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라’의 봉제공과 가계빚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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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라’의 봉제공과 가계빚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0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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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모라'의 한 장면.
영화 '고모라'의 한 장면.

‘낙원상가 4층에는 3개의 극장이 있다. 상가 옆에는 아파트가 붙어 있는데, 대규모 밀집 주거지역이 슬럼화를 벗어나는 길은 많지 않다.

재개발조합의 구성에 실패한 낡은 아파트는 자본의 배설물처럼 절망을 자양분으로 마약·총기 밀매, 산업폐기물 처리, 짝퉁·매춘 산업의 예비군들로 득실대는 아지트가 된다.

범죄 클러스터는 사실, 신축 아파트단지의 미래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슬럼화된 음택에 사찰이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선지식의 피할 수 없는 책무가 된다.

새벽 3시, 날벌레의 항로에 느닷없이 끼어든 차에 부딪혀 너무 많은 벌레 똥이 생긴다. 하안거 기간에는 야간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오래 전 <고모라>(2008년, 마테오 가로네 감독)를 보고 한 영화 전문지에 올렸던 글이다. 고모라는 나폴리를 중심으로 암약하는 ‘카모라’라는 마피아를 빗댄 제목이다.

1년 전 우한을 봉인하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마무리될 줄 알았던 코로나사태가 이탈리아에서 좀비처럼 극성을 부릴 때 ‘고모라’가 먼저 떠오른 건, 영화 속에서 다루어진 여러 군상 가운데 중국인 봉제공 때문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시제품이 마피아의 손을 거쳐 중국인 봉제공들에게 건네지면 그들은 완벽한 짝퉁을 만들어 유통한다.

마르코폴로가 700년 전 중국을 유랑하듯이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유럽으로 흘러들어 갔을까? ‘일대일로’는 그 잠재성을 군사·경제적 전략 목표로 현시한 것이다. 봉쇄정책은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유력한 수단이지만, 제국주의 국가 간 패권 다툼에서는 전면전에 앞선 기싸움이나 포석으로 거의 변수 없이 진행된다.

시진핑의 ‘일대일로’와 트럼프 집권기에 성립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내세운 미국과 옛 소련 간의 냉전과 무엇이 다를까.

첫째, 세계대전의 위험이 북반구가 아닌 남반구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둘째는 군사적 긴장이 경제체제 경쟁에서 판가름 난 냉전과 달리, 무역 전쟁은 결국 문화·군사적 충돌로 번질 것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대서양이 아닌 태평양 양안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지속되면 그 억압 속에서 유럽과 러시아가 부활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중 간의 대결이 냉전처럼 전면전 없이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기엔 지구의 인구가 이미 70억명을 넘어섰고 시간은 중국 편에 있기 때문에 미국은 결국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다.

코로나로 멈춰버린 유럽처럼 ‘고모라’는 서구문명의 잔해를 보여주는데, 거기엔 욕망의 찌꺼기와 민주주의의 자기 기만이 있다. 희망을 잡아먹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내부의 모순과 맞서 민주주의를 다져 왔고 거기에는 욕심을 희미하게 만드는 성리학적 공동체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식은 파편화된 개인사회에서 오히려 절박하게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통일 패러다임보다는 한반도의 전쟁위험 자체에 민감하게 집중할 여지가 생겨났다. 미국이 우리에게 독일이 나토에 가입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에서의 협력을 요구할 때, 미국과 중국에 쇼당을 걸어야 하는 순간, 민족 공동체와 위험 공동체라는 서로 다른 차원의 공동체의식 간에 불일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국면을 달리 이겨낼 방도는 없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 다원주의 안에서 어느 편에 서지 않더라도 고립되지 않을 실력을 키우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1996년 외환위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지난해 코로나 사태 등 한 세대 안에 세 차례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기업의 부채는 정부를 거쳐 가계로 전이되어 왔다. 총수요 부족이 이미 만성화됐음을 뜻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수출을 통해서 살아남겠지만 근로자 개인, 혹은 가계는 <고모라>에 나오는 중국인 봉제공처럼 일자리를 찾아 세계로 흩어져야 하고, 이것은 사회 구성원들을 더욱 위험에 민감하게 만들 것이다.

가계부채로 인한 만성적인 총수요 부족을 완화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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