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물리학은 눈부신 속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바꿨고,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작은 입자들의 세상이 우리가 익숙한 큰 것들의 세상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는 것이 알려졌다.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 기초가 어느 정도 완성된 현대 물리학의 지반 위에서 첫 1층의 건설을 시작한 뛰어난 차세대 물리학자들이 있다. 리처드 파인만도 그중 하나다. 1964년 코넬 대학교는 파인만에게 물리법칙의 일반적 특성을 주제로 일련의 대중 강연을 부탁했고, 영국 BBC에서 영상으로 녹화되어(인터넷에서 전체 강연 동영상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책으로 출판되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물리학의 고전 리처드 파인만의 <물리법칙의 특성>이다. 아래에 이어지는 글에는 내 생각과 함께 번역본에서 가져온 파인만의 문장도 많이 담겨 있다. 책에서 따온 글귀가 무척 많아서 인용부호를 일일이 모두 넣지는 않았다. 양해를 부탁한다.
파인만을 묘사하는 표현 중 나는 ‘선생들의 선생(teacher of teachers)’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파인만을 처음 글로 접했던 20대 젊은 학창 시절보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한 다음에 파인만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파인만이 물리학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정말 독특해서 많은 물리학자가 이분의 설명 방식을 ‘파인만 스타일’이라 부른다. 같은 내용을 더 쉽게, 더 직관적으로, 그리고 다르게 설명하는 것이 파인만 스타일이다. 물리학을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파인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멋진 일화가 있다. 동료 교수가 파인만에게 왜 전자(electron)가 특정한 통계 법칙을 따르는지, 학부 1학년생에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파인만은 며칠 고민 후 이 부탁을 한 동료 교수에게 1학년생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 방식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1학년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라고 덧붙인다. 제대로 이해해야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파인만의 태도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요즘도 강의실에서 자주 이 일화를 떠올린다. 내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학생을 탓할 일이 아니다. 내가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면 그건 내 이해의 부족 때문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파인만은 물리법칙이 가진 일반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물리법칙을 아우르는 과학철학적인 특성을 일반화하고는 번호를 깔끔하게 매겨 1번 특성, 2번 특성의 꼴로 정리해 알려주지는 않는다. 예시와 비유로 쉽게 물리학을 설명하는 바로 그 파인만 스타일로, 물리학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면서 물리법칙의 일반적인 특성을 독자 스스로 깨닫도록 이끈다. 이 책은 물리법칙에 대한 조망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과학철학책이 아니지만, 물리학에 대한 파인만의 깊은 철학적인 식견을 곳곳에 담고 있다. 파인만이 이런 방식의 딱딱한 항목별 요약을 좋아할 리는 없을 것 같지만, 책에서 말하는 물리법칙의 특성을 정리 해봤다.
1. 물리법칙은 수학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물리학은 수학과 다르다.
파인만은 수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연법칙의 아름다움을 진지하게 설명해 느끼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유감이지만, 진실이 그렇다. 수학은 한 집합의 진술로부터 다른 집합의 진술로 이행하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이다. 수학은 추론의 구조만을 다룰 뿐이어서 수학자는 자신이 얘기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없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도 수학을 할 수 있지만 물리학은 다르다. 수학을 언어이자 동시에 추론의 도구로 사용하는 물리학에서는 수식에 등장하는 기호는 늘 실제의 세계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관련되어야만 한다. 물리학의 원리들은 늘 어떤 것에 대한 원리들이어야 한다. 그냥 에너지는 없다. 에너지는 항상 어떤 것의 에너지다.
수학과 물리학의 재밌는 차이에 관련한 내 경험이 있다. 생태계를 이루는 생명 종의 개체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미분방정식의 꼴로 기술하는 포식자-피식자 수학 모형이 있다. 내가 전공한 통계물리학 분야도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이 모형에 대한 수학자의 강연에 청중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강연을 듣고는 “강연 잘 들었습니다. 결국 그래서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다는 얘기인가요?”하고 물었다. 이런 유형의 질문을 처음 들어본 수학자는 내 질문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이 수학자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경험이다. 수학자의 모형에는 사자와 양이 없지만, 물리학자는 같은 수식에서 늘 사자와 양을 생각한다. 수학자가 X를 보여주면 물리학자는 X를 계속 사자의 개체수로 머릿속에서 떠올려야만 수식의 진행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경험도 떠오른다. 수학에서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 해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해가 유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나면 해야 할 일이 모두 끝난 셈이다. 물리학은 다르다. 물리학자는 유일하지 않아도 좋으니 해를 보여달라고 말한다. 해가 존재하고 유일하다는 것을 이미 증명한 수학자는 물리학자의 부탁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물리학은 수학으로 표현되지만, 물리학은 수학이 아니다.
