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문화재와 산림 방화범죄는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한 달여가 지난 2013년 1월 21일, <조세·공갈·방화범죄 양형 기준안> 공청회에서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의 주장입니다. 그로부터 9년 4개월여가 지난 2022년 6월 3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발생한 산불은 나흘째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흘 전에는 문화재청 허가 없이 지은 김포 장릉 인근 아파트가 입주를 강행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 이후 총리 산하기관 수장들도 잇따라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산하기관’이란 어떤 기관에 딸린 단체를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어제(2일) 머니투데이와 한겨레에 따르면, 총리 산하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강수진 고려대학교 교수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화재와 산림 방화범죄는 더욱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그 로스쿨 교수입니다.
1971년생인 강 교수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과 대전지검에서 검사로 근무했습니다. 이어 2008~2010년에는 공정위 송무담당관으로도 활동했고, 2011년부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강 교수는 1997~1999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근무하며 ‘카풀’ 등을 통해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노정연 현 창원지검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운전면허가 없어 자신과 강 교수, 이노공 법무부 차관 등 인근에 살던 검사 3명이 번갈아 가며 운전했다는 일화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강 교수가 공정위원장에 임명된다면 공정위 출범 이래 첫 법조인 위원장입니다. 여성으로서는 현 조성욱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따라서 여성 인재 등용 흐름에 맞아떨어집니다. 여기에 강 교수의 부친인 강현중 전 사법정책연구원 원장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국민의정부 시절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지역 편중 해소라는 명분도 있습니다.
당초 공정위원장 물망에 올랐던 장승화 무역위원회 위원장은 개인 사정으로 본인이 마다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통령실과 정부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강 교수를 공정위원장 후보로 잠정 결정하고 최종 검증 절차를 거친 뒤 다음 주 인선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과 함께 발표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강 교수의 검사 출신 등 이력을 놓고 공정거래위원장에 맞춤인지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 검찰 출신? 공정거래면 경제나 통상전문가가 해야지, 공정거래에서 편협된 분쟁 소송하던 사람이 맡으면 되나? 소송에서 이기려고 싸우는 실무능력보다는 그 사안이 경제에 주는 영향을 평가하고 조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카풀 해준 인연으로 공정거래위원장이라” “그러니까. 검찰 출신을 기용하는 게 이해관계인 거지. 검찰은 흠을 찾아내서 싸워 이기는 능력을 키우는 곳이고, 공정거래는 그 사안이 경제에 주는 영향을 거시적으로 판단하고 방향을 잡는 능력이 필요하다. 많은 경제통 통상통들이 할 일이지 소송전문가가 할 위치는 아니다”.
“자꾸 아는 사람을 임명하는 걸로 시비를 거는데 아는 사람 임명이 잘못된 게 아니라 능력이 없음에도 정당한 절차가 없이 별도의 이해관계로 임명이 이뤄지는 게 문제인 겁니다. 아는 사람 내지는 소개받는 사람 중 해당 역할에 가장 유능한 분을 선임하면 될 뿐이죠” “서울대 법대 수석, 하버드, 고대 로스쿨 교수에다가 예전부터 공정거래법 전문으로 활동하신 거 조금만 찾아봐도 나옴. 공정위원장에 능력 있는 사람 등용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님? 이번만큼은 경력 능력 고려한 인사인 듯”.
한편 역시 총리 산하기관인 국무조정실장에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날(2일)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방 행장을 비롯한 복수 후보군을 대상으로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 후보를 검증해 왔다”라며 “한덕수 국무총리가 방 행장의 임명을 제청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습니다.
행정고시 28회인 방 행장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에 이어,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기획재정부 대변인과 예산실장, 제2차관 등을 지냈습니다. 이후 보건복지부 차관을 거쳐 2019년 10월부터 수출입은행장을 맡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재인정부 경제수석 이력을 문제 삼아 중도 낙마한 윤종원 기업은행장과 달리, 인사 검증을 거친 뒤 내정이 유력합니다.
“사회 전체에 미치는 피해가 크다”. 맨 앞에서 소개한 공청회에서 강수진 교수가 강조한 문화재와 산림 방화범의 가중처벌 이유입니다. 강 교수는 아울러 “자기 소유 건조물 등에 대한 방화도 양형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공중에 위험을 초래하는 ‘공공위험범’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공정위는 1981년 4월 3일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산하 기관으로 출발했습니다. 1990년 4월 7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사무’를 넘겨받았고, 1994년 국무총리 소속이 되면서 소비자 보호 업무도 맡았습니다. 강 교수가 ‘독점과 불공정’이라는 공공위험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시장경제 지킴이’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