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숙인’ 예산 전액 삭감, 이게 말이 됩니까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상태바
‘여성 노숙인’ 예산 전액 삭감, 이게 말이 됩니까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 최준영 책고집 대표
  • 승인 2024.03.26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가 올해 여성 노숙인 예산 1억원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더구나 2021년 이후 여성 노숙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각한 일이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달 방영된 KBS <시사기획 창>에 따르면 여성 노숙인은 잠잘 곳이 없어서 공중화장실에서 쪽잠을 자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못하면 거리를 떠돌며 밤을 지샙니다. 여성 노숙인은 아무 데서나 잠을 청할 수 없습니다. 잠자리가 노출되면 위험합니다. 언제 어느 때 폭력을 당할지 모르고 심지어 성폭력의 위험까지 끌어안고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여성 노숙인을 위한 지원센터가 서울에는 단 한 군데 있습니다. 거기 들어가는 예산 1억원이 전액 삭감된 겁니다. 1억원이라는 돈이 서민들 입장에서는 큰돈이긴 합니다마는 여성 노숙인의 수가 나날이 늘어나 최소한 1000명 이상이라는 걸 감안하면 1억원은 너무나 적은데 그걸 삭감한 겁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교도소가 있지 않습니까? 교도소에 죄를 짓고 들어간 재소자들에게 책정된 한 해 식비 예산이 34억원 정도 되는 걸로 압니다. 재소자 수를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예산은 아닐 수 있습니다. 1인당 하루 평균 한 5000원 정도의 식비가 책정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리에 계신 노숙인들은 어떤 분들일까요?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가족과 헤어지고, 정말 살 수가 없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심지어는 잠잘 곳마저 없어서 거리에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발버둥을 칩니다. 첫째는 살기 위해서 두 번째는 최소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니까 굉장히 어려운 겁니다. 이분들을 위해서 국가가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2년 전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2021년 말, 다음 해 노숙인 진료비 예산을 5억원이나 삭감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던 때였다는 걸 상기해 보면 이 역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그 소식을 접한 필자는 한 신문에 서울시의 행태를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그에 대한 서울시의 대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전년도 예산에서 사용하지 않은 예산, 즉 불용예산이 있어서 다음 해 예산에 그걸 반영했다는 겁니다. 얼핏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곱씹어 보면 서울시 공무원들이 그만큼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방증합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거리의 노숙인들은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했습니다. 해마다 이어지던 물품 지원이 현저하게 줄었고, 심지어 마스크마저 공급하지 않았습니다. 대전의 한 노숙인은 마스크 한 장을 무려 한 달여 동안이나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애초 하얀색이었던 마스크가 시커멓게 변했고, 그걸 착용한 모습을 보면서 경악했던 기억입니다.

공무원들 코로나 때 고생한 거 잘 압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민의 감염 지수를 낮추기 위해서, 감염자 관리를 위해서 무진 애를 쓰고, 특히 보건의료 쪽에 계신 분들은 정말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국민 건강을 위해서 노력하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희생과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성 노숙인 예산은 복원, 아니 증액되어야 마땅합니다.

지난해 인문공동체 책고집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도움을 받아서 전국의 노숙인 시설 12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인문학 강의를 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노숙인 시설 중에서 여성 노숙인 시설에서 인문학 강의를 했습니다. 서울열린여성센터와 디딤센터였습니다. 특히, 디딤센터는 서울에 있는 유일한 여성 노숙인 센터입니다. 그러나 민간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처럼 인문학 강의를 통해서 그분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습니다마는 그건 부차적인 일일 뿐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일은 먹을 기회와 잠잘 곳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입니다. 지자체에 떠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협력해서 거리의 삶을 사는 분들이 최소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간곡하게 호소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