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종합하여 생각해 보면 비록 도시나 국가가 다를망정 사람들의 욕망과 성분은 시대를 막론하고 같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사정을 꼼꼼하게 검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국가든 그 각각에 앞으로 일어날 만한 일을 예견하고 고대인이 썼던 타개책을 적용하는 것은 손쉬운 일일 것이다.”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1권 제3장
지난해 겨울 어느 날 느닷없이 터져 나온 비상계엄 선포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로 휘청거리던 한국 경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깊은 수렁에 빠진 형국이다. 지난해에 기록한 국내 증시 하락률만 보더라도 전 세계 증시의 기록적인 상승세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문득 되돌아보니 지난해 여름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 국내 증시조차도 12.3 비상계엄 사태가 몰고 온 거대한 충격파에 비하면 사소해 보일 정도다.
드라마나 찾아볼 정도로 한가한 시간쯤에 느닷없이 선포된 비상계엄 조치는 국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원화 환율이 급격히 치솟고 국내 가상 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시세가 곤두박질치는 모습은 마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진계가 그려내는 충격파를 연상시켰다. 정작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건 지진파의 충격이 불러온 거대한 지각 균열이었다. 내란죄의 우두머리로 의심받는 현직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만 하더라도 곳곳에서 더욱 격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당연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데에도 이처럼 거센 저항과 분노가 분출하는 마당에, 정작 집회에는 발길조차 끊고 지내며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는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난 생채기는 또 얼마만큼 깊이 패었겠는가.
현직 대통령이 이토록 느닷없이 급발진시킨 비상계엄 선포를 어느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비상계엄 선포 직후부터 곧장 이어진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과정, 내란에 가담한 인물들에 대한 긴급 체포와 수사, 헌재의 탄핵 심판 과정들이 어느 하나 순조롭게 진행될 리 없었고, 사사건건 예상을 뛰어넘는 극심한 저항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 불거진 온갖 곤란한 문제들이 집권층의 소통 부재와 당파적 이해에만 매몰된 정치세력 사이의 극한 대립에서 비롯된 것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기에 이른 일련의 과정뿐 아니라 그 수습책을 둘러싸고도 모순되는 언행과 격한 갈등이 수시로 증폭되어 나타나리라는 건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두 차례에 걸쳐 전 세계에 생중계된 현직 대통령 체포 과정부터 지극히 볼썽사나웠고, 관저 주변을 에워싼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와 극렬한 저항도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으며, 그 틈바구니에 끼어들어 무턱대고 대통령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듯한 정치인들의 출몰도 국민이 바라는 풍경은 결코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도 하루하루 피해를 더하는 쪽은 이 사태와는 하등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국민일 뿐이다. 평온한 일상들이 사라진 대신 불안과 우울이 자리를 잡고, 얼어붙은 경기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살림살이가 더욱 궁핍해진 게 과연 누구 때문인가. 그런데도 피폐해진 국민들의 삶을 보듬기 위한 대책이라고는 아예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국가의 리더십이 일순간 와해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 국격은 또 어느 세월에 그 누가 복원시킬 작정인가.
역사는 늘 반복된다고 하지만 이토록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역사는 재발하면 안 된다. 이번 사태는 1979년 12월에 전두환 군부 독재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를 여러모로 빼닮았다. 내란의 주범 역할을 떠맡은 인물이 손수 그 당시의 계엄 포고문을 참고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려 44년 전에 발생한 현대사의 비극을 문민정부 대통령이 오늘날에 와서도 태연스레 재현한 까닭은 무엇인가. 현 정부의 거듭되는 실정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 대패한 끝에 정국 주도권을 급격하게 상실한 대통령 및 주변 인물들이 광기에 가까운 망상을 품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국회의 권능을 일시 정지시키고 비상계엄을 통해 반대 세력들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면 무너져내린 권력을 금방이라도 되찾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켜켜이 쌓인 정책 실패와 거듭된 무리수가 민심 이반을 가속한 끝에 지지율 폭락을 불러왔는데,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조치가 도대체 무슨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역사가인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자유를 침해하고자 하는 계획에 관하여’ 탄핵하는 권능만큼 유용하고 필요한 것은 달리 없다고 극구 강조한 바 있다.
자유를 지키는 임무가 국가로부터 부여된 인물에게, 국가의 자유를 침해하고자 하는 계획에 관하여 시민을 민회나 행정관들의 위원회 또는 법정에 고발하여 탄핵하는 권능만큼 유효하고 필요한 것은 달리 또 없다.
