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9월 2일, 북녘에서 본 ‘일식’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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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년 9월 2일, 북녘에서 본 ‘일식’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0.06.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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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일식. /사진=픽사베이
부분일식. /사진=픽사베이

6월 21일 우리나라 전역에서 부분일식을 볼 수 있었다. 다음 일식은 이제 10년 뒤에나 볼 수 있다. 우리 눈과 해를 잇는 직선 위에 달이 중간에 놓여 해를 가리는 것이 일식이다. 지구에서 맨눈으로 봐도 둥근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늘 크게 보이는 천체는 달과 해, 딱 둘 뿐이다.

이 둘이 서로를 가리는 일식은, 높은 배율의 망원경이나 복잡한 관측 장치 없이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 놀랍고 신기한 천문현상이다. 해는 달보다 무려 400배 정도나 크지만, 달보다는 또 약 400배 더 먼 곳에 있어서, 지구에서 보면 둘은 약 0.5도 각도의 비슷한 크기(시직경)로 보인다.

◆ 달은 어디로 숨었을까

지구와 달은 각각 해와 지구를 초점으로 한 타원 궤도를 따라 공전한다. 지구에서 해와 달까지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고, 따라서 지구에서 본 둘의 시직경도 조금씩 달라진다. 지구에서의 일식이 때와 장소에 따라 개기일식, 금환일식, 그리고 부분일식의 형태로 다르게 일어나는 이유다. 해의 일부를 가리는 것이 부분일식, 전부를 가리는 것이 개기일식이다.

상대적으로 지구에서 달이 좀 더 멀 때 일식이 일어나면 달이 해 안에 쏙 들어간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달이 채 가리지 못한 해 둘레의 밝은 부분이 마치 금반지처럼 보여 금환일식이라 부른다. 일식은 멀리 있는 축구공을 눈으로 보면서 손에든 동전으로 그 모습을 가리는 것과 같다. 팔을 뻗어 동전을 더 멀리해 축구공을 모두 가릴 수 없게 되는 것이 금환일식에 해당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지금은 지구, 달, 그리고 해의 삼각관계에서 무척이나 특별한 시기다. 달이 지구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어서, 먼 미래에는 금환일식은 볼 수 있어도 개기일식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거꾸로 먼 과거에는 달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워 금환일식을 볼 수 없었다. 현재는 개기일식과 금환일식을 모두 볼 수 있는, 지구, 해, 달로 이루어진 일식 삼각관계의 황금기다.

지구에서 달을 보면, 그 모습이 약 한 달을 주기로 변한다. 그래서 우리가 한 달을 ‘한달’이라 부른다. 해 진 직후 서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눈썹 모양 초승달에서 시작해 달의 오른 쪽 절반이 밝게 빛나는 상현달이 되고, 일주일 쯤 더 지나면 둥근 보름달이 된다. 지구에서 볼 때 달 전체가 둥글게 밝게 빛나는 모습이 되려면 달은 해의 180도 반대쪽에서 햇빛을 정면으로 반사해야 한다.

따라서, 보름달은 해가 서쪽에서 질 때 동쪽에서 뜬다. 보름달에서 일주일 정도 더 지나면 이제 달의 왼쪽 절반이 밝은 하현달이 된다. 해가 막 뜨는 새벽녘 하현달은 남쪽하늘 높이 보인다. 날짜가 더 지나면, 해의 오른편에 있는 달은 매일 조금씩 왼쪽으로 이동한다. 결국 해와 아주 가까워지면 우리는 달을 볼 수 없게 된다.

달이 없어졌을 리가 없다. 그믐날에는 밝은 해 바로 옆에 달이 있어 우리가 달을 보지 못할 뿐이다. 달이 해를 정면에서 가리는 것이 일식이니, 당연히 일식은 그믐에만 생길 수 있다. 아니다 다를까, 얼마 전 일식이 일어난 6월 21일은, 음력으로는 4월 29일 다음날인 5월 1일이었다.

일식이 진행되는 과정. /사진=픽사베이
일식이 진행되는 과정. /사진=픽사베이

맨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수많은 별들이 우리를 둘러싼 커다란 구의 안쪽 면에 붙박여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별들이 총총히 붙박여 있는 이 천구 전체는 지구에서 보면 하루에 한번 회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천구 위에는 해가 하루하루 조금씩 움직이는 해의 길인 황도가 놓여 있다. 해는 천구위에 깔려있는 기찻길 같은 황도를 따라 한 해에 한 바퀴를 움직인다. 바로 우리가 일 년을 ‘한해’라고 하는 이유다.

◆ 10년 뒤 일식을 기다리는 까닭

마찬가지로 달의 길, 백도도 천구위에 놓여 있다. 흥미롭게도 천구위에 놓인 두 기찻길 황도와 백도는 서로 정확히 겹치지 않는다. 약 6도 정도의 각도로 서로 기울어 있다. 만약, 황도와 백도가 정확히 겹쳐있다면 우리는 매달 그믐날이면 항상 일식을 볼 수 있다. 일식이 드문 이유는 바로, 황도와 백도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황도를 따라 천구 위를 움직이던 해가 황도와 백도가 만나는 교차점에 왔는데, 그 때 정확히 그곳에 달이 있어야 일식이 일어난다. 둘의 시직경이 0.5도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 것을 또 생각하면, 일식이 자주 일어날 수는 없는 현상이라는 것, 게다가 달이 해를 전부 가리는 개기일식보다 부분일식이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맑은 날 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는 손톱으로 해를 가려보라. 일식이 일어난다. 햇빛 쨍쨍한 여름날 나무 그늘에 들어설 때도 나뭇잎이 해를 가려 일식이 일어나는 셈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일식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일식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우주에 있는 무언가를 우주에 있는 다른 무언가가 가리는 것만을 ‘식’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작은 망원경으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인공적인 ‘식’현상을 볼 수 있다. 국제 우주정거장(ISS)이 달이나 해의 앞을 지나치는 모습이다. 지구 둘레를 도는 인공 천체가 해와 달이라는 오래된 천체의 일부를 가리는, 인공 일식, 인공 월식이다.

지구 위나 지구 밖이나, 모든 것은 다를 것 하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다를 것 하나 없는 물리법칙을 따라 작동한다. 내 몸의 근육을 전자기 상호작용으로 움직여 동전으로 해를 가리나, 중력 상호작용으로 움직이는 달이 해를 가리나, 큰 틀에서는 별로 다를 것 없는 자연현상이다.

아무런 도구 없이도 누구나 쉽게 아무 때나 일식을 볼 수 있다. 해를 잠깐 보고 눈을 감으면 된다. 눈꺼풀이 해를 가리는 일식이 일어난다. 무언가가 해를 가리는 일이야 이처럼 일상다반사지만, 그래도 난 10년 뒤 부분일식을 벌써 기다린다. 과학이 분초 단위까지도 정확히 예측한 드문 천문현상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정말 마법 같은 짜릿한 경험이다.

2035년 9월 2일, 달이 해를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을 북한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요즘의 남북관계를 보면, 과연 그날의 일식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벌써 조바심이 난다. 그날 북한 땅에서 개기일식을 보고 싶다. 남북한의 평화를 필자가 갈망하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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