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봤지? 문제는 ‘일관성’이야!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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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봤지? 문제는 ‘일관성’이야!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1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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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괴물' 포스터. /사진=JTBC
드라마 '괴물' 포스터. /사진=JTBC

모두에게는 제각기 삶의 근원 같은 순간이 있다. <괴물>(2021년, JTBC)을 보면서 내내 떠올렸던 것은, 도서관에서 오후 3시쯤 졸음이 몰려오면 펼쳐들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겉표지이다. 1년 반 가까이 건조한 오후 한켠에서 꺼내들었던, ‘의식의 흐름’ 직전까지 인간심리를 어떻게든 파헤쳤던 이 치열한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보험이었다.

수험생활은 길어졌지만 서사에 대한 접근성은 연결회계처럼 넓어졌다. <괴물>을 <카라마조프네 형제들>과 연결시키는 것은 우리 문화에도 내재한 살부계 전통 때문일 것이다. <괴물> 속 배우들의 연기는 눈부셨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표정에 이유가 있었던 것이 드러나자 시나리오 작가가 궁금해졌고 나중에는 배우들의 잠재성을 이끌어내는 향연을 연출하는 감독이 부러워졌다.

극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살아 꿈틀거리게 만드는 것은 개연성과 조화이다. 이와 비슷하게 경제당국의 정책이 효과성을 갖게 하는 요소는 ‘미조정’(fine tuning)과 ‘일관성’(consistency)이다. 미조정과 일관성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개별 경제주체들이 좀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요소는 일관성이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례에서 미조정보다는 일관성이 우위에 있는 정책 가치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소득주도성장’이다.

토마 피케티의 임의적인 연대기 분석에서 감흥을 받은 듯 이미 대규모 기업집단에게는 직접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 매달림으로써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들과 노동자들을 불필요하게 대립하게 했다.

키오스크의 등장으로 자본이 스스로의 입장을 정리했듯이 2019년 상반기에는 기업들이 적응을 끝냈고 노동에 대한 자본집약도는 더욱 고도화했지만, 경제 활력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일용근로자 등 실업자들은 이후 코로나 국면에서 배달노동자 예비군 역할을 하면서 소득주도성장은 재난지원금이나 기본소득의 지급방식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

수십조 원을 지출한 정책실험 결과, 선별 지급이 아닌 보편 지급 방식이 좀 더 효과적임이 명백해졌음에도,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선별 지급방식에 집착함으로써 소득주도성장과 논리적 수미상관을 이루는 보편적 지급방식을 외면한다. 결국 소득주도 성장은 일관성을 잃고 단순한 복지정책에 불과함을 스스로 선언했다.

또 하나는 ’주택가격안정’이다.

현정부 출범 이래 세 번의 짧은 주택가격 안정기가 있었다. 2018년 상반기, 2019년 상반기,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이다. 이 기간 모두 유동성과 제로금리가 생산과 소득의 증가 없이 자산가격의 버블로 이어지는 상황을 무시한 채 발표되는 정책 당국의 선언적 의지에 대한 ’즉자적 반응’이었다.

결국, 2018년 여름 서울시장의 옥탑방 구상과 하반기 국토부의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성방안 등이 발표되면서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심리가 폭발하고 말았다. 뒤이어 2019년 초여름에는 제3기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미국 연준의 테이퍼링과 더불어 찾아왔던 두번째 안정기도 수명을 다했다. 마지막으로 2021년 봄, 2·4 부동산 공급대책이 발표되면서 코로나사태와 주식시장 활성화에 따른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이뤄진 세번째 안정기도 효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와 같이 분양가상한제나 대출규제 같은 시장에 대한 직접 규제로 달성되는 일시적 안정기가 공급확대 속에 감추어진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가 촉발하는 투기수요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놀라운 것은 다주택자와 단기보유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가 2021년 6월이 되어서야 겨우 시행된다는 것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마저도 ‘매물잠김’이라는 명목 아래 무산시키려는 시도가 끊임없다는 것이다.

일관성은 정책의 생명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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