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주식부자와 대선 후보의 ‘주 52시간’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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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주식부자와 대선 후보의 ‘주 52시간’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2.1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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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넷플릭스 창업자이자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창업자이자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 /사진=넷플릭스

“좋은 일터는 큰 파티를 열거나 좋은 사무실을 갖춘 곳이 아니다.”

1997년 8월 29일, 미국 실리콘밸리 남쪽 로스가토스. 리드 헤이스팅스는 마크 랜돌프와 함께 비디오 대여사업을 시작합니다. 그의 경영철학은 “직원을 어른스럽게 대해야 한다”. 조그만 회사는 그 뒤 5000%에 가까운 성장가도를 달리며,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에서 독보적 회사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 회사는 바로 <오징어게임>을 전 세계에 알린 넷플릭스입니다.

‘평생직장’. 입사해서 정년에 퇴직할 때까지 줄곧 근무하는 일터를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투자 열기와 함께, 집값이 미친 듯 뛰면서 성실한 노동의 가치로 인정받던 ‘월급’의 의미가 바래고 있습니다. 월급만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가치관이 확산하면서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15일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직장인들에게 일터는 평생직장이 아닌 ‘월급 받는 만큼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사람인이 최근 직장인 3293명에게 물었더니, 응답자의 70%는 ‘회사에서는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세대별로 보면 20대(78.5%)와 30대(77.1%)에서 이같이 생각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40대(59.2%)와 50대(40.1%)로 올라갈수록 줄어들어, 아직 월급 이상의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가치관이 남아 있었습니다. 월급의 의미에 대해서는 ▲‘노동의 대가’(63.3%, 복수 응답) ▲‘생계 수단’(51.6%) ▲‘가족 및 가정 유지 비용’(31.2%) 순으로 꼽았습니다. 반면 ‘미래 준비를 위한 경제 동력’이라는 답변은 28%에 그쳤습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은 ‘회사에서는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사람인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은 ‘회사에서는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사람인

또 응답자의 대다수(77.1%)는 급여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절반 이상(54.1%)은 ‘자산 투자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투자 활동(복수 응답)은 ▲주식(76.1%) ▲예·적금 등 목돈 저축(63.8%) ▲가상화폐(21.6%) ▲펀드·채권(19.7%) ▲부동산(11%) 순이었습니다. 3년 전 예·적금(86.4%), 주식(40.3%), 부동산·경매(10.9%), 가상화폐(5%) 순서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투자 활동을 하는 이유로는 ▲투자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어서(43.8%, 복수 응답), ▲월급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40.9%)의 이유가 많았고, 이어 ▲내 집 마련, 결혼 등을 준비하기 위해서(35.9%)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몰라서(32.7%)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월급으로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희미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면 회사에서 성장할 수 없다’에 20대(50.6%)와 30대(52.8%)는 동의하지 않는 쪽이 많았습니다. 반면 40대(61.8%)와 50대(70.2%)는 여전히 월급 이상의 업무를 해야 인정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에는 전체의 61.4%, ‘회사는 늘 월급보다 높은 성과를 요구한다’에 대해서는 89.7%가 동의했습니다.

사람인 관계자는 “젊은 세대는 각종 시험 등을 통해 ‘내가 한 만큼의 성과 보상’을 당연하게 경험했고, 기성세대는 고도의 성장기에 ‘돈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더니’ 회사가 성장하고 개인 자산을 축적했다는 경험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에서도 이들의 배경을 깊이 이해하고, 성과 보상에 대한 폭넓고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월급과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 댓글 속에는 최근 투자에 대한 열풍도 읽을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월급과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 댓글 속에는 최근 투자에 대한 열풍도 읽을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너도나도 월급과 사용자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투자에 대한 관심사도 고스란히 투영됩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세태라며 MZ세대가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댓글이 눈에 띕니다.

