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vs 장’ 고려아연 지분 싸움, ‘5000원 배당’보다 중요한 것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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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vs 장’ 고려아연 지분 싸움, ‘5000원 배당’보다 중요한 것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3.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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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금 더 받고 덜 받고보다 향후 지속적인 경영 성과 창출 능력이 우선시돼야

75년 동안 끈끈한 동업자 관계를 이어오던 영풍과 고려아연 그룹이 올해 주총을 앞두고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다. 고려아연의 경영을 맡고 있는 최씨 가문의 최근 행보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장씨 가문 쪽에서 이번 주총 일부 안건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관 변경뿐만 아니라 배당 정책에 대해서까지 사사건건 문제 삼아 상대방을 비난하고 반대표를 결집하는 형국은 기나긴 동업자 관계가 심각한 갈등 국면으로 깊숙이 진입했음을 실감케 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고려아연의 현재 시가총액은 9조5030억원이며 시가총액 순위 48위에 달하는 세계적인 금속 제련업체이다. 최근 건설경기를 비롯한 전방 산업의 경기 침체에 따른 주요 금속 시세의 하락으로 주가 흐름이 부진하지만, 고려아연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탁월한 금속 제련 기술을 보유한 우량 기업이다. 앞서 2022년 11월에 최씨와 장씨, 두 가문의 지분 경쟁이 개시될 무렵만 하더라도 고려아연의 시가총액 순위는 23위까지 치솟은 바 있다.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세계적인 기술력과 이익 창출 능력을 두루 겸비한 고려아연만큼 튼튼한 회사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고려아연과 영풍이 7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단단한 동업자 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최근에 와서 급작스럽게 지분 경쟁과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까닭은 무엇일까. 이른바 소유와 경영이 온전히 분리되지 못한 채, 창업 이래 변치 않고 지속된 불완전한 지배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내재했었다고 볼 수 있다.

무릇 어떤 기업이든 ‘동업자 관계’는 시간의 이빨을 견디기 힘든 법이다.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모든 동업자 관계는 사실 가장 위험한 이웃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아무리 굳은 맹세와 언약으로 동업자 관계를 단단히 유지한다손 치더라도 창업 2세와 3세에 다다르면 ‘동업 관계’는 창업자들의 초심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마련이고, 동업을 맺은 상대방 가문과의 교류 또한 점점 더 소원하고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영풍·고려아연 그룹은 상대적으로 사업 환경 변화가 느린 ‘비철금속 제련’ 한 분야에만 오롯이 집중해 온 덕분에 75년이라는 세월 동안 안정적인 동업자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1949년 공동 창업한 이래 영풍·고려아연 그룹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 공동 소유와 공동 경영에 충실한 모범생 같은 기업이었다. 경영진이 정치적인 외풍에 휩쓸리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재벌 2·3세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비리와 일탈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로지 금속 제련 분야에만 한 우물을 파는 ‘외골수 은둔형 기업’에 가까웠다. 이처럼 그저 조용하기만 하던 영풍과 고려아연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창업 3세인 최윤범 회장으로 넘어간 이후부터였다고 판단된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사진=고려아연​

