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을까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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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을까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15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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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 한 장면.
영화 의 한 장면.

오래전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틀 때 냉장고에서 꺼낸 콜라보다 당기던 일은 새로운 영화 한 편 보는 것이었다. 홍상수의 몇몇 영화도 그랬다.

구애에 성공한 경험이 쌓이다보면 엽색이 된다. 익숙해진 패턴이 무차별해지면 염치의 공간이 생기고 비로소 상대방을 의지를 가진 주체로 받아들인다. 일종의 거리두기 속에 자신을 낮추는 편리함을 깨닫게 되면 찌질해진다.

찌질함이 응력으로 전환되는 것은 오로지 양들의 침묵이 끝나는 순간, 실제로 들려온 총성 한방, 외마디 절규가 세계를 뒤흔든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당기지 않게 된 것은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서부터다. 임금노동자들은 일상이 주는 예측가능성에 우선적으로 반응한다.

돌이켜보면 그의 영화적 변주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일상성 안에서의 가장된 탈주에 머문다. 성적인 긴장감을 동력으로 플롯이 흘러가고 폭력은 철저히 배제된다. 안전한 일탈은 림 위에 빙그르 도는 농구공처럼 궤도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추락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하강이 리비도에 덜미를 잡히면 구조화된 세계는 날것을 감추고 ‘윤대녕식 회귀’에 생을 숨기게 되지만, 미얀마를 보라. 세계는 기어코 이빨을 드러낸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겁에 질린 채 시내버스 노선 위를 떠돌 뿐, 들판으로 나가 늑대처럼 짖지 못한다.

하지만 경제현상과 예측은 오히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거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지금 벌어지는 인플레션과 이자율에 관한 논쟁도 그러하겠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 시중에 흩뿌려진 유동성이 70~80년대의 고인플레션으로 이어져 화폐자산이 아닌 실물자산을 보유하는 것이 구매력을 유지하면서도 이자비용 등 고정비용의 레버리지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승자가 된다.

둘째, 명목이자율의 증가가 담보대출을 통해 부동산 등을 취득한 자산 보유자들의 채무상환 부담을 가중시키고 이에 따라 한계상황에 놓인 채무자들이 자산을 급매함으로써 자산가격이 폭락한다.

강남 신축아파트의 4할 이상에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두 번째 시나리오를 준비해야만 하고 이 버블의 끝자락엔 인구감소로 인한 자연성장률 감소라는 2차 충격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전에 ‘긴축 발작’(taper tantrum)이 자본시장을 먼저 타격하겠지만….

이러한 사이클은 비껴난 듯하다. 그 와중에 서독은 통일독일이 되었고, 미국에서는 여전히 이민자들이 담 구멍을 찾고 있다. 또한 중국의 임금에 대한 노동의 공급탄력성은 사실상 무한대이다.

따라서 우리는 통일은 못하더라도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개성공단의 사례와 거꾸로, 파주나 김포 지역으로 북한의 노동자가 건너와서 근로를 제공하고 다시 북한으로 퇴근하는 것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시도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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