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벌’이란 숲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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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재벌’이란 숲에서 벗어나기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04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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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밀의 숲'. /사진=CJ ENM
드라마 '비밀의 숲'. /사진=CJ ENM

우리의 산은 헐벗은 민둥산이었다. 소나무 숲이 솟아오르고 녹음이 짙어졌지만 고단한 일상에 생채기 난 마음은 여전히 붉다.

만수산 드렁칡은 얼기설기 얽혀있어 명쾌하게 잘라내기도 어렵다. 재벌을 중심으로 정치권, 관료, 종교계, 언론, 검찰 등의 인맥이 리좀 식으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각각의 재벌가는 고유의 거점을 구성하고 있어 네이팜탄으로 불태워도 금방 무성해진다.

마치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처럼 체계의 핵이 없어 더욱 제거하기 어렵다. 한국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는 투명성, 법적 평등성 등의 부문에서 ‘신비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지만, ‘부자 3대 못 간다’는 오래된 경구의 범주 안에 갇혀있기도 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재벌을 혁파하는 것이 아니라 인적·물적 자원이 특정 기업집단에 집중되는 것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불확실성'으로 노동시장에서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에 취업해도 인생 전반을 설계할 수 있게 주거복지, 교육복지의 격차를 완화한다. 둘째는 '모니터링'으로 이미 재벌에 포획당해 재벌현황이나 파악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을 검찰이나 국세청으로 이관 혹은 자동 연계함으로써 배임, 횡령, 탈세, 기업집단 내 내부거래, 경제적 약자와의 불공정거래행위 등을 한 묶음으로 신속히 처분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은 '소비자 주권'으로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견제를 언론이나 정부가 아닌 소비자가 직접 주도할 수 있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한다.

국가 간 경쟁력에 필요한 이상으로 특정 기업에 자원이 집중되지 않고, 새로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집단에 불필요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고, 신흥 기업집단의 출현이 시장의 선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산업화가 본격화된 이래 우리의 오랜 꿈이다.

‘비밀의 숲’에서 조승우는 배두나와 달리 인간적인 결함이 있고 그로 인해 거대악과 대립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을 갖게 된다. 체제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비밀의 숲’도 ‘킹덤’ 시리즈만큼 멈출 수 없다. 사실상 사이코패스였던 조승우가 회를 거듭할수록, 괴물들과 접촉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인간적인 면을 갖춰나가는 모습은 아이러니다.

윤과장이 사회악을 처단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과 갈라지는 지점은 당사자성에 있다. 따라서 자신을 타자화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면, 귀무가설을 오직 증거로만 기각시키는 것을 훈련하지 않는다면, 어설픈 교감은 우리를 전체주의의 괴물로 만들 뿐이다.

몇해 전 땅콩회항 사건 직후 제주도에 갈 일이 있을 때 일부러 저가 항공사인 진에어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대한항공의 자매 항공사였다. 재벌을 다루기 위해서는 자본의 축적에 들어간 시간만큼의 축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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