“회사에서 내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면서 일해봤는데 돌아오는 건 헌신짝 취급에 사람을 알로(얕잡아) 보길래 걍 포기하고 나왔다.” “ㅇㅇ 그런 회사는 빠르게 그만두는 게 맞음” “군대랑 똑같애. 너무 튀지도 너무 뒤처지지도 않는 게 중요. 특히 대기업들은 월급은 못 해도 잘해도 큰 차이 없다. 적당히 하는 게 최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월급만큼 일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회사 수익 많다고 그거 공평하게 나눠준 회사 있나, 당연한 얘기를 참. 받은 만큼 일하지 않은 사람을 족쳐야지 이간질하고 직장 내 왕따시키고 아부나 하는 인간들”.

“아니 이미 월급 받는 거 이상으로 일 시키는 상황에 더 일하라고 쪼기만 하고 보상은 없는데 뭔 일을 더 하래” “공을 가로채는 회사는 충성할 필요 절대 없음” “월급 받는 만큼 일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 평가는 누가 하는지 생각해봐라. 저 사람이 월급만큼의 값어치를 하는지 월급 이상, 이하를 하는지를 평가하는 건 본인이 하는 게 아니다” “잘리지 않을 만큼 일하는 게 직원이고 퇴사하지 않을 만큼만 월급 주는 게 사장이라던데 이게 누구 잘못이라기보단 이 살얼음판 같은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나 MZ세대는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자신이 성장한다고 느끼고 실제로 성장하게끔 해줘야 지속 가능할 겁니다”.

“요즘은 어중간하게 4~5백 버는 것보다 차라리 2백 버는 게 더 부자될 확률이 높음. 연봉은 진짜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해짐. 얼마가 됐든 돈을 잘 굴리고, 청약 우선 조건에 어떻게든 들어오는 게 중요함” “주식은 돈 잃어도 세금으로 뜯기고 기업 유상증자에 폭락하기 일쑤고 분석도 많이 해야 해서 솔직히 주식으로 돈 벌기 힘들다. 반면에 가상화폐는 몇 달 만에 수십억, 수백억을 쉽게 번다. 그리고 대부분 유튜브 허황된 말과 시세조작으로 수백억, 수천억 번 넘들이 많은데도 세금 1원 안 걷는다. 가상화폐 시세 조작한 X들 모두 조사해서 3년 이상 형집행하고 범죄수익 몰수해야 한다”.

사람인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직장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의 세대간 공존 노력으로 ‘불필요한 회식·야근 등 금지’(46.8%, 복수 응답)가 ‘권위주의 조직문화 개선’(53.8%) 다음으로 많았다. /사진=픽사베이
사람인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직장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의 세대간 공존 노력으로 ‘불필요한 회식·야근 등 금지’(46.8%, 복수 응답)가 ‘권위주의 조직문화 개선’(53.8%) 다음으로 많았다. /사진=픽사베이

한편 올해 우리나라 주식부자 순위를 보면 벤처 창업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집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7일 종가 기준 김범수 카카오 의장(3위), 방시혁 하이브 의장(7위),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11위), 김대일 펄어비스 의장(14위), 박관호 위메이드 의장(18위), 조영식 SD바이오센서 의장(21위) 등이 주식평가액 상위권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의 약진에 국내 주요 재벌그룹 총수들은 지난해보다 순위가 밀렸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6→8위), 최태원 SK그룹 회장(7→9위), 구광모 LG그룹 회장(11→19위), 이재현 CJ그룹 회장(16→26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19→25위), 구본준 LX홀딩스 회장(20→29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29→36위) 등입니다.

지난달 8일 벤처기업협회 등 16개 단체로 구성된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여야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 ‘주 52시간’ 조정이 포함된 건의서를 발표했습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1년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입니다. 창업가들이 주식부자로 잇따라 등극하면서도 직원들의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벤처 기업의 두 얼굴입니다.

“2030이 매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술 억지로 권하는 부장님 스타일이다”. 전날 유력 대통령선거 후보를 초대한 유튜브 진행자가 첫 방송에서 던진 말입니다. 이 후보는 같은 날 초청 토론회에서 “정치인은 노동자 편”이라면서도,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에 대해 보수적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요즘 스타일은 회식 자리에 먼저 빠져주는 부장이 대세입니다.

“받은 만큼, 받은 거보다 더하는 건 근로자 자유지만, 고용주가 더 요구하는 건 지금 시대에는 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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