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마’와 비석치기, 코카나무와 양귀비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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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와 비석치기, 코카나무와 양귀비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13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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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 관아 근처에는 스쳐간 수령들의 송덕비가 있기 마련이다. 송덕비에는 ‘레몬카’ 이론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선량한 목민관보다는 패악질에 매달린 수령들의 이름이 더 많이 새겨져 있다. 

한양에서 멀어질수록 백성들에 대한 수탈은 심해졌고 비석 모양의 얇은 사각형 돌을 세워놓고 또 다른 비석 모양의 돌로 넘어뜨리는 ‘비석치기’는 수백 년 동안 아이들의 놀이로 이어졌다.

가장 소극적이고 희미한 저항이자 저주를 품고 있는 이러한 주문은 백성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 태고유형으로 자리 잡았고 마침내 유교식 관료제는 시민의 모니터링(지방자치제도의 시행) 안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비석치기도 사라졌다.

영화 ‘자마’의 한 장면. /사진=엠엔엠인터내셔널
영화 ‘자마’의 한 장면. /사진=엠엔엠인터내셔널

#2. 영화 <자마>에서 치안 판사 자마는 자신이 식민지에 파견된 제국의 관리라기보다는 유배지에 내쳐진 제국의 루저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신대륙을 향하는 마음들엔 유라시아 대륙의 구체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탈주나 횡단의 의식이 있었음에도 자마는 부하직원인 보조 판사 벤투라, 작업을 걸었지만 벤투라와 이미 몸을 섞고 있는 공작부인 루시아나, 심지어 마약카르텔의 원형 같은 비쿠냐 포르토 등이 깨우치고 있는 남미 원주민과의 교감과 공존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사지를 잃게 된다.

<자마>에서 비쿠냐 포르토를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가 오히려 원주민들에게 사냥당하고 알 수 없는 의식을 치르는 장면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절정이지만, 제국의 중심에서 바라보았을 때 식민지 오지의 격렬한 생존투쟁은 할머니의 오래된 옛날 이야기처럼 집단 무의식의 심층부 어딘가를 자극할 뿐, 제국의 상징체계는 요지부동이다.

이처럼 제주도의 아이들이 비석치기를 하고 20세기 한국의 아이들이 비석치기를 한참동안 하고나서야 비로소 제주시장을 스스로의 손으로 뽑게 되는 것이다. 비슷하게 중심부에서 주변부를 관리하는 제국주의적 네트워크가 21세기 초 마약상들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코카나무와 양귀비를 통해 알아보자.

#3. 코카인은 코카나무 잎에서 추출한다. 중남미 마약카르텔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코카인시장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유통시킨다. 물론 코카나무의 재배는 안데스 산맥의 가난한 원주민들이 떠맡고 있다.

90년 대 초반까지 이 시장을 장악했던 콜롬비아의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사살되자 메데인에서는 젋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정책에 집중했다. 조직원들이 줄어들고 마약카르텔은 잠깐 동안 약해졌지만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이 격화하자 젊은이들은 다시 갈 길을 잃고 만다.

최근 들어 생산보다는 육로를 통한 미국으로의 코카인 배달이 중요해지자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점점 잔악해지는 멕시코 카르텔을 비롯해 중남미 마약카르텔의 본원적인 문제는, 인디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사와 차별로 백인들이 누리는 소위 문명과 안정적인 직업에서 소외된 인디오 젋은이들이 끊임없이 카르텔의 조직원으로 유인되는데 있다.

#4. 아편전쟁이 끝나고 150여 년이 지났지만,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와칸 회랑을 통해 접경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자 중국은 본능적으로 신장 위구르족과 탈레반의 접속을 차단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탈레반이 지난 20년 동안 미국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경제적 기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배하는 양귀비에서 채취와 유통시키는 헤로인이 전 세계 헤로인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탈레반이 국민국가를 완성하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탈레반은 양귀비의 재배를 중단하지 못할 것이다. 신장 위구르 반군과 마약상은 필요불가결하게 연결되고 실크로드가 활성화할수록 마약시장은 위축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에필로그. 이처럼 G2의 패권다툼에서 경제력, 군사력 못지않게 제국의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마약상들의 준동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G2 가운데 어느 나라가 주변부 국가 젋은이들을 체제 안으로 삼키고 안정적인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시해 마약 카르텔 혹은 반군의 조직원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낮출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주변 국가들이 권위주의 국가인지 민주주의 국가인지의 차원, 혹은 주변부 국가들이 중심부의 다국적 기업과의 관계에서 부패해버렸는지 아니면 청렴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지의 차원이 좀 더 중요한 과제임은 20세기 미·소 냉전의 예에서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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