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세상물정] ‘연결’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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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세상물정] ‘연결’된 위기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0.03.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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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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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현재,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코로나19의 전염, 그리고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대표되는 경제위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초연결 사회라 부른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각자는 지구 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다른 누구와도 놀랍도록 강하게 어떤 방식으로라도 연결되어 있다.

동쪽을 통해 1347년 유럽에 유입된 흑사병이 유럽의 북단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확산된 것은 1350년이다. 유럽 안 구석구석까지 전파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번 코로나19의 첫 감염자가 발생한 것은 2019년 12월경이었다. 3년이 아닌 3개월 만에, 코로나 19는 이미 전 세계 곳곳으로 전파됐고,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 11일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대유행을 뜻하는 ‘팬데믹(pandemic)’의 상황에 돌입했음을 선언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세와 정말 다르다. 세계 어디나 짧은 시간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촘촘히 연결된 항공망은 사람과 상품만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숙주로 우리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도 항공망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이동한다. 흑사병을 일으킨 페스트균이 쥐를 이용했다면, 현대의 바이러스는 비행기를 탄다.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에 투자하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 숙련 장인 연 수입의 10배에 이르는 가격에 거래된 희귀 품종 튤립도 있었다. 결국 거품이 꺼져 튤립 가격의 대폭락이 일어났다. 하지만, 네덜란드 튤립 공황 사태는 유럽 너머의 나라들과는 무관한 사건이었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에게 네덜란드 튤립공황은 말 그대로 다른 세상의 얘기였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는 정말 다르다. 미국 주식시장의 폭락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 정부의 미국 내 경제 구제책을 우리나라의 펀드 매니저가 매시간 예의주시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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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연결은 정보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사람과 상품의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세계 곳곳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전 지구적 규모의 연결이 자본주의 시장의 효율적 작동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인프라다.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망, 세계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배와 비행기의 연결망은 사람과 상품을 나르고, 세계 어디라도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인터넷은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장의 형성에 기여한다. 이런 모든 연결이 바로, 지구의 경제 시스템이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혈관이다.

연결은 양날의 검이다. 위기가 전파되는 속도도 연결로 빨라지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연결망은 한 나라의 국지적인 위기가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의 위기로 이어지게 만든다. 아프리카 한 나라의 국내 정치상황의 불안정은 근해를 운항하는 유조선의 자유로운 통행을 어렵게 해서 저 먼 아시아 한 나라의 유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곳에서 발생한 국소적 위기는 연결로 증폭되어 전 세계로 파급된다. 이러한 위기를 시스템 위기(systemic risk)라 부른다.

시스템 위기는 예방과 대처를 어렵게 한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에서 서로 다른 여러 주식으로 구성한 투자의 포트폴리오를 생각해보자. 시스템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는, 한 회사의 주가 하락은 다른 회사의 주가 상승과 서로 상쇄되어 전체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는 다르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모든 주식이 동시에 하락하는 경우, 다양한 주식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고 해서 투자의 위험성을 줄일 수는 없다.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바로 이런 경우였다. 위험 자산을 여럿 모아, 겉보기에 안전한 것처럼 보이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거래한 것이 이유였다. 위험한 여럿을 모았다고 전체가 안전해질 수는 없다.

세계의 모든 것이 서로 강하게 연결된 현대의 초연결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와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연결을 끊을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연결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 모두가 동시에 맞닥뜨린 이번의 커다란 위기 이후, 새로운 방식의 연결을 어떻게 구성할지, 위기의 급격한 전파를 막는 연결의 구조는 어떤 것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들도 과학적 지성의 투명한 연결만이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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