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맘’ 민희진 대표의 격정 인터뷰와 아이아스의 딜레마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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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맘’ 민희진 대표의 격정 인터뷰와 아이아스의 딜레마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4.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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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보상을 엉뚱한 경쟁자가 가로챈다면… ‘경영진의 불화’가 기업가치 좌우 명심
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 홈페이지
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 홈페이지

어떤 조직에서나 큰 공을 세운 사람은 그에 걸맞은 보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 보상이 단지 조직 내부에서의 파격적 승진뿐만 아니라 두둑한 금전적 보상까지 뒤따른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조직 구성원의 한 사람이 혁혁한 공을 세운 덕분에 조직 전체의 성과를 좌지우지할 정도가 된다면 합당한 보상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한다. 웬만한 금전적 보상으로는 그 구성원을 만족시키거나 조직 내에 붙들어 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걸그룹 뉴진스의 엄마로 불리는 민희진 대표의 사례도 갈등의 성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민 대표는 BTS 이후 K-팝 열풍을 대표하는 걸그룹 뉴진스를 키워낸 유능한 프로듀서였지만, 하이브를 이끄는 방시혁 대표와는 온갖 시시콜콜한 크고 작은 갈등을 두루 겪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죽하면 민 대표를 경영권 탈취를 도모했다는 배임 혐의를 씌워 내부 감사와 고발까지 진행했겠는가. 죄가 있다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는 민희진 대표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나훈아 격정 인터뷰’의 명맥을 잇는다는 평가를 받는 ‘140분 가까운 격정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공격한 하이브의 최고위 경영진을 향해 온갖 치부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하이브 측에서는 민희진 대표를 해임하기 위한 이사회 소집이 불발되자, 곧바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걸그룹 뉴진스의 대성공이 결국 국내 최고 엔터테인먼트사의 대주주와 계열 대표 사이에 법적 분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사진=하이브 홈페이지
/사진=하이브 홈페이지

유능한 부하 장수가 온갖 위험과 희생을 무릅쓰고 ‘간난신고’(艱難辛苦) 끝에 크나큰 성과를 올리더라도 끝내 조직으로부터 버림받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한나라 유방을 도왔던 개국 공신 회음후 한신이 대표적이다. 한신이 종리매의 목을 들고 역모의 뜻이 없음을 알리고자 자진해서 한 고조를 만나러 갔을 때, 고조는 무사를 시켜 한신을 묶게 하고 수레 뒤에 실었다. 모반했다고 밀고한 사람이 있다면서 한신의 손발에 차꼬와 수갑을 채우자 이윽고 한신이 말했다.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풀어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사마천 <사기> ‘회음후 열전’ 중에서

‘뉴진스 맘’ 민 대표의 사례는 고대 중국의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토사구팽보다는 도리어 고대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아이아스의 딜레마’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의 영웅들 가운데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용맹한 인물이었다. 전쟁 초기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와 일대일 대결을 벌인 인물도 아이아스였다. 트로이 벌판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에서 온갖 눈부신 전공을 쌓았던 전쟁 영웅 아이아스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결국 자결하고 만다. 그를 분노로 미치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은 저 유명한 ‘무구재판’에서 비롯되었다. 아킬레우스가 죽고 난 뒤 그의 무구(武具)를 차지하기 위한 재판에서 경쟁자 오디세우스에게 졌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 /출처=영화 ‘트로이’ 중에서
아킬레우스. /출처=영화 ‘트로이’ 중에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숱한 그리스의 영웅들 가운데 최고는 단연 아킬레우스였다. 트로이의 용맹무쌍한 전사 헥토르를 무찔러 죽인 인물도 아킬레우스였다. 그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이었고, 여신은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창과 방패 등 무구 일습을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그토록 용맹했던 아킬레우스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쏜 화살에 아킬레스건이 꿰뚫려 전사하고 만다. 아킬레우스가 죽자,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차지할 적임자를 선정하는 문제로 그리스군 진영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 그리스 장군들이 참여하는 ‘무구재판’이 열렸고, 탁월한 언변과 설득력을 지닌 오디세우스가 아이아스를 따돌린 것이다.

장기를 두는 아이아스와 아킬레우스. /출처=위키백과
장기를 두는 아이아스와 아킬레우스. /출처=위키백과

텔라몬의 아들(아이아스)이 말을 마쳤다. 그의 마지막 말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라에르테스의 아들(오디세우스)인 영웅이 일어서더니 잠시 땅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장수들 쪽으로 눈을 들어 그들의 기다림에 말문을 여니, 그가 하는 말은 유창하면서도 세련되기까지 했다.