2. 물리법칙은 완전하지 않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은 아무리 많은 까마귀를 관찰해도 확증할 수 없지만, 흰 까마귀 한 마리를 발견하는 순간 가설이 기각된다. 현실의 과학이 이렇게 깔끔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이론이 참이라는 것은 결코 증명할 수 없지만, 틀렸다는 것을 보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은 맞는 얘기다. 뉴턴의 중력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교체되었듯이, 우리는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일반상대성이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만 아직 틀리지 않았을 뿐이다. 물리학은 가능한 빨리 우리가 틀렸음을 증명하려는 노력이다. 이 방법으로만 과학은 진보한다. 지금까지 물리학이 알아낸 것이 얼마든지 미래에 틀렸다고 밝혀질 수 있다. “미지의 가장자리는 항상 존재하고, 우리가 기웃거려야 할 곳은 항상 있다.”
아직 틀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물리법칙은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목성의 위성인 이오의 공전주기가 일정하지 않다는 관측 결과가 알려졌을 때가 바로 그랬다. 뉴턴의 중력 법칙이 잘못되었을 수도, 중력 법칙은 맞지만 이오의 공전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다. 이때 뢰머는 중력 법칙이 맞다는 가정하에 이오의 공전주기 차이를 이용해 빛의 속도를 추정하는 데에 성공했다. 19세기 중반, 천왕성의 위치가 당시 알려진 태양계의 천체를 고려한 중력 법칙의 예측과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해서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행성인 해왕성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이처럼, 이미 알려진 물리법칙은 새로운 현상의 발견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마이클 벤슨의 책 <코스미그래픽>에 태양계의 모습을 담은 1846년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그해 9월 발견된 해왕성은 없지만, 흥미롭게도 수성 궤도 안쪽에 벌칸(Vulcan)이라는 이름의 행성이 보인다. 수성의 공전 궤도가 뉴턴의 중력 법칙을 정확히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알려졌는데, 이를 미지의 행성 벌칸이 태양 가까이를 공전하고 있다는 가설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후 벌칸은 없고 해왕성은 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이 그림은 벌칸은 있다고 믿었지만 해왕성의 존재는 아직 몰랐던 중간의 짧은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천왕성 궤도의 이상 현상은 중력 법칙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행성인 해왕성의 존재로 설명되었지만, 수성 궤도의 이상 현상은 새로운 행성인 벌칸이 아니라 뉴턴의 중력 법칙을 대체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새로 밝혀진 차이는 기존 법칙을 유지하고 다른 보조 가설을 도입해(유한한 광속과 해왕성의 존재) 해소되기도 하지만, 기존 법칙을 완전히 교체한 새로운 물리법칙(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3. 물리법칙은 단순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예술가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해가 지는 장면, 대양의 파도,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을 보며 미적인 즐거움을 느낀다. 하지만 맨눈으로는 안 보여도 분석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의 리듬과 패턴이 존재한다. 물리법칙이 바로 이러한 리듬과 패턴이다. 그리고 물리학자는 리듬과 패턴이 단순할수록 더 큰 아름다움을 느낀다.
물리법칙의 단순함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보존법칙과 대칭성의 개념이다. 물리학에서 대칭성은 흔히 ‘변화 없는 변화’로 묘사된다. 물리법칙에 어떤 변환을 했는데, 여전히 같은 법칙이 성립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 바로 대칭성이다. 대칭성과 보존법칙이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보존법칙 삼총사가 바로 에너지, 운동량, 그리고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다. 실험을 언제 해도 결과가 같다는 시간 옮김 대칭성은 에너지 보존법칙을 알려주고, 실험을 어디서 해도 결과가 같다는 공간 옮김 대칭성은 운동량 보존법칙을 알려준다. 실험 장비를 어떤 각도로 돌려도 결과가 같다는 공간 돌림 대칭성은 또 각운동량 보존법칙을 알려준다. 시공간 변환의 대칭성이 물리학의 보존법칙 삼총사에 관련된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학창 시절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물리학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던 순간이다.
