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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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0.08.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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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사진=픽사베이
일몰. /사진=픽사베이

나는 바로 지금, 바로 이곳에서 이글을 적고 있다.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할 때는 항상 ‘언제’, ‘어디서’ 한다. 우리 일상에서 모든 사건은 공간상의 한 곳에서, 그리고 시간상의 한 때에 일어난다. 시공간이라는 빈 무대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무대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사건은 무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생이 각자가 공연하는 연극이라면, 시공간은 연극이 공연되는 무대다. 배우가 사라져도 무대는 남는다.

오랫동안 물리학의 시간과 공간의 의미는, 이처럼 사건이 발생하는 빈 무대와 같았다. 같은 무대 위에서 다른 연극이 공연될 수는 있지만, 연극이 일단 공연되면, 연극의 내용은 무대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 물리학의 시공간 개념이었다. 철학자 칸트도, 사건이 벌어지는 빈 무대로서의 시공간을 얘기한다. 시공간은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하는 형식이지, 경험 자체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경험은 항상 시공간이라는 경험의 형식 안에서 일어난다. 내가 무얼 하든, 시간은 일정한 빠르기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고, 공간의 크기는 내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하는 일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주어진다. 내가 무얼 하든 내 방의 크기는 변하지 않고, 내가 무얼 하든 내 시계의 한시간은 항상 한시간이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시간 개념은 지금과는 무척 달랐다. 해가 지고 나서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인 밤 시간의 길이는 여름과 겨울에 다르다. 당연히 밤은 여름에 짧고 겨울에 길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시계가 보여주는 시간은, 여름이나 밤이나 한시간의 길이가 일정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시간의 단위는 계절에 따라 달랐다.

저녁에 진 해가 다음날 다시 뜰 때까지인 밤 시간을 우리 선조들은 같은 길이의 다섯 구간으로 나눴다. 밤 시간을 5등분한 1경은,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시간으로는 하짓날에는 111분, 동짓날에는 173분이어서 무려 한시간의 차이가 난다.

농사일이 바쁜 여름날과 농한기인 겨울날, 우리의 현재 기준으로는 선조들은 다른 길이의 시간동안 잠자리에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해가 져서 뜰 때까지라는 똑같은 경험적 시간 동안 바쁜 농사일에서 벗어나 쉬는 시간을 가졌다. 현대의 우리가 재는 시간은 우리가 직접 겪는 일상의 경험과 무관하지만, 우리 선조의 시간은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쉰다는 당연한 일상에 의해 규정되는 경험적 시간이었다.

계단식 논. /사진=픽사베이
계단식 논. /사진=픽사베이

선조들의 공간 개념이 우리와 달랐던 예가 바로 논밭의 면적을 재는 단위인 ‘결’이다. 우리가 현재 이용하는 제곱미터의 단위로 재는 논밭의 면적은 논밭에서 수확하는 농산물의 양과는 전혀 무관하다. 똑같은 100제곱미터 면적의 논이라도 수확량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 선조들은 땅의 절대적인 면적이 아닌, 그 땅에서 거둘 수 있는 농산물의 양으로 논밭의 면적을 쟀다.

조선 초, 논 1결은 바로 쌀 300두를 거둘 수 있는 면적이었다. 땅이 좋아 더 많은 소출을 낼 수 있는 논 1결이, 땅이 나빠 소출이 적은 논보다 현재 우리의 기준으로는 면적이 더 작다. 조선 초 시행한 전분육등법에서 땅이 좋아 많은 소출을 내는 1등전의 면적을 토질이 형편없어 수확이 훨씬 적은 6등전의 면적과 비교하면, 무려 네 배의 차이가 난다. 6등전 1결이 1등전 1결 면적의 무려 네 배였다. 소출 중 일부를 나라에서 한 해에 세금으로 거두는 전세는 시기에 따라, 그리고 풍흉에 따라 변했지만, 어쨌든 ‘1결당 몇 두’로 정해져 있었다. 조선 인조 때 영정법의 시행으로 1결당 12두로 고정된다.

농사를 짓는 땅 각각의 면적이 제곱미터가 아닌 결의 단위로 정해져있다면,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전세를 거둘 수 있는 지를 쉽게 계산할 수 있어서 조세의 규모를 예상하기 쉽다. 각 지역의 논밭의 결의 수를 재는 것을 양전이라고 한다. 양전을 통해 전국의 결수를 파악하게 되면, 전세의 규모를 쉽게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논밭의 면적을 자로 잰다면, 우리 선조들은 소출로 쟀다. 농지의 면적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초와 미터로 시간과 거리를 잰다면, 선조들은 일상의 경험으로 시공간을 쟀다.

아인슈타인. /사진=픽사베이
아인슈타인. /사진=픽사베이

오랫동안 절대적이고 선험적인 것으로만 여겨진 물리학의 시공간이 관찰자의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이다. 상대론은 시공간이라는 빈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어떤 관찰자가 보느냐에 따라 시공간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지금 이 곳에 정지해있는 내가 관찰한 거리와 시간은, 나에 대해 상대적으로 등속으로 운동하고 있는 관찰자가 잰 거리와 시간과 다르다. 움직이는 사람이 잰 거리는 줄어들고 시간은 늘어나, 정지한 사람이 잰 거리와 시간과는 다르다. 시공간이라는 무대가 관찰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특수상대론이 알려주었다면, 시공간 무대 자체가 무대 안에 놓인 질량에 따라 변형된다는 것을 보인 것이 일반상대론이라고 할 수 있다.

질량에 의해 주변의 시공간이 변형되고, 모든 다른 물체는 이렇게 변형된 시공간을 여행한다. 현대물리학이 새롭게 발견한 시공간은 더 이상 빈 무대가 아니다.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다시 무대를 변화시키고, 이렇게 변화한 무대는 그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세상은 내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무엇인가로, 내가 어쩔 수 없는 무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라는 무대도 결국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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