이 정치 제도는 국가에 아주 유익한 두 가지 영향을 준다. 첫째는, 시민들은 고발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을 꾀하지도 않을뿐더러, 만일 꾀한다 하더라도 사정없이 제압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둘째는, 도시에서 어떤 형식으로 특정 시민에 대해 일어나고 있는 노여움에 배출구를 만들어 준다. 이런 노여움에 적당한 배출구를 주지 않을 경우, 그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쏠리게 되므로 국가 전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이 초조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게 조정하기 위해서는 법률의 힘으로 배출구를 부여해 주는 일보다 국가를 안태(安泰) 하게 하고 강고하게 하는 일은 없다.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1권 제7장 <국가에서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탄핵권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
역사를 돌아보면 내란 사태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했다. 기원전 로마 공화정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면서 루비콘강을 건너 조국인 로마로 자신의 군대를 이끌었던 카이사르가 대표적이다. 그때가 B.C. 49년 1월 12일이었다. 이듬해인 B.C. 48년 8월에 카이사르가 최대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스를 패퇴시키자 거대한 내전은 종식되었다. 그 유명한 내전으로부터 불과 14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내전인 ‘카틸리나 내란 음모 사건’과 마주친다. 집정관 선거에서 거듭 패배한 끝에 군대를 일으켜 반란을 도모했던 그 유명한 내란 음모는 B.C. 63년 9월부터 12월에 걸쳐 진행됐고, 그 당시 로마의 집정관은 키케로였다.
로마에서 최고로 언변이 뛰어난 웅변가이자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는 「카틸리나 탄핵을 진두지휘하는 동안 네 차례씩이나 연설에 나섰다. 제1연설은 B.C. 63년 11월 8일에 원로원 의회에서, 제2연설은 B.C. 63년 11월 9일에 중앙 광장에서의 시민 집회에서, 제3연설은 B.C. 63년 12월 3일에 역시 중앙 광장에서, 제4연설은 B.C. 63년 12월 5일 원로원 의회에서 행해졌다.
키케로가 마침내 ‘로마 시민 여러분, 오늘 국가는 구제되었다.…… 구원받는 날은 탄생한 날에 못지않게 우리에게 기쁘고 빛나는 것이다.……’로 이어지는 감격에 찬 연설을 들려줄 수 있었던 날은 제3연설(B.C. 63년 12월 3일) 때이다. 그날 카틸리나 일파의 음모 사실이 끝끝내 마저 밝혀져 로마에 잔류한 공모자들이 모조리 체포된 것이다. 제4연설은 ‘반역자들의 처리’에 관한 내용이며, 이 당시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키케로의 연설에 뒤이어 <반역자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제목의 명연설을 남겼다.
키케로가 남긴 카틸리나 탄핵 연설문은 후세의 여러 역사가와 철학자들의 저작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명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사실이다. 탄핵당해야 마땅한 내란 주동 세력들이 온갖 궤변을 동원하여 적반하장 식으로 탄핵하려는 쪽을 공격하는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내란 세력의 궤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 카틸리나! 언제쯤에야 그대는 우리의 인내력을 악용하는 이 못된 짓을 그만둘 작정이오? 이 뒤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그대의 광기로 우리를 모욕하겠소? 지금과 같이 거들먹거리는 그대의 고삐 풀린 뻔뻔함이 언제 끝이 나겠소? 팔라티움 언덕에 배치한 강력한 수비대, 로마시 전역에 깔려 있는 파수병들, 시민들의 경계와 선량한 사람들의 단결된 힘, 가장 튼튼하게 방비를 갖춘 이곳에서 열린 원로원의 예비 조치,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이 근엄한 원로원 의원들의 모습과 표정이 그대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단 말이오? 그대의 계획은 이미 탄로가 났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거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까닭에 그대의 음모는 이미 제동이 걸리고 무력해졌음을 깨닫지 못하겠소? 지난밤에, 그리고 지지난밤에 그대가 무엇을 했으며, 어디에 있었는지, 그대가 만나려고 불러들인 자가 누구이며, 그대가 어떤 흉계를 꾸몄는지를 우리가 모르고 있다 생각하시오? -키케로, <카틸리나 탄핵> (제1연설) 중에서
마침내 그대는 그대의 고삐 풀리고 미쳐 날뛰는 욕망이 오래전부터 몰아대던 곳으로 가게 될 것이오. 이 덕분에 그대는 슬퍼하기보다는 차라리 그지없는 기쁨을 느낄 것이오. 천성이 그대의 틀을 잡았고, 욕망이 그대를 단련했으며, 운명이 그대를 지끔까지 보전하여 이 광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조용히 있기를 바란 적이 한 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범죄적인 전쟁만을 추구했소. 그대는 온갖 감정만이 아니라 희망마저 저버린 쓸모없는 흉악범 패거리들만 모아왔소.
그렇다면 그대가 누릴 행복이 무엇이겠소! 그대는 어떤 기쁨에 춤출 수 있겠소! 그대가 무슨 쾌락에 잠길 수 있겠소! 그렇게도 많다는 친구들 가운데 선량한 인간은 단 하나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니 말이오. ……그대가 거쳐왔다는 온갖 노고가 한결같이 이따위 생활을 겨냥해 왔소. 이제 그대는 굶주림, 추위와 온갖 궁핍을 멋지게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할 기회를 잡게 되었소. -키케로, <카틸리나 탄핵> (제1연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