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난민 느는데… 집값 오르는 게 싫다는 ‘유주택자’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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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난민 느는데… 집값 오르는 게 싫다는 ‘유주택자’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0.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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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전세자금 등 실수요자들을 위한 대출 규제를 풀어달라는 글들이 여럿 올라와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전세자금 등 실수요자들을 위한 대출 규제를 풀어달라는 글들이 여럿 올라와 있다.

“드디어 당첨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다섯 살과 한 살배기를 키우는 주부의 글이 올라옵니다. <무주택 실수요자 중도금 대출 & 잔금 대출 규제 풀어주세요>. 금융당국 수장이 “실수요자 대출도 규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힌 이틀 뒤입니다. 청원인은 아껴둔 청약통장으로 공공분양 아파트에 당첨됐지만 높아진 대출 문턱에 가로막힌 현실을 하소연합니다.

‘월세난민’. 가진 돈이 없거나 버는 돈이 적어 월세를 내는 형태의 주거지를 찾아 떠도는 사람들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당국의 전세대출 규제 강화 움직임에 월세난민의 한숨 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 주요 시중은행들은 전세대출 한도를 크게 줄이거나 신규 취급을 중단하고 있어 월세난민의 떠돌이 생활은 길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당국이 권고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연 6%대를 맞추기 위해 전세대출까지 제한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8월 24일부터 전세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한 NH농협은행발 ‘풍선 효과’로 실수요자들의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먼저 우리은행은 지난달부터 대출 한도 관리 방식을 ‘은행 전체’에서 ‘지점별 관리’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시중은행들은 당국이 권고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연 6%대를 맞추기 위해 전세대출까지 제한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시중은행들은 당국이 권고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연 6%대를 맞추기 위해 전세대출까지 제한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또 전세대출의 총량도 ‘분기’에서 ‘월’ 단위로 기간을 줄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KB국민은행도 지난달 29일부터 전세대출의 한도를 대폭 줄였습니다. 임대차계약 갱신 때 임차보증금의 80%까지 가능했던 대출 한도를 ‘보증금 증액 범위 이내’로 축소한 것입니다. 하나은행은 오는 15일부터 KB국민은행과 같은 조치를 시행한다는 계획입니다.

시중은행이 이처럼 전세대출까지 옥죄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지금 집값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월세난민뿐 아니라 내 집을 가진 주택 소유자들도 집값이 오르는 걸 싫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날 국회 교통위원회 소속 진성준 의원실은 이 같은 설문조사(만18세 이상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0%) 결과를 내놨습니다.

진 의원실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부동산 관련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5.1%는 ‘집값 상승’에 대해 ‘주거비 부담이 커지는 것이므로 싫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므로 좋다’라는 비율은 14.9%였습니다. 특히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유주택자 집단에서도 ‘싫다’라는 비율이 81.5%로 나타났습니다. 무주택자는 이 비율이 95.4%였습니다.

거주 형태별로 ‘집값 상승이 싫다’라는 비율은 월세 세입자(95.4%), 전세 세입자(88.2%), 자가 거주자(81.9%) 순이었습니다. 이는 집값이 짧은 기간에 급등하면서 유주택자라 하더라도 세금 부담이 커지고, 특히 1주택자의 경우 전반적인 집값 상승 속에 상향 이동이 어려워진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집값이 높다고 보고 있다. /자료=진성준 의원실
우리나라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집값이 높다고 보고 있다. /자료=진성준 의원실

현재 집값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0.1%가 ‘매우 높다’라고 답했으며, ‘높은 편’이라고 응답한 이들도 30.9%였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압도적 다수인 91%가 현재 집값을 ‘높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값 상승에 대한 거부감이 이처럼 큰 상황이지만, 응답자의 절반은 앞으로 집값이 안정될 거로는 보지 않았습니다.

향후 집값 전망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2.7%가 ‘더 오를 것’이라고 답해 ‘떨어질 것’이라고 답한 비율 23.6%보다 2배 이상 많았습니다.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본 응답자는 23.7%였습니다. 특히 20대 연령층의 경우 ‘더 오를 것’이라는 응답률이 68.0%로, ▲30대 59.9 ▲40대 51.3 ▲60대 이상 45.5 ▲50대 45.4%보다 높았습니다.