“펠라스기족이여, 내 기도와 여러분의 기도가 이루어졌더라면, 이토록 큰 경쟁에서 후계자로 인한 분쟁은 없었을 것이오. 그대는,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무구를 갖고, 우리는 그대를 갖고 있겠지요. 하나 공정하지 못한 운명이 나와 여러분에게 그를 거절한 마당에, 위대한 아킬레우스로 하여금 다나이족을 따라나서게 한 자보다 대체 누가 위대한 아킬레우스의 후계자로 더 적합하겠소? …… 그대들은 공적에 따라 이 사건을 판결하시되, 텔라몬과 펠레우스가 형제였다는 것이 아이아스의 공적이 되게 하지 마시고, 이토록 큰 상을 놓고서는 촌수가 아니라 무공을 따지도록 하시오!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중에서

그리스군 최고의 외교관이자 달변가의 명연설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장장 253행이나 길게 이어진다. 그리스군 장수들의 집단은 오디세우스의 명연설을 듣고 감동했다. 그리고 무구재판 결과는 달변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명백히 보여주었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들은 말 잘하는 자가 가져갔던 것이다. 그토록 많은 무공을 쌓았던 아이아스는 경쟁자인 오디세우스에게 졌다는 사실에 격분한다. 격정이 지배할 때는 사리를 분별하기 어렵다. 그가 분노에 휩싸이자 ‘트로이에서 훔쳐 온 가축들’조차 그리스 병사들로 보였다. 그는 심지어 말을 기둥에 묶어두고 채찍질하면서 그 말을 오디세우스로 착각할 정도였다. 분노에 미쳐 날뛰며 가축들을 도륙하던 그는 끝내 자결하고 만다.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가 쓴 <아이아스>는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패자로 전락한 영웅의 내면에 흐르는 심리를 묘파한 비극작품이다.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수습하는 아이아스. /출처=위키백과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수습하는 아이아스. /출처=위키백과

미국의 고전학자인 폴 우드러프는 공동체 내에서의 보상과 분배 문제를 빗대어 ‘아이아스의 딜레마’라고 명명했다. 공동체 안에서 공로를 쌓은 사람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 명예를 얻지만,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엉뚱한 경쟁자가 가로챈다면 그 사람은 분노와 모멸감뿐 아니라 극심한 좌절감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보상과 분배 문제를 소홀히 다루다가 아이아스와 같은 훌륭한 장수를 잃게 되면 조직으로서도 결국 손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다룬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도 아이아스가 잠깐 등장한다. 자결한 아이아스는 저승에서조차 오디세우스를 외면한다. 아이아스가 겪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짐작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호메로스. /출처=위키백과
호메로스. /출처=위키백과

그 밖에도 세상을 떠난 사자들의 다른 혼백들이 괴로워하며
서서 저마다 염려되는 것을 물었소. 오직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의 혼백만이 저만치 떨어져 서 있었는데 함선들 옆에서
아킬레우스의 무구들을 놓고 재판이 벌어졌을 때
내가 그에게 이긴 것에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것이지요.

……

아이아스를 향해 나는 이렇게 상냥한 말을 건넸소.
‘아이아스여, 나무랄 데 없는 텔라몬의 아들이여! 그 저주받을 무구들
때문에 내게 품었던 원한을 그대는 죽어서도 잊지 않을 작정이시오?
자, 왕이여! 그대는 이리 와서 내 말과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그리고 그대의 노여움과 완고한 마음을 풀도록 하시오.’
내가 이렇게 말했으나 그는 한마디 대답도 없이 세상을 떠난
사자들의 다른 혼백들을 뒤따라 에레보스로 들어가 버렸소.

-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제11권 제541∼567행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의 시장가치는 주식시장이 열릴 때마다 시시각각 변동한다. 수많은 투자자가 기업의 가치를 매일 새롭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치 변동을 초래하는 요소 중에는 경영진 사이의 불화도 포함된다. 회사가 본업을 위해 모든 가용자원들을 총동원하더라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마당에, 조직을 이끌어가는 총사령관과 야전 사령관 사이에 심각한 분쟁이 발생한다면 ‘대중의 인기’에 기반을 둔 조직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희진 대표는 “내가 하이브를 배신한 게 아니라, 하이브가 나를 배신한 것”이라고 분노했다. 어떤 개인이 조직 내에서 유난히 탁월한 성과를 보일 때 ‘성과와 보상 사이의 간극’이 극도로 벌어질 때가 있다. 방시혁 의장이 이끄는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어도어 대표 사이의 극한 갈등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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