1975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고려아연을 총괄 지휘하게 된 최윤범 회장은 부임하자마자 50년 이상 집중해 온 금속 제련 사업 일변도에서 과감하게 탈피하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그 결과, 그린 수소를 포함하는 신재생 에너지, 니켈 제련을 비롯한 2차전지 소재산업, 자원 리사이클링 등 미래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 다양한 파트너들을 끌어들이고 대규모 자본까지 유치했다. 이런 과정에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두 번에 걸친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이뤄졌고, 보유 중이던 대규모 자사주 매각을 통해 LG화학 등 우호적인 사업 파트너와 지분을 맞교환하는 한편 국내외 일부 금융기관까지 우호적인 지분투자자로 새롭게 편입시켰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최씨 일가는 최근 2년 동안에 기존 지분율(영풍정밀 포함 15.31%)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려아연 지분율을 대폭 끌어올려 마침내 장씨 일가의 지분율을 넘어섰다. ‘고려아연=장씨 일가 소유’라는 70년 이상 유지되어 온 공고한 틀이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만 셈이다. 장씨 가문의 입장에서는 이토록 짧은 기간에 ‘고려아연 지배주주’의 위치마저 위협받을 줄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듯하다. 왜냐하면 장씨 가문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창업 초기부터 오래도록 줄곧 32% 전후를 유지해 온 데다가, 장씨 가문의 지분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최씨 가문이 자신들의 지분율을 뛰어넘는 수준까지 재빠르게 지분을 끌어올릴 자금력이 언제나 결여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공식적으로 양가 사이에 ‘지분 경쟁의 서막’이 오른 건 2022년 여름에 한화에너지가 고려아연의 지분을 5% 이상 확보하면서였다. 당시 영풍의 장형진 고문은 최윤범 회장 주도로 새로운 주주(한화에너지)를 끌어들이는 걸 몹시 꺼려했고, 이사회 참석마저 거부함으로써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지분 확보 경쟁은 6%가 넘는 대규모 자사주를 최윤범 회장이 의도한 대로 일시에 처분한 일이다. 고려아연은 이미 2차전지 소재사업 분야에 진출하면서 LG화학과 전구체 합작 사업을 진행해 온 터여서 지분 맞교환 방식의 자사주 매각 또한 경영 전략상 매우 타당해 보였다. 그러나 장씨 가문의 입장에서 보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의결권이 없던 중립 지대의 대규모 자사주가 한순간에 최윤범 회장에게 우호적인 여러 업체로 한꺼번에 넘겨진 셈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미래 성장 전략. /자료=고려아연 홈페이지​
고려아연의 미래 성장 전략. /자료=고려아연 홈페이지​

최씨 가문의 고려아연 지분율이 순식간에 20%대 후반까지 치솟자 장씨 가문에서도 부랴부랴 온갖 계열사를 총동원해 지분을 추가 매입하는 데 열을 올렸다. 최씨 가문도 달아오른 지분 경쟁에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영풍·고려아연 그룹 계열사 가운데 최씨 가문 사람들이 경영을 지배하고 있는 영풍정밀이 여유 자금을 총동원하다시피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 매수하는 한편, 종중(해주 최씨)에서도 주식 담보대출까지 동원하여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다. 최씨 가문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린 건 현대차 해외법인(HMG Global LLC)을 대상으로 또다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성공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고려아연의 소유권은 1974년 설립 이래 줄곧 장씨 가문에 속해 있다가 마침내 진정한 '공동 소유' 단계로 바뀌었고, 실질적으로는 최씨 가문이 ‘소유와 경영’ 모두 장악한 형국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되돌아보면 사태가 여기까지 진행되는 동안에 장씨 가문의 대응이 지나치게 무기력하고 안일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장씨 가문이 경영하는 영풍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려아연과는 경쟁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영 성과가 좋지 못한 편이다. 동업자 관계이자 계열 자회사인 고려아연이 끊임없는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세계 최고의 금속 제련기술을 발전시키는 동안, 영풍은 '환경오염 문제'조차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환경당국으로부터 조업 중단 제재를 받아왔을 뿐 아니라, 제련소 내에서 작업중이던 근로자들이 독성 물질 유출 등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고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며칠 전에도 석포제련소 냉각탑 청소에 투입된 하청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또다시 일어났다. 지역 환경 단체와 주민 피해 대책위원회 등에서는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석포제련소 폐쇄 및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영풍 석포제련소. /사진=영풍​
영풍 석포제련소. /사진=영풍​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최근 14년 동안 양사의 영업실적만 비교해 보더라도 영풍은 고려아연과는 경쟁 자체가 어려운 수준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매년 꾸준한 영업이익을 창출해 온 데 비해, 영풍은 14년 가운데 6년은 영업 적자를 면치 못하는 등 들쑥날쑥한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영업실적을 누적 기준으로 합산해서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누적 매출액 규모만 보면 고려아연이 영풍에 비해 2.2배 정도이지만 누적 영업이익 규모는 18.4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고려아연이 영풍을 압도하는 높은 수익성을 갖춘 데에는 최씨 가문의 창업 2세 경영진이 금속 제련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창업 2세 형제들은 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의 경영을 릴레이 방식으로 장기간 이끌어왔는데, 이들 창업 2세 형제들이 고려아연의 금속 제련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연 제련업체들은 원재료인 아연정광으로부터 아연과 납, 금, 은 등을 뽑아내고, 아연 제련 수수료(TC 마진)를 받는 비즈니스 구조를 가졌다. 이때 아연과 납 등을 빼내고 남은 부스러기(아연 잔재)는 대개 산업폐기물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고려아연은 2005∼2010년 무렵에 아연 잔재를 고도로 정제하는 기술들을 개발하고 아연 잔재 처리 설비를 대규모로 확장한 바 있는데, 이 무렵부터 아연과 납, 금과 은뿐만 아니라 고가의 희귀금속까지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술 개발 덕분에 경쟁 업체 대비 금속 제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향상됨으로써 세계적인 아연 제련업체들이 아연 가격 하락과 높은 전기료 부담 때문에 적자에 허덕이거나 제련공장 가동을 축소하는 와중에도 고려아연만큼은 독야청청 높은 수익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주총을 앞두고 장형진 고문 측에서 정관 변경 안건과 기말 배당금 지급안에 대해서 일찌감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정관 변경 안건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이니만큼 최윤범 회장이 의도하는 대로 통과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배당금 축소(2022년 주당 2만원→2023년 중간배당 포함 주당 1만5000원) 안건은 양측의 표 대결 결과가 특히 주목된다. 고려아연 측에서는 자사주 매입소각분까지 포함하면 2023년 주주환원율이 오히려 전년보다 향상되었으며, 기말 배당금을 주당 1만원으로 상향하면 주주환원율이 76%에서 96% 수준까지 올라간다고 반박한다. 주주환원 총액 또한 2023년 4027억원으로 2만원을 배당했던 2022년(3973억원)보다 오히려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 모두 나름의 근거는 있으나 대체로 장형진 고문 측의 주장이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왜냐하면 고려아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장 평균을 훨씬 웃도는 배당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으며, 2023년 주당 1만5000원을 배당하더라도 주주환원율이 76%에 달해 선진국 평균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영풍의 최근 10년 누적 배당금은 1791억원인데, 10년 누적 당기순이익 1조4299억원에 비하면 주주환원율이 12.5%에 불과하다. 영풍은 2016년부터 주당 1만원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8년 연속으로 불변이다.(고려아연은 2016년 주당 8500원 배당에서 2022년 주당 2만원까지 지속적으로 늘려오다가 이번에 1만5000원으로 낮추는 것이다)

