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지배하는 등골 오싹한 미래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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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지배하는 등골 오싹한 미래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5.02.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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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누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영화 ‘컨택트’(사진)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네 인생의 이야기’도 하나다.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영화 ‘컨택트’(사진)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네 인생의 이야기’도 하나다.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이전에 <김범준의 세상물정>에서 테드 창의 멋진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다(https://www.newswell.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52). 그때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소설집에 수록된 8편의 단편 중 <영으로 나누면>, <네 인생의 이야기>, 그리고 <인류 과학의 진화>에서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것에 대한 얘기다.

먼저, 단편 <영으로 나누면>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일련의 숫자 기호가 차례로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1, 2, 3,…으로 번호가 매겨진 부분은 수학자들의 실제 연구를 소개하고, 1a, 2a, 3a,…는 이 단편의 수학자 주인공 르네의 이야기, 1b, 2b, 3b,…는 르네의 남편 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학 교재나 논문에는 정리(theorem), 보조정리(lemma), 따름정리(corollary)를 일련의 번호를 부여해 표시하는 표준 방식이 있다. 만약 정리나 보조정리에 번호 2가 부여되었다면, 이와 관련된 몇 따름정리에는 2-1, 2-2 혹은 2-a, 2-b의 방식으로 번호를 붙여간다. 수학에 관련된 소설이니 수학 논문의 방식으로 소설을 구성한 것은 멋진 시도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6‘을 제목으로 가진 부분에는 수학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1931년 발표된 괴델의 두 정리가 소개되어 있다. 수학은 참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 체계 안에서 증명 불가능한 명제를 포함한다는 것이 첫 정리이고, 두 번째 정리는 수론의 무모순성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내용이다. 괴델은 수론의 공리로는 수론에 모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수론의 무모순성이 참임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일 뿐, 수론이 모순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어지는 6a에서 르네는 일련의 엄밀한 수학적 연역 과정을 통해 1과 2가 같다(1=2)는 증명을 칼에게 보여준다.

단편의 제목 <영으로 나누면>의 의미도 중요하다. 만약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는 것이 허락된다면 1은 2와 같다는 것, 즉 1=2를 쉽게 보일 수 있다. 내가 바로 증명할 테니, 눈을 부릅뜨고 꼼꼼히 살펴보길.

정리: 1=2.

증명) a=b=1이라고 하자. 이를 이용하면 a²=a·b인데, 식의 양변에서 b²을 빼서 얻는 a²-b²=a·b-b²을 인수분해하면 (a+b)·(a-b)=(a-b)·b를 얻게 된다. 이 식의 양변에서 (a-b)를 소거해 얻게 되는 a+b=b에 처음 가정한 a=b=1을 대입하면 2=1이다.(증명 끝)

물론 증명 과정에 오류가 있다. 혹시 찾았는지? 증명의 후반에서 양변을 (a-b)로 나눈 부분이 보이는지? a=b이므로 (a-b)로 양변을 나눌 때 사실 0으로 나눈 셈이다. 이처럼 0으로 나누는 것을 수학에서 허락하면 1과 2가 같다는 얼토당토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뿐 아니다. 1=3, 1=100, 2=77처럼 어떤 수도 다른 모든 수와 같다는 결과도 얻을 수 있다. 소설의 6a에서 1=2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르네는 0으로 나누는 것과 같이 수학에서 금지된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물론 1=2를 수학의 엄밀한 공리 체계 안에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수학을 이용해서 수학이 모순이라는 것을 증명한 르네의 좌절에 나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신이 없다는 것을 엄밀하게 증명했을 뿐 아니라, 그 증명이 옳다는 것을 직관적으로도 명확히 인식한 독실한 신학자의 좌절을 떠올려 보길.

