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단독강화와 러시아라는 벤치마크 [영화와 경제]
상태바
‘모가디슈’, 단독강화와 러시아라는 벤치마크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16 2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의 한 장면.
영화 의 한 장면.

트럼프의 패퇴로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과제 또한 점점 희미해질 때, 마음 속 한편 실낱같은 희망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오래 전 TV문학관에서 보았던 <단독강화>였다.

분단 이후 남북한의 수많은 인사와 개인들이 지구상 어느 곳에서든 경쟁이 아닌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단독강화에 도달하곤 했다. 장백산맥이든 태백산맥이든 깊은 산속의 샘물은 강물에 합류해서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간다.

이와 더불어 민족의 강역 외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정학적 변동성 가운데 주시해야 할 패러다임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첫째는 ‘미·중간의 패권다툼’이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 후 친미정권이 신속히 붕괴되는 장면은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해 실크로드를 둘러싼 미·중간의 패권 다툼은 좀 더 가시적으로 표면 위로 부상할 것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동맹의 울타리 안으로 북한을 끌어들이는 것이 북한을 압박하는 것보다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생겼다.

얼마 전 육순잔치를 거하게 벌인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아닌 클린턴이 보여주었던, 북핵 폭격에서 대북 외교관계 수립으로의 대전환을 선택할 가능성이 좀 더 커진 것이다.

북한이 <모가디슈>의 어린 반군들처럼 꿩총(실제로 총을 쏘지 않고 시늉만 하는 것)과 실탄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감을 입증하는 것, 북한의 불필요한 무력시위가 임계점을 넘어 군사적 충돌로 번져가지 않게 남한 측이 관리할 수 있다는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또 다른 하나는 ‘러시아의 동맹적 가치’다. 나폴레옹이 제정 러시아를 침공해 초토화 작전으로 궤멸당하지 않았다면, 히틀러가 소련을 공격해 스탈린그라드에서 참패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중공과 ‘데탕트’하지 않았다면, 소련은 여전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다시 전개된 미국과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러시아의 위치는 공고하다. 트럼프가 거의 본능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친밀감을 드러낸 것은 이 싸움이 이념전이 아니며, 인도·태평양 전략의 궁극의 착점은 러시아(북한을 포함해서)를 방관적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하는 것은 명·청 교체기 사대부의 입장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입장도 포함한다.

9·11테러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경제는 중국, 군사·외교는 미국과 발맞추어 왔지만 이제는 러시아의 외교정책에 공명하는 것도 필요한 순간이 왔다. 러시아가 미국 편에 선다면 말할 것도 없이 올라타야 하고 중국 편에 선다면 50년 이상의 전략적 플랜이 가동되어야 한다.

모가디슈에서 단독강화를 통해 짧게 형성되었던 유대감이 본국으로 송환되기 직전 자기검열을 거쳐 표정 아래 감춰지는 모습은 국가단위에서 남·북한이 각각 중국이나 미국에 대해서 표시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체계적 억압이지만 러시아라는 틈을 이용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30년 전 노태우정부의 북방정책이 소련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21세기의 북방정책은 실크로드를 둘러싼 미·중의 패권경쟁 속에서 러시아라는 벤치마크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필요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경원선을 개통하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연결하는 것은 바이든과 김정은이 만나는 것, 개성공단의 재가동보다 우선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