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끓는 시간은 왜 더딜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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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끓는 시간은 왜 더딜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1.01.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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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진자시계는 자신의 맥박으로 만들어졌다. 사진은 갈릴레오 초상과 갈릴레오가 발명한 망원경. /사진=픽사베이
갈릴레오의 진자시계는 자신의 맥박으로 만들어졌다. 사진은 갈릴레오 초상과 갈릴레오가 발명한 망원경. /사진=픽사베이

재밌는 영화를 볼 때는 한 시간이 잠깐이고,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릴 때는 잠깐도 한 시간 같다. 라면 물도 계속 바라보면 오래 기다려도 끓지 않고, 배고파 끓인 라면을 먹는 시간은 또 순식간이다. 우리가 경험으로 측정하는 시간의 흐름은 고무줄 같다. 스톱워치로 재듯이 객관적인 방법으로 측정하는 물리학의 시간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다. 물리학에서도 시간은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시간도 온통 오리무중이다.

과학의 역사에서 여러 번 이름이 등장하는 갈릴레오가 한 재밌는 실험이 있다. 멀리 떨어진 두 산에 각각 오른 둘이 손에 든 램프 뚜껑을 여닫아 신호를 보낸다. 캄캄한 밤, 신호를 보내고 받을 때까지의 시간을 측정하면 두 산 사이 거리를 이용해 빛의 속도를 잴 수 있다. 빛의 속도를 정량적으로 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도저히 잴 수 없을 만큼 빛이 빠르다는 명확한 결과를 얻었다.

갈릴레오는 이 실험에서 어떻게 시간을 쟀을까? 갈릴레오는 또, 길이가 같은 진자는 진폭과 매단 물체의 질량과 무관하게 같은 주기로 왕복 운동한다는 진자의 ‘등시성’(等時性)을 발견하기도 했다. 진자시계의 원리를 발견한 유명한 실험이다. 진자시계가 만들어지기 전 갈릴레오가 시계를 이용해 진자실험을 했을 리는 없다. 두 실험 모두, 갈릴레오는 자신의 맥박으로 시간을 쟀다. 진자시계는 갈릴레오의 심장이 만들었다. 요즘 우리는 시계로 맥박을 재지만, 갈릴레오는 맥박이 시계였던 셈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계나 갈릴레오의 맥박이나, 정확도는 달라도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사건의 반복으로 시간을 잰다. 사건 없이 시간을 잴 수는 없다.

우리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여러 감각을 통해 결국 뇌로 전달된다. 우리는 사건으로 시간을 재지만, 결국은 뇌가 시간을 재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뇌는 어떻게 시간의 흐름을 재는 걸까? 철학자 칸트는 뉴턴 역학의 시공간 개념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시간과 공간 모두 감각의 직관적 형식이라고 말했다. 시공간은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을 우리가 감각할 때 이용하는 어떤 틀이라는 얘기다.

칸트는 또, 공간은 감각의 외적(外的) 형식으로, 그리고 시간은 감각의 내적(內的) 형식으로 둘을 구분했다. 칸트의 주장은 현대 뇌과학 연구로 밝혀지고 있는 결과와 비슷한 면이 있다. 시간은 밖이 아닌 우리의 딱딱한 두개골 안 말랑말랑한 뇌 안에서 벌어지는, 고무줄 같이 줄었다 늘었다 할 수 있는 어떤 현상이고, 우리는 이런 내적 경험을 바탕으로 시간을 잰다.

긴 진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우리 인간의 뇌가 어떤 사건을 더 중요한 경험으로 파악할 지는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생존에 더 중요한 사건이다. 무표정 얼굴이 아닌 화난 얼굴을 보면 우리는 시간을 더 길게 경험한다. 위험을 인식할 때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으로 느낀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위험한 순간, 순간을 영원으로 느끼는 이유다.

몇 초 안되는 짧은 시간에 지금까지의 삶 전체가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 실수로 팔꿈치로 밀어 테이블 위 와인 잔이 바닥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 어떻게든 도중에 잡으려 애쓸 때 나도 시간지연효과를 경험했다. 움직이는 물체의 상대론적 시간지연은 우리가 측정해 잴 수 있는 객관적 물리현상이지만, 우리 일상의 시간지연효과는 모두가 겪는 주관적 경험이다.

시간의 흐름을 우리 뇌가 어떻게 파악하는 지, 흥미로운 여러 연구가 뇌과학 분야에서 진행 중이다. 우리 뇌의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도파민이 우리의 시간 인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도파민 분비가 늘어나면 째깍째깍 뇌 안의 초침이 빨리 가는 식이다. 객관적인 시간 1초에 10번 째깍하던 뇌 내부시계 메커니즘이 도파민이 분비되면 1초에 20번 째깍하는 식이다. 그리고 우리 뇌는 객관적인 시간 1초가 아니라, 20번 째깍거림의 내적 경험으로 시간을 잰다. 도파민 분비 전 2초의 시간에 해당해, 시간이 두 배 더디게 흐르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우리 뇌는 미래를 먼저 예측하고, 현실로 도래한 실제의 경험과 예측을 비교한다. /사진=픽사베이
우리 뇌는 미래를 먼저 예측하고, 현실로 도래한 실제의 경험과 예측을 비교한다. /사진=픽사베이

우리 뇌는 미래를 먼저 예측하고, 현실로 도래한 실제의 경험과 예측을 비교한다. 만약 경험의 크기가 예측보다 더 크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우리는 이 행동을 이후에 더 강화한다는 것이 강화학습의 메커니즘이다. 우리 뇌가 경험의 강도 자체가 아닌, 예측과 경험의 차이를 이용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강한 경험이라도 여러 번 반복하면, 그에 맞게 예측이 조정되어 결국 예측과 경험의 차이가 줄어든다.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과 더 큰 자극을 갈구하는 이유다.

도파민과 강화학습의 메커니즘은 잘 알려져 있지만, 최근 뇌과학 연구는 같은 메커니즘이 우리 뇌의 주관적 시간 인식에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과를 얻고 있다. 독자도 생각해보라. 예측과 경험은 같은 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경험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예측의 시점은 늘 과거다. 예측의 시점과 경험의 시점이 달라, 강화학습도 결국은 서로 다른 두 시간의 비교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강화학습과 시간인식이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 뇌에서 작동한다는 것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연구결과다.

우리에게 주어진 객관적인 시간의 양은 누구에게나 정확히 같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주어진 시간을 늘려 더 충실하게 삶을 이어가는 방법이 있다. 바로, 재밌게 살면 된다. 새로운 곳에서의 짧고 멋진 며칠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돌이켜보면, 그 멋진 경험이 긴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로 이 말을 조금 바꿔 볼 수 있다. 뇌 안의 째깍거림을 빨리하는 방법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밌게 살자. 재밌게 사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방법으로 재미를 찾자. 우리 뇌가 예측할 수 없어 매일 깜짝 놀라게. 늘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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