파인만의 책에는 멋진 설명이 많다. 대칭성에 관련된 재밌는 논의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왼쪽과 오른쪽을 뒤집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때 이를 거울 대칭성이라고 한다. 지구의 생명이 만들어 낸 생체 분자는 오른쪽으로 빛이 편광되는 특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하면 오른쪽과 왼쪽으로 빛을 편광시키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분자가 만들어진다. 사탕무에서 만들어 낸 설탕을 녹인 설탕물은 빛을 오른쪽으로 회전시키고, 인공 합성 설탕물은 두 종류의 분자가 모두 있어서 빛을 회전시키지 않는다. 인공 합성 설탕물에서 박테리아를 배양하면 박테리아는 오른쪽 회전 설탕만을 대사하고, 결국 남은 설탕물은 왼쪽으로만 빛을 회전시키게 된다. 지구 모든 생명은 오른쪽을 좋아한다.
물리학의 근본 법칙은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지구에 생명이 등장할 때 왼쪽과 오른쪽 분자 중 오른쪽 분자가 우연히 택해졌다. 이런 현상을 물리학에서는 ‘자발적 대칭성 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이라고 부른다. 왼쪽, 오른쪽 둘 다 가능하지만 오른쪽을 택한 생명만 존재한다는 것은 지구 생명의 조상이 단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자 수준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파인만은 정말 재밌는 질문을 한다. 예를 들어, 먼 안드로메다은하의 한 행성에 외계인(책에서는 화성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 키가 6피트라는 것은 수소 원자 170억 개의 높이라고 외계인에게 말해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지구인의 심장이 왼쪽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그 외계인에게 설탕물에서 빛이 회전하는 방향의 반대쪽에 인간의 심장이 있다고 알려줄 수는 없다. 어쩌면 외계 생명은 지구와 달리 처음에 왼쪽 분자를 우연히 택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왼쪽과 오른쪽을 알려줄 수 있는 물리 현상이 알려졌다. 물리학의 약한 상호작용에서는 좌우 대칭성이 깨져서, 방사능 붕괴로 방출되는 전자는 뒤에서 볼 때 왼쪽으로 회전한다. 이 현상을 이용하면 외계인에게 왼쪽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다.
물리학에는 또 다른 대칭성이 있다. 바로 입자-반입자 대칭성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라면 중성자는 양성자, 전자, 그리고 반중성미자로 붕괴하고, 이때 방출된 전자는 뒤에서 보면 왼쪽으로 돈다. 하지만 반중성자는 반양성자, 반전자, 그리고 중성미자로 붕괴하는데, 반전자는 오른쪽으로 돈다. 만약 외계인에게 인간의 심장은 중성자가 붕괴할 때 나오는 전자의 회전 방향이라고 알려주면 어떨까? 만약 지구를 방문한 이 외계인에게 우리 인간이 악수를 하려고 오른손을 내밀 때 외계인이 왼손을 내민다면? 만약 이처럼 우리가 알려준 오른쪽을 외계인이 거꾸로 이해했다면, 외계인의 세상은 입자가 아닌 반입자로 이뤄져 있다는 얘기가 된다. 파인만은 외계인이 왼손을 내밀면 도망가라고 재밌게 책에 적는다. 왼손을 내밀었다면 외계인의 몸은 반물질로 이뤄졌다는 얘기고, 그렇다면 악수하는 순간 우리 몸은 외계인과 만나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면 소멸할 테니 말이다. 이 부분을 읽다가 파인만의 엉뚱하고 재밌는, 하지만 의미있는 유머에 웃음을 터뜨렸다.
4. 물리법칙은 보편성을 가진다. 어디서나, 그리고 언제나 성립한다.
“자연은 자신의 무늬를 수놓을 때 가장 긴 실을 사용한다. 자연의 멋진 태피스트리의 일부인 작은 천 조각에서도 자연 전체를 볼 수 있다.” 중력 법칙을 설명한 1장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멋진 문장이다. 나는 이 글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있다”는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자연은 딱 하나의 긴 실로 아름다운 전체를 만들어 낸다. 물리법칙이 바로 이런 긴 실이다. 복잡한 자연의 어디를 봐도 결국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아낸 한 줄 긴 실의 일부를 볼 수 있다. 물리학은 넓은 태피스트리를 수 놓은 가느다란 한 줄의 실을 찾는 노력이다. 물론 실을 찾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태피스트리 전체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체스의 말이 움직이는 간단한 규칙을 모두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뛰어난 체스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파인만이 책에 적은 명쾌한 비유다.
