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때 묻은 돈 빼앗는 은행들의 ‘이자장사’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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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때 묻은 돈 빼앗는 은행들의 ‘이자장사’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0.14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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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한국은행으로부터 조달받은 정책자금을 중소기업에 빌려주는 은행들이 높은 대출금리를 책정해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조달받은 정책자금을 중소기업에 빌려주는 은행들이 높은 대출금리를 책정해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신용이 낮은 기업의 부실 가능성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

2013년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 12월 26일, 우리나라 중앙은행은 새해 통화정책 방향을 밝힙니다. 나라 경제의 성장세 회복을 뒷받침하는데 온 힘을 쏟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알립니다. 그러면서 총액한도대출 이름을 ‘금융중개지원대출’로 바꿉니다. 이들 기업에 대출을 이어주는 은행에 동참을 호소한 것입니다.

‘이자장사’. 예금이자는 덜 주고, 대출이자는 더 받는 은행들의 행태를 장삿속에 빗댄 네 글자입니다. 한국은행의 금융중개지원대출 제도가 은행의 ‘이자장사’에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한은으로부터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은행들이 마진을 붙여 높은 금리로 중소기업에 대출을 내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한은 자료와 경제통계시스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은행의 이자장사 실태가 확인됐습니다. 한은으로부터 연리 0.75%로 해마다 5조9000억원을 조달받은 은행들이 지방 중소기업에 빌려줄 때 적용한 평균 금리는 ▲2017년 3.63 ▲2018년 3.88 ▲2019년 3.51%였습니다.

은행들이 정기예금 이자보다 싸게 정책자금을 빌려 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의 기름때 묻은 돈을 챙겼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자료=용혜인 의원실
은행들이 정기예금 이자보다 싸게 정책자금을 빌려 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의 기름때 묻은 돈을 챙겼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자료=용혜인 의원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해에는 한은이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덜기 위해 지원금리를 0.25%로 낮췄는데도, 중개 은행들은 일반 중소기업 대출 금리보다 불과 0.12%p 낮은 2.85%의 이자를 받았습니다. 앞서 2018년에는 일반 대출 금리 3.88%와 같았습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각각 0.08, 0.15%p의 차이가 나는 데 그쳤습니다.

이들 은행이 1년짜리 정기예금으로 주는 이자와 한은으로부터 조달금리의 차익은 ▲2017년 0.91 ▲2018년 1.27 ▲2019년 1.10 ▲지난해 0.91%p였습니다. 정기예금 이자보다 싸게 빌려 자금 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의 기름때 묻은 돈을 챙겼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한은은 중개지원대출 금리가 높으면 한도를 줄이는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 자율에 맡긴다는 원칙이 우선이어서 실질적인 조처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용혜인 의원은 “정책금융의 취지를 반영해 이 프로그램에 따른 중개 은행의 대출 금리는 현행보다 1%p 정도 낮아져야 한다”라면서 “중개 은행이 싸게 조달한 자금으로 이자장사를 하지 않도록 제도와 감독을 정비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부당하게 지원된 금융중개지원대출이 700억원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한국은행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부당하게 지원된 금융중개지원대출이 700억원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한국은행

은행들의 이자장사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낮은 수신 금리와 함께 은행들의 행태에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 같은 비난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으로도 이어집니다.

“은행들 나라에서 관리 좀.. 아무리 돈 빌려주고 이자 받고 먹고산다지만 대출이자 대비 예적금 이자가 너무 낮다!!” “와 앉아서 갑질해가면서 얼마를 해 처먹은 거냐. 이러니 은행들이 욕 처먹지” “내가 볼 땐 한은이 돈 먹었네. 은행 자율에 맡기면서 0퍼센트대에 대출을 해줘?” “이 정도 매일 일이 터질 정도면 나라가 썩은 거 인정하고 기성세대 물러나라.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냐 어떻게”.

한편 한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당하게 지원된 금융중개지원대출은 175억9000만원이었습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따지면 모두 1573억2000만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위규대출’을 사유별로 보면 중도상환 보고 지연으로 722억7000만원이 발생했습니다. 대출기업이 이미 빚을 갚았는데도 은행이 한은에 보고하지 않아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경우입니다.

이어 ▲부도업체에 대한 대출이나 중복 지원 등의 기타 사유로 357억1000만원 ▲폐업 업체에 대한 대출로 268억8000만원 ▲지원 대상이 아닌 중견 및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오류로 224억6000만원 등이 위규대출로 적발됐습니다. 돈을 빌려도 비싼 이자 때문에 힘들고, 이마저도 엉뚱한 데로 새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의 현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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