바로 이 이야기가 6b에서 이어진다. 르네는 수학 전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칼은 르네의 문제를 과거 수학에서 허수를 도입해 해결했듯이 수론 자체를 확장해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반문한다. 실제 수학에서는 자연수를 정수로 확장해서 뺄셈이라는 연산을 닫힌 체계로 구성했고, 정수를 유리수로 확장해서 어떤 두 수의 나눗셈의 결과도 유리수 집합 내부에 존재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과정의 끝이 바로 허수를 포함한 복소수 체계다. 수학에서는 복소수보다 더 큰 수 체계는 필요 없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칼의 제안에 대해서 르네가 수 체계의 확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답한 이유다.

’9a=9b’로 단편이 끝나는 것을 보면서 작가가 얼마나 신중하게 단편을 구성했는지 절감해 전율했다. 칼과 르네가 그동안의 어려움을 극복해 공감에 이르렀다는 의미일 수도, 둘 사이의 갈등을 결국 극복하지 못해서 합의된 결별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나 아닌 다른 독자는 9a=9b로부터 어떤 결말을 상상할지 궁금하다.

테드 창(사진)은 과학에 기반한 흥미로운 질문을 먼저 던지고 그 질문을 중심축으로 소설의 줄거리를 펼쳐나간다. /사진=출판사 엘리(북하우스)
테드 창(사진)은 과학에 기반한 흥미로운 질문을 먼저 던지고 그 질문을 중심축으로 소설의 줄거리를 펼쳐나간다. /사진=출판사 엘리(북하우스)

이 단편집의 가장 유명한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의 구성도 정말 흥미롭다. 지구를 방문한 헵타포드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하게 된 언어학자 루이즈는 미래와 과거가 구분되지 않는 외계인의 무시간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수준에 도달한다.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이미 알고 있는 존재의 시선을 작가는 소설의 구성 방식에도 반영한다. 이 단편을 이미 읽은 독자도 다시 한번 책을 펼쳐보길. 소설의 맨 앞과 맨 끝이 같은 장면이어서 처음과 끝이 없는 순환구조가 소설의 구성 자체에 반영되어 있다. 이뿐 아니라 소설의 전개에도 무시간적 사고의 방식이 투영되어 있다. 헵타포드 방문 후 시간 순서로 이어지는 순차적 전개의 사이 사이에 헵타포드 언어를 습득한 다음 무시간적 인식에 이른 루이즈가 기술하는 딸의 얘기가 삽입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무시간적 전개를 구성하는 시간의 순서는 뒤죽박죽이다. 딸의 안타까운 죽음 다음에 어린 딸 얘기가 이어지는 식이다. 이 단편을 읽는 독자는 어디서 이렇게 두 소설의 전개 방식이 교차하는지 눈여겨보길 바란다. 언뜻 세어보니 18번 정도 순차적 전개와 무시간적 전개가 교차하며 등장한다.

만나지 않는 두 개의 나선처럼 진행되는 순차적, 무시간적 전개의 두 부분이 딱 만나는 멋진 장면이 소설에 등장한다. 순차적 전개 부분에서 루이즈는 물리학자 게리가 한 말에서 ‘논제로섬 게임’이라는 용어를 듣고, 이 단어를 미래의 딸에게 곧이어 알려주는 장면이다. 현재의 정보를 미래의 딸에게 전달하는 것이어서 물리학을 위배하지도 않는다. 그 아래에 이어지는 다른 장면도 마찬가지의 의미가 있다. 루이즈는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게리의 집으로 향하다 한 상점에서 샐러드 볼을 사는 데, 이 샐러드 볼이 미래에 선반에서 떨어져 딸을 다치게 한다는 것을 동시에 인식한다. 이 부분에는 순차적 진행과 무시간적 진행이 같은 문단에 동시에 등장한다. 바로 이때가 루이즈가 헵타포드 언어를 충분히 익힌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시간적이고 순환적인 세계관을 상징하는 장치가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외계인을 헵타포드(heptapod)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이 일곱(hepta) 다리(pod)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두 다리와 두 눈이 있고, 똑바로 선 두 다리를 연결하는 직선 방향이 두 눈을 연결하는 직선의 방향과 같다. 두 눈과 두 다리를 각각 연결하는 방향을 우리는 좌우 방향이고, 이 직선에 수직인 방향이 앞뒤 방향이 된다. 일곱 다리와 일곱 눈을 가져 방사대칭인 헵타포드는 우리와 달리 앞뒤 방향과 좌우 방향을 나눌 수 없어서 모든 방향이 동등하다. 헵타포드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앞으로 가는 셈이고, 어느 방향을 눈으로 봐도 하나같이 앞을 보는 셈이다, 헵타포드의 몸 구조에 이처럼 깃든 방사대칭의 순환성은 그들의 문자 언어의 형태에도 반영된다. 이들의 문자는 어느 부분에서부터 쓰기 시작해도 무방하며, 처음 그은 획은 문자가 완성된 다음에는 여러 다른 역할에 참여하게 된다, 헵타포드는 획을 긋기 전에 이미 문장 전체가 어떻게 구성될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영화 ‘컨택트’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네 인생의 이야기’도 하나다. /사진=출판사 엘리(북하우스)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영화 ‘컨택트’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네 인생의 이야기’도 하나다. /사진=출판사 엘리(북하우스)