올해 고려아연의 주총이 특히 주목되는 건 정부에서 추진 중인 ‘기업 레벨업 프로그램’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이 주주환원율을 76%까지 끌어올려 배당하겠다는 데에도 일부 자산운용사에서는 ‘전년보다 배당금을 축소하는 안건’에 대해서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그만큼 주주환원 정책에 민감한 시류를 반영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에서도 고려아연의 '배당금 축소 안건'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을 밝혀 주목을 끌었다. 양가 가문을 제외하고는 최대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에서는 과연 어느 쪽 편을 들어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경영권 다툼이나 지분 경쟁은 양가 집안의 명운이 달린 중차대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고려아연에 투자한 주주들 입장에서 보자면, 최씨든 장씨든 누구라도 상대방에 비해 경영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들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안정적으로 고려아연을 키워주길 바랄 뿐이다. 장래에 경영 성과가 더욱 좋아진다면 주당 5000원의 배당금을 지금 당장 더 받든 덜 받든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풍 장형진 고문(왼쪽)과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영풍 장형진 고문(왼쪽)과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장기간 경영 성과 비교, 최씨 가문 창업 2세들이 개발해 온 독보적인 금속 제련 기술, 젊고 유능한 창업 3세 최윤범 회장의 신사업 추진 방향 등을 두루 감안해 보면 장형진 고문 측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는 주주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듯하다. 다만, 양 가문의 지분율 차이가 초박빙인 현재 상태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듯하다는 점이 도리어 걱정이다. 지분 경쟁이 치열할수록 온갖 계열사들을 무리하게 동원하여 지분 싸움을 계속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고, 상대방을 향한 반박과 비난도 그 수위를 높여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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