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폭탄 떠안은 개미, ‘대한민국 증시’ 봉 잡은 외국인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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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폭탄 떠안은 개미, ‘대한민국 증시’ 봉 잡은 외국인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7.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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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빈익빈 부익부’ 주식시장, 언제까지 이어질까 -상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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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한민국 증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가난한 투자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부유한 투자자는 더욱 부유해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 이어질 듯싶다. 스스로를 빈익빈 그룹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는 투자자들이라면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토록 불합리하게만 느껴지는 시장에 계속 남아서 돈을 잃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비단 한두 해의 현상일까마는 빈자가 점점 더 많아지는 현상을 좋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증시에서 회자되는 말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고약한 표현도 있다. ‘당신이 오랫동안 포커판에 끼어 있었지만 누가 봉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면 당신이 바로 그 봉이다’. 그렇다면 한국 증시에서 봉을 잡은 투자자는 누구일까. 의심할 필요도 없다. 외국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 투자한 주식의 평가액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종전 최고치는 3년 전 코스피 지수가 3300포인트를 넘나들던 무렵에 쓰였다. 그 당시보다 코스피 지수가 무려 400포인트 이상 떨어졌음에도 외국인들의 보유 주식 평가액이 연일 새로운 기록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당시보다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 자금을 더 투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보유한 종목들이 주가지수 상승률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과열될 때 고평가된 주식을 내다 파는 데도 능숙하지만, 장기간 보유할 주식을 고르는 데도 대체로 뛰어난 듯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 평가액은 지난 5일 기준으로 약 882조원에 이른다. 7월 들어서 단 일주일 만에 30조원이나 급증했다. 한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1년 7월 6일과 비교하면 39조원 이상 불어났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 주식 보유 규모가 141조원 수준까지 추락한 때도 있었다. 그 당시에 비하면 보유 주식 규모가 무려 6.3배 정도 불어난 셈인데, 그 당시 코스피 지수가 948.69P였다. 지난 주말 코스피 지수가 2862.23P였으니 코스피 지수가 약 3.0배 오르는 사이에 보유 주식을 6.3배나 불린 셈이다.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투자하거나 보유 중인 주식들은 대체로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구성된 외국인 주식 포트폴리오가 시장수익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초과수익률을 기록한 직접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을 많이 보유할수록 그만큼 시장수익률에 수렴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장기간에 걸쳐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때맞춰 알맞게 조정해온 점도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에 대한 힌트는 아래 몇 개의 그래프를 통해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크게 보면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적극적으로 축소했다가 다시금 늘려왔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축소 시기는 2006∼2008년 동안에 나타났다. 중국 경기 호황에 힘입어 조선, 철강, 화학 등 중후장대 산업 군에 속한 종목들이 엄청난 시세 상승을 분출하던 시기였다. 때마침 펀드 시장마저 유례없는 활황을 보이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39.0%에서 25.7%까지 급격하게 줄였다. 해당 기간에 외국인들이 주식을 내다 판 규모는 3년 동안 72조원에 이르렀다.

2008년에 금융위기마저 발발하면서 한국 주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축소한 외국인들은 2009∼2010년 사이에 한국 주식을 적극적으로 재매수하기 시작했다. 2009년 한 해에 외국인들이 사들인 순매수 규모(32조원)는 아직도 연간 최대 순매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에 대한 비중을 다시 한번 크게 줄인 시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장세가 펼쳐진 시기였다. 2020∼2022년 사이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에서 무려 61조원에 달하는 주식을 대규모로 팔아치웠다.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중도 27% 수준까지 낮아졌다. 지난해와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에 대한 순매수를 강화하면서 또다시 2009∼2010년과 유사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올해 연간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종전 최고 기록(2009년 32조원)을 뛰어넘을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일러스트=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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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외국인 투자자들은 장기간 부진한 성과를 보여온 코스닥 시장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는 대신 코스피 시장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는 전략도 병행해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기준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 보유액(882조4288억원) 가운데 95.5%인 842조6659억원을 코스피 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반면, 코스닥 시장에는 불과 4.5%인 39조7629억원 정도만 투자하고 있다. 각각의 시장에 대한 시가총액 대비 외국인 투자 비중은 코스피 시장에서 36.0%, 코스닥 시장에서 9.6% 수준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코스닥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중은 과거 한때 18.2%에 이른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9.6% 정도에 머물고 있다. 코스닥 시장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 금액도 별다른 추세적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각이 투자 주체별로 얼마만큼 극명하게 대비되는지는 구체적인 수치로도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거래소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에 따르면 1999년 이후 현재까지 투자주체·시장별 순매수는 다음과 같다. 일별하자면, 기관투자자들이 내다 파는 주식을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이 떠안는 듯한 모습이며, 그밖에 연기금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정한 범위에서 주식을 사들이는 형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방금 살펴본 수치들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기관투자자들은 코스피와 코스닥 양대 시장 구분 없이 지속적인 매도 우위를 보여왔다. 특히 시가총액 규모가 코스피 대비 훨씬 작은 코스닥 시장에서는 더욱 큰 규모로 순매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기관들이 장기간 지속적으로 순매도를 보이는 이유 중에는 신규 상장 주식들이 공모주 형태로 기관투자자들을 통해 공급되는 경로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 시장보다 무려 4배 이상이나 큰 규모로 코스닥 주식들을 지속적으로 순매수해 왔다. 개인투자자들이 얼마만큼 오랫동안 기관투자자들의 매물 폭탄에 시달렸는지를 살펴보면, 개인들이 기관들에 대해 늘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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