보유 자산의 1.8배를 성장 목표로 한다.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목표 자산 금액은 커지는데. 100억원 이상 자산가는 평균 237억원의 목표 금액을 설정했다. 당연히 목표 금액이 커지면 이를 쟁취하기 위한 치열한 경제활동을 부자는 할 것이다.

자료 3. /출처=KB경영연구소
자료 3. /출처=KB경영연구소

그러면 부자들은 어떻게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방법은 소득일 텐데, 부자들이 밝힌 소득으로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거나 어림없어 보인다. 보고서가 밝히는 한국 부자의 평균 연간소득 잉여자금은 연 소득의 29%로 8825만원이다. 연간소득 잉여자금은 생활비 등 소비지출과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의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금액으로, 미래의 부 축적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여윳돈이다. 이 금액은 2022년 소비지출을 포함한 한국 가구 가처분소득 5482만원(가계금융복지조사)보다 많으며, 2023년 3분기 평균 소비 성향 약 56%(가계동향조사)를 고려한 소득 잉여자금 2428만원의 약 3.6배에 해당한다. 이렇게 한국 부자가 매년 큰 연간소득 잉여자금을 벌더라도 그들이 설정한 한국 부자 평균 목표 자산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 증가 금액 54억원을 벌려면 60년 이상 시간이 걸릴 것으로 단순 추정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정상적 경제활동으로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한국 부자는 설문에 버젓이 응답하고 있다. 결국 한국에서는 부자가 되기 위해, 또 더 부자가 되기 위해 부도덕하고 불법적 방법을 동원할 동기를 가진다는 구조적 원인을 보고서 이면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KB금융그룹의 조사 의도는 아니다.

보고서 의미를 곱씹어 보면 한국 부자의 운명과 본능에 ‘견리사의’(見利思義)의 행태는 한가한 소리이고,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결국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부자들의 과도한 욕망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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