<인류 과학의 진화>는 유명한 학술지 <네이처>에 “Catching crumbs from the table(식탁 위 빵 부스러기를 집어 들며)”의 제목으로 출판된 짧은 글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처음 정했던 원제목 “The Evolution of Human Science(인류 과학의 진화)”를 다시 붙였다. 단편의 배경은 디지털 신경 전이로 사고하고 서로 소통하는 메타 인류가 등장한 미래다. 인간 배아 단계에서 특정 신경 요법을 받아 태어난 아이는 보통의 인간이 아닌 메타 인류로 성장하게 된다. 이 요법을 받는 것에 모든 부모가 동의하지는 않아서 메타 인류와 현재 우리와 같은 보통의 인류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엄청난 사고 능력을 가진 메타 인류는 놀라운 과학과 기술 수준에 도달하며, 이들은 서로 디지털 신경 전이를 통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교류하기 시작한다. 이런 미래에 학술지는 메타 인류의 연구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보통의 인간을 위해 이차적인 쉬운 설명을 수록하는 통속화 매체에 불과하게 되고, 보통 인간 과학자가 수행하는 과학은 이제 메타 인류의 성과를 이해하는 해석학이 되고 만다. 인간은 메타 인류의 과학과 기술적 산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일상에서 널리 이용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소설에는 휴대용 뉴트리노 검출기도 등장한다.

이 소설의 메타 인류를 현재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으로 바꿔 소설을 다시 읽을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바꿔 소설을 읽다 보니 난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을 먼 미래를 상상해 본다. 극도로 발전한 일반 인공지능이 과학의 발전을 주도하는 미래, 이들이 발견한 새로운 과학을 인간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미래를 가만히 떠올려 본다.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지만 늘 정확한 예측을 생성해 내는 인공지능 앞에서, 그때도 인간 물리학자는 여전히 이해를 꿈꿀까? 이해 없는 과학도 과학일까?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SF 소설에서 과학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2. SF 소설을 일종의 사고실험으로 본다면, 과학의 사고실험과 SF 소설의 사고실험은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3. <이해>에는 지식의 추구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초지성과 지식을 수단으로 보는 초지성이 등장합니다. 지식의 추구 자체가 목적일 수 있을까요?

4.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논의되는 중심 주제 중 하나가 바로 결정론과 인간의 자유의지입니다.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5. 현실에서 우리가 미래를 미리 알 수 없는 것은 인간 지적 능력의 한계일까요, 아니면 세상의 객관적인 참모습일까요?

6.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한 루이즈는 그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습득합니다. 언어와 사고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7. <일흔두 글자>에서 작가는 현재는 오류로 밝혀진 과거의 과학지식이 실제로 옳은 세상을 상상합니다. 인간 정자 안에 아주 작은 인간인 호문쿨루스가 존재한다는 전성설이 사실인 세상이죠. 과학 지식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8.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외모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인 ‘칼리’의 착용 의무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이 인터뷰의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만약 ‘칼리’가 있다면 여러분은 착용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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