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버닝, 유동성의 물줄기를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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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버닝, 유동성의 물줄기를 바꿔라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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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 스틸컷.
영화 ‘버닝’ 스틸컷.

음료수병을 비틀어 병마개를 따다보면, 좌절과 권태가 ‘허무’라는 만에서 만나듯이, 플라스틱병이 순간 부풀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파주에 가면 황희, 이이, 성혼의 묘역이 있다. 임진강과 한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땅임에도 분단상황에서 산업화에 누락된 오래된 고을이다.

강 건너 9호선을 타고 동작에 가면 부동산 투기에 어설프게 성공한 레저 중에 타노스 마냥 오만과 자기 기만을 블렌딩하며 망상에 빠져들 수 있는 물적 기반을 갖춘 자도 있다.

파주에서 마포, 그리고 동작을 오가던 종수가 해미의 우물을 끝내 찾지 못했다면 벤에 물들어가며 전도몽상에 빠졌겠지만, 불에 탄 비닐하우스를 찾아 헤매며 안도해하던 그는 비닐하우스 파수꾼으로 탈바꿈한다.

계급을 나눠보는 것은 존재와 인식이 충돌하는 아픔에 직면할 것을 필히 요구한다. 여기에서 수많은 정책 담론이 시작한다.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우리나라를 포함해서)은 주기·반복적 정권교체 속에서 거시적인 정책 균형을 찾아간다.

오래된 문제, 자본이득에 관한 논쟁적 담론은 가지지 못한 자의 생생한 요구에 대한 긴박한 수용이 결국 가진 자들의 반응을 미처 계산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실패로 누적되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산계급과 달리 부르주아지들에겐 시간과 정보가 그득하다. 그들은 국회에서의 합의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연속성이 의심되는 행정명령의 히스토리에 관한 전문가의 조언을 붙잡고 블러핑할 수 있는 판돈과 시간적 여유를 갖고 버틸 수 있다.

얕은 회한의 눈빛으로 저수지를 바라보는 벤의 뒷모습에서 종수는 무엇을 보았을까? 자본은 욕망만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변수에도 민감하다. 종수는 벤에게서 욕망과 두려움을 지나 공허나 지루함을 엿보고는 가차 없이 응징한다.

영화 ‘버닝’ 스틸컷.
영화 ‘버닝’ 스틸컷.

욕망의 공허함 속에 증여와 상속(가업승계라는 경직된 요건을 통과한 경우도 있음)이라는 생의 마지막 의욕을 불태우는 부모를 달래지 못하거나, 두려움을 따돌리고 따분해하지만 소유권 이전 등기할 때만은 알 수 없는 쾌감에 사로잡히는 3채(은희경의 말대로 3부터는 그냥 많은 것이다) 이상 다주택보유자의 편집증을 횡단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이 마치 추격전처럼 2017년 이후의 주택가격 상승률을 쫓아갈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이자율이다. 2022년 말까지 제로금리는 주어진 조건이다. 조건을 무시하면, 서민들의 주거안정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도착(到錯)을 경험하고 고립될 것이다.

제로금리와 코로나로 인한 경제활동 수축이라는 환경에서 창궐하는 유동성의 물줄기를 어떻게든 기업에 대한 투자(주식·창업 등)로 돌려놓는 것이 우선이다.

순서는 곧 논리이겠지만 경험 속에서 다듬어진다. 1996년 외환위기나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거치면서 부동산은 위험자산임이 명백해졌음에도, 박근혜정부 중기 이후 현재까지는 사실상 무위험자산의 지위를 회복했다. 금이나 국채의 가격은 경기 사이클에 대한 불확실성이 낮아질 때 비로소 안정된다.

지금 시중에 가득한 불확실성을 모든 수준에서의 창업과 신규투자라는 용광로 안에서 태워버려야 한다. 그리하면 백신이 만들어지고 제로금리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전에도 집값은 시들해질 것이다. 동학개미는 무의식중에 그러한 염원을 품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이 점에서 군사정권 시절 차관을 통해 경제를 개발·성장시키고 그로 인해 인플레가 더해져 자산가격이 폭등했던 것과는 다르다. 지금이야말로 소상공인의 창업을 지원하고 중견기업의 기술혁신과 장인정신을 보장하고 대기업의 신규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할 때다. 내부에 흘러넘치는 돈의 물줄기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우리는 또 한번 일본의 뒤통수(버블 붕괴)를 보게 될 것이다.

<버닝>만큼 몰입도 높고 여진이 오래 가는 영화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제 새롭게 관객을 기다리는 영화 중에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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