5. 물리법칙은 실험과 일치해야 한다.
추측이 얼마나 멋있는지, 당신이 얼마나 똑똑하고 유명한지는 중요치 않다. 당신의 추측이 실험과 맞지 않다면 그냥 틀린 것이다. 대부분의 추측은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다. 하지만,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은 자연 현상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특수상대성이론의 결과를 명확히 볼 수 있을 정도의 빠른 속도를 가진 적 없고, 원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본 어떤 것과도 다르게 행동한다. 양자 현상을 우리가 익숙한 것에 유추하여 이해하려는 것은 헛된 바람이다. 도대체 전자가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 묻지 말라. 아무도 모른다. 전자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는 전자도 모른다. 아무리 기이해도 자연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에 주목해야 한다.
물리학 이론에 포함된 구성물로 계산한 결과는 실험과 대조될 수 있어야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실험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는 철학적인 입장을 통해 1925년 새로운 양자역학을 만들어 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 구성물 자체가 아니라 이론의 결과가 실험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방식을 통해서, 물리학은 원자의 발견 전에 원자의 존재를 추측했고, 개별 입자로 관찰될 수 없는 쿼크라는 구성물을 통해 원자핵을 이해했다. 물리학이 더 많은 것을 알아내면서, 우리의 상상과 추측도 점점 더 나아진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소설은 상상하지만, 물리학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상상을 확장한다. 물리학은 이처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과감하게 넘어설 때 기존의 이론들을 새로운 영역으로 늘 확장해 왔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 진보할 수 있는 길이다. 과학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실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만 유용하다.
파인만이 항목별로 나눠 적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해 본 파인만이 말하는 물리법칙의 특성을 거칠게 요약해 봤다.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파인만은 말한다. “자연은 단순성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위대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자연과 물리법칙은 단순해서 아름답다. 왜 자연이 단순해야만 할지, 그리고 이 작은 행성에서 발붙이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허접한 이성으로 광막한 우주의 태피스트리를 자아내는 물리법칙의 긴 실을 우리가 알아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난 여전히 답을 모르지만.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1장에서 파인만은 물리법칙의 일반적 특성, 주로 자연의 일반적 특성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말합니다. 자연의 특성과 물리법칙의 특성은 같은 것인가요?
2. 지구 위 작은 구슬 사이의 고전역학은 은하단 사이의 고전역학과 같지만, 구슬을 이루는 작은 원자는 양자역학을 이용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작은 것을 알면 큰 것을 알 수 있지만, 큰 것을 알았다고 작은 것을 알지는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파인만은 한쪽 극단에는 근본적인 물리법칙, 다른 극단에는 아름다움과 선악 같은 가치에 관련된 지식을 위치 시킵니다. 양쪽 중 어느 것이 신에 더 가까울지 묻는 파인만에게 어떤 답을 하시렵니까?
4. 생명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더 알아낼 물리학은 없다는 파인만의 말에 동의하시나요?
5. 현재의 물리학은 단지 틀리다는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며, 우리는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고, 다만 아직 틀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파인만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리학의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것일까요?
6. 인간 심리에 대한 정확한 양적 정의를 할 수 없다면 우리가 심리에 대해서 무언가를 안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파인만은 말합니다. 양으로 측정할 수 없는 모든 주장은 무의미한 것일까요?
7. 파인만은 추측을 맹목적으로 양산하는 기계는 과학에 아무런 진보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요즘의 생성형 AI도 마찬가지일까요? AI 과학자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할까요?
8. 파인만은 우리가 현재 가진 이론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아름다움과 단순성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자연은 단순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말하며 책을 마칩니다. 이는 증명 가능한 주장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가진 바람일 뿐일까요? 옳은 이론은 단순해야 하는 것일까요?
9. 파인만은 우리가 모든 법칙을 알아낸 미래를 생각합니다. 신의 물리학책이 있다면 우리 인간이 그 책 마지막 페이지까지의 모든 내용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