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하지 않은 이야기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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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하지 않은 이야기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 최준영 책고집 대표
  • 승인 2023.09.2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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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 권리>는 거리의 인문학자로 20여년 노숙인과 함께했던 나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논픽션이다. 오랜 시간 거리에서 혹은 자활센터나 보호시설에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 대부분은 인생의 어느 문턱에서 주저앉아 길을 잃었거나 길을 잃은 채 홀로 남겨진 이들이다. 누구보다 그 막막함을 잘 아는 최준영 작가는 ‘인문학’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들고 다가간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에게 곁을 내어주고, 어깨를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의 고단하지만 핍진한 삶의 흔적들을 기록해 왔다. 그 흔적의 녹진함은 문학을 공부하는 이조차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가난할 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난하다고 마음까지 가난하지 않다’라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거리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김씨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내놓은 꼬깃꼬깃한 130만원 앞에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다. 거리에서 혹여 누군가에게 빼앗길세라 바짓단 안쪽에 넣은 뒤 박음질해 두었던 돈, 생의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 전에는 절대 꺼내 쓰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자기 몸의, 아니 세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돈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난하다는 형용사의 사전적 의미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몸과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 있다”이다. 물질적인 궁핍으로 몸이 괴로운 건 부인할 수 없지만, 마음이 괴로운 건 상대적 감정이 크지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결코 가난하지 않은 이유이다.

인문학이 누군가에게는 지식과 지혜의 방을 조금 넓혀주는 것일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그야말로 인간 근원을 탐구하는 깊은 학문일 수 있다. 하지만 소설가 반수연의 말처럼 매일 생존의 문제를 두고 싸워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가당키나 할까. 입댈 필요도 없이 그들에게 인문학은 사치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겼다. 해서 늘 인문학 강의는 그럴싸한 이들을 위해 그럴싸한 장소에서 진행되어왔다.

그런 통념을 깨기 위해 낮은 곳으로 다가갔다. 내게 ‘거지 교수’,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문제아로 낙인찍힌 청소년, 어린 나이에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손가락질받을까 두려워 자꾸만 웅크리고 숨어드는 미혼모,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자활센터에 모인 사람들 옆으로 갔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20년 동안 꿈쩍 않고 그들 곁을 지켰다. 포기하지 말자고, 가난하지만 우리도 인간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가난한 우리들의 마땅한 권리라고 말하면서.

어디로 갈지 모르겠거든 일단 가라

지난 9월 나는 제29회 독서문화진흥 유공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대통령상 후보에 올랐고, 국무총리 표창을 받게 되었다. 거리의 인문학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올해는, 마침내 전국 12개 시설에서 동시에 노숙인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게 되었다. 더디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조금은 일어나고 있다. 혹여 다시 뒷걸음질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늘 깨지고 깨진 덕분에 내겐 누구보다 든든한 맷집과 마음의 근육이 생겼다.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혹은 어디를 가더라도 일단 앞으로 갈 것이다. 미련할 정도로 묵묵히 쌓아 올린 그의 산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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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 권리> 추천글

여기엔 짐스러운 육체를 이끌고 포복하며 살아가는 고유 명사들의 삶이 있고, 그들 곁에서 기어이 어떻게든 희망을 생산해 내려고 하는 한 인간의 행군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 이야기들은 누가 준 사람이고 도 받은 사람인지를 구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랑의 상호 감염과 그 뭉근한 확산의 드라마에 이른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인간 근원의 문제를 탐구한다는 인문학이 매일 생존의 문제와 싸우는 이들에게 가당키나 할까. 하지만 그는 가난하다고 인간답게 살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난해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하지 말자고, 사회가 미리 규정지은 가난한 자의 운명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자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 가난하지만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은 공동체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가난한 우리들의 마땅한 권리라고 지난 20년 그는 한결같이 거리에 서서 말했다. -소설가 반수연

최준영 선생님을 만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거리의 인문학자로 널리 알려진 저자를 부르는 나만의 별명은 ‘책고집의 최고집’이다. 어려운 책고집 운영이 안타까워 수익도 좀 생각하시라고 해도 도대체 요지부동이다. 사람이 참 한결같다. (……) 어디로 갈지 모르겠거든 일단 가라고 하시지만 나는 안다. 최준영 선생님은 어디로 갈지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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