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하한가’ 영풍제지·대양금속 거래정지, ‘또’ 늦었다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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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하한가’ 영풍제지·대양금속 거래정지, ‘또’ 늦었다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10.19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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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영풍제지 등의 불공정 거래 가능성을 조사해 검찰에 이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금융감독원
금감원은 영풍제지 등의 불공정 거래 가능성을 조사해 검찰에 이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금융감독원

이번에는 영풍제지와 대양금속이 돌연 급락한 끝에 거래정지를 당했다. 이런 일이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이번 사태는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일찍 발각됐어야 마땅했다. 왜냐하면 지난 6월 14일에 터져 나왔던 ‘방림 등 5종목 연속 하한가 사태’와 이번 사건은 판박이로 닮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라덕연발 8종목 주가 급락 사태’까지 맞닿는데, 이들 세 가지 유사한 사건의 밑바탕을 이루는 공통점이 다시금 뚜렷이 드러난다. 대한민국 증시에서는 아직 ‘주가 조작 범죄가 대낮에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다’라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한국 증시 역사상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메가톤급 ‘주가 조작 사건’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주가 조작 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 4월에 드러난 ‘라덕연발 주가 조작 사건’의 피해 규모만 하더라도 실로 엄청나다. 무려 10조원에 가까운 금액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피해자들의 금전적인 손실 규모만으로도 엄청난데, 범죄의 대담성과 추악성은 일반 대중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서 수백 억대의 부당이익을 거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 수사를 받고 있다. 주가 조작 주범들의 범행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던 다양한 직업군의 고액 자산가들이 부당한 수익에 눈이 멀어 불법적인 주가 조작 세력들과 오래도록 보조를 맞췄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스타급 연예인, 의사, 골프선수, 대기업 회장들이 장기간에 걸쳐 주가 조작범들의 범행 자금을 공급하는 도우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 범행이 들키지만 않았다면 그들만의 게임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되었을지 가늠키 어려울 정도였다.

그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 나온 뒤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방림 등 5종목 연속 하한가 사태’가 터져 나왔다. 범행 규모는 라덕연 사태에 비해 작았지만, 사건의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합법을 가장한 주가 조작 세력들이 공공연하고도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데다가, 금융 감독 당국이 주가 조작 범죄를 조기에 포착하고 신속히 조사할 능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사실까지도 한꺼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라덕연발 주가조작 사건’이나 ‘방림 등 5종목 연속 하한가 사태’나 모두 3년 이상에 걸쳐 장기간 특정한 세력들이 열 배 이상씩이나 주가를 무리하게 끌어올렸는데도, 그런 범행이 금융감독 당국의 감시망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비켜나 있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이번에 돌연 하한가를 기록한 영풍제지의 경우에도 금융감독 당국의 안이한 대처 방식이 지적받아야 마땅하다. 영풍제지의 경우, 앞서 발각된 두 사건과 판박이인데도 그들 두 사건이 터져 나온 이후 넉 달 이상이나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가 없었다. 공공연한 주가 조작 범죄가 매일 긴박하게 진행되는 와중에도 금융감독 당국은 주가 조작 혐의를 포착하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영풍제지의 경우, 지난 4년 동안의 기업 실적은 그 어떤 변화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정체 상태였음에도 시가총액이 불어나는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 정도로 주가가 무섭게 폭등했는데도 금융감독 당국은 이와 유사한 주가 조작 사건이 잇따라 터진 이후에도 무려 4개월이 지나도록 사기적 금융거래를 척결하기 위해 도대체 무슨 감시·감독을 했는지 묻고 싶다. 주가 조작범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일벌백계하고, 패가망신시키겠다는 금융감독원장의 서슬 퍼런 언사도 한낱 공염불에 그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올해 발생한 주가 조작 사건은 하나같이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진행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예전에도 그와 비슷한 주가 조작 시도들이 있었겠지만, 올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처럼 장기간에 걸쳐 대담하게 진행된 사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4년 동안의 실적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종목의 시가총액이 저점에 비해 무려 47.1배나 폭등하는 동안 상식을 지닌 대다수의 투자자는 ‘주가 조작 범죄’를 여러 번 의심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일부 투자자들은 금융감독 당국에 신고 절차도 밟았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토록 대담한 범죄가 여러 달 공공연하게 진행된 걸 보면, 금융감독 당국의 시장 감시 기능이 심각한 결함을 지닌 게 아닌가 염려스럽다.​

이번에 하한가를 기록한 영풍제지의 경우 ‘시가총액이 지나치게 불어나는 바람에’ 코스피200 편입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고 한다. 코스피200에 편입되면 공매도가 가능해지는데, 일부 세력이 미리 주식을 매도하는 바람에 주가 조작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웃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영풍제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업의 오너가 아들들을 제쳐두고 서른다섯 살 연하의 부인에게 회사를 물려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후 대양금속이 영풍제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무자본 인수 합병’과 유사한 행태를 보임으로써 시장의 의심을 사기도 했다. 급기야 올해 여름에는 ‘2차 전지 관련 사업’에 신규로 진출한다는 공시까지 내놓으면서 주가 상승을 부추겼다. 이번에 수사 당국이 영풍제지 사무실까지 압수 수색했다고 하니, 주가 조작 세력과 대주주의 교감은 없었는지도 낱낱이 밝히기를 바란다. 이 정도로 문제투성이인 기업이 코스피200에 진입할 예정이었다니 실소를 참기 어렵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금융감독 당국의 분발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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