지난해 7월 31일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의견을 묻는 조사에서는 자가거주자와 전월세 세입자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자가거주자는 계약갱신청구권 폐지 vs 유지 비율이 49.4% vs 39.9%로 ‘폐지’가 많았으나 ▲전세 세입자는 40.9% vs 53.2% ▲월세 세입자는 34.6% vs 52.3%로 ‘유지’ 쪽에 대한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집값 안정을 위한 최우선 대책으로는 ‘투기 단속’(29.8%)을 꼽았습니다. 이어 ▲주택 공급(24.6%) ▲정부 개입 최소화(19.7%) ▲다주택 세부담 강화(13.5%) ▲금리 인상(7.1%) ▲대출 규제(5.3%) 순이었습니다. 건설업자들이 부르짖는 주택 공급이나 당국이 적극적인 대출 규제도 아닌 투기 단속이 첫손이었습니다. ‘대장동 특혜 의혹’에 대한 분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시중은행들의 전세대출 축소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실수요자를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갭투기꾼들을 잡기 위해서라도 대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사진은 실거래가격 30억원이 넘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시중은행들의 전세대출 축소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실수요자를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갭투기꾼들을 잡기 위해서라도 대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사진은 실거래가격 30억원이 넘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시중은행들의 전세대출 축소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실수요자를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갭투기꾼들을 잡기 위해서라도 대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집을 가진 이들도 오르는 집값이 싫다는 설문조사에는 120% 공감합니다. 그래도 집 가진 이들의 푸념에는 따끔한 지적이 이어집니다.

“은행권이 전세대출을 잇따라 제한하면서 불안에 휩싸인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때 문에 서민들은 월세 생활을 해야 되고, 자칫 계약금을 날리게 됩니다. 금융당국이 규제를 완화해 줄 수 있도록 정부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10억 이상 고액전세에도 세금을 매겨라~~!! 그들이 무슨 서민이냐~~!!” “더 조여라. 한푼도 해주지 말아라. 전세가 매매를 밀어 올린다” “아니지.. 갭투기꾼들 벼락 빚거지 되나 발동동으로 바꿔라”.

“내 집만 오르는 게 아니니까. 세금도 엄청 올랐죠. 돈으로 거주지를 제한하는 거죠. 비참한 현실입니다” “유주택자 중에 제일 불쌍한 게 실거주 1주택이지. 다 같이 올라서 다른 데로 이사도 못 가~ 세금 올라~” “나와 내 월급은 하나도 바뀌는 게 없는데, 세금만 올라가서 생활은 점점 궁핍해짐” “결국 집값 상승은 다주택 보유자들이 주범이라는 거지... 다주택자 중과세, 임대사업자 세금 감면 해제 없이는 집값 안정은 먼 나라 얘기”.

“(집값이 올라서) 싫기는 무슨. 다른 집도 다 올라 차익 힘들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집 있다고 으스대는 것들 겁나 많음. 꼴랑 부모 좀 잘 만나서 집 있는 거면서 본인이 무슨 선견지명이 있다는 둥 오를 줄 알았다는 둥... 특히 파주 김포 등은 별거 없는데 겁나 올라 가지고, 특히 gtx 수혜라느니... gtx 생기는 지역 자체가 결국은 서울과 멀다는 방증인데, 거품으로 오른 건데 겁나 으스댐. 집은 꼭 있어야 한다며 누구는 안 사고 싶냐. 사람마다 시기가 다르고 가진 게 다른데... 그러니 폭락을 바라는 거”.

가계대출을 옥죄고 있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최근 수도권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집단대출 중단 사태에 대해 “대부분이 실수요라고 판단해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가계대출을 옥죄고 있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최근 수도권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집단대출 중단 사태에 대해 “대부분이 실수요라고 판단해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문제가 커질 것이기 때문에 빨리 대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지난 6일 국감에 출석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가계대출 규제에 대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다만 수도권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집단대출 중단 사태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실수요라고 판단해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고 위원장은 몇 번이나 이사를 했을까요. 청와대 청원인의 하소연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1년, 2년마다 이사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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