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기 파문’ 메리츠증권 최희문의 영전, 금융당국 뭐하나?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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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기 파문’ 메리츠증권 최희문의 영전, 금융당국 뭐하나?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12.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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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기업 ‘돈맥경화’ 우려 초래한 최 전 대표, 그룹 경영 총괄… 당국이 ‘앙급지어’ 막아야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자기 탓이 아닌데 예측할 수 없는 외생적 원인으로 억울한 처지가 되는 것을 나타내는 재미있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송나라 때 얘기로 ‘성에 불이 나서 성문 밖의 물을 길어 불을 껐는데, 그 바람에 연못 바닥이 드러나 그곳에 살던 물고기가 모두 죽었다’라고 한다. 이 상황을 빗대어 갑작스러운 재앙이 엉뚱하게 물고기에 미쳤다는 뜻으로 ‘앙급지어’(殃及池魚)라는 고사성어가 전한다. 그런데 최근 메리츠증권 사태를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의 앙급지어가 있는 것 같다. 최희문 전 대표가 13년 전 등장한 이후 메리츠증권은 순이익 40배 이상 규모로 성장했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영업행태에 관하여 금융감독원이 불공정 여부 검사를 나가고 CEO가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등 심각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장기간 지속했던 비즈니스 방식에 대해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 갑자기 문제 삼는 것을 두고 메리츠증권은 앙급지어의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올해 1월 메리츠증권이 나서서 롯데건설에 1조5000억원 규모의 구제 자금을 공급할 때만 해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상생 금융의 우수 사례라며 공개적으로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어려움에 빠진 건설사에 담보까지 잡았음에도 고리대금 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메리츠증권의 영업방식에 대해 금융당국은 침묵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은행은 공공재’라며 성과급 잔치를 지적한 뒤로는 당국의 금융 산업을 보는 잣대가 달라졌다. 아울러 메리츠증권의 고액 연봉과 성과급을 지향하는 영업방식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편 연초부터 증권시장을 뒤흔든 주가 폭락이 CFD 계좌, 김익래 전 키움증권 회장 등 제도권 증권 산업과 연루되자 금감원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러한 가운데 이화전기 거래 직전 메리츠증권이 보유 주식을 처분하는 신공을 보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10월에 사모 CB(전환사채)와 관련해 메리츠증권 검사를 벌인 금감원은 불건전 영업 행위를 적발하고 이를 발표했다. 이로 인해 같은 달 17일에는 최희문 대표가 국정감사에 출석했으며, 위증 혐의로 고발까지 당했다. 메리츠증권 처지에서는 연초 은행의 공공재 발언에서 시작한 금융 산업 사정(司正) 분위기에 본보기로 돌을 맞았다는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 당연히 그들 관점에서는 앙급지어의 첫 번째 물고기가 된 셈이다.

에이치앤비디자인 사모CB 발행 신고서.
에이치앤비디자인 사모CB 발행 신고서.

그렇다면 메리츠증권 말고 또 다른 곳에 억울한 물고기는 없는지 찾아보자. 일각에서는 메리츠증권의 사모 사채 비즈니스가 불공정 거래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불공정 거래 의혹으로 최근 회자되는 대표적 사례는 메리츠증권에 사모 CB(전환사채)와 BW(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발행한 코스닥 상장사 ‘에이치앤비디자인’(227100)이다. 지난해 6월 29일 에이치앤비디자인은 메리츠증권에 사모 CB 2건 및 사모 BW 1건, 액면 금액 총 270억원의 사모 사채를 발행했는데, 이 금융거래가 사실상 CB를 이용한 ‘대출 꺾기’라는 지적이 있다. 과거 은행의 대출 관행이었던 꺾기는 대출 금액의 일정 부분을 예금 또는 적금 등으로 은행의 영업실적을 부풀려 주는 불공정 영업 행위였다. 사모 사채 발행도 발행기업에 대한 일종의 대출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메리츠증권이 사모 사채 발행 금액과 같은 규모의 담보를 설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발행기업은 자금을 활용하기 어렵고 표면이자율이 0%이지만(그러나 만기에 연 복리 4%를 자급한다), 담보신탁의 수익자를 메리츠증권으로 하여 담보 채권의 이자를 이익으로 가져간다. 또한 이들 사모 사채는 발행회사에 발행회사가 지정하는 자가 50% 한도에서 사채를 매도하게 하는 콜옵션 권리를 부여하는데(발행회사는 제삼자를 통해 원하는 대로 지분을 조정할 수 있다), 메리츠증권이 받는 담보증권의 이자는 콜옵션 프리미엄(대가)이다. 콜옵션은 발행회사에 매수 권한을 주고 메리츠증권은 무위험 이익을 얻는 구조다.

한편 메리츠증권 사모 사채 거래는 횡령·배임, 부도 등과 상관성이 높은 것으로 정치권까지 알려졌다. 금감원이 이용우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메리츠증권이 사모 사채를 통해 자금을 공급한 기업 중 18개가 부적절한 사유로 거래정지됐다. 자금 공급 규모는 무려 7800억원에 이르는데, 절박하거나 부적절한 자본거래를 기획하는 기업에 자금 공급 대가로 높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수수료율은 알 수 없으나 공금리 약 2배 수준으로 5%를 받는다는 가정을 하면 수수료는 약 390억원이다. 성과지향이 강한 메리츠증권의 IB 담당팀에 이러한 비즈니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임이 틀림없다. 물론 이 팀은 높은 수익성 때문에 경영진이 유치했을 것이다. 금융사업의 과도한 성과지향에 대한 정치적 반감과 검사 결과 드러난 부적절한 사모 사채 영업 행위가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메리츠증권은 피할 수 없는 평판 붕괴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러나 진짜 억울한 곳은 따로 있다. 메리츠증권이 주로 활용한 도구인 사모 CB와 사모 BW 등이 사모 사채인 것은 이미 알 것이다. 사모 사채의 순기능은 자본력, 영업력 등이 부족하지만 기술력이나 미래 성장성이 있는 중소기업이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 유치를 쉽도록 돕는 것이다. 이른바 ‘엔젤’ 또는 ‘벤처’ 기업으로 불리거나 신기술 도입에 자금이 필요한 기업은 일반적인 투자 평가 및 투자 수단으로는 자금 유치에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성장 기업이 투자금의 안정성 확보와 미래 가치 보장을 위해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고 맞춤형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수단이 사모 사채다. 그러나 메리츠증권 사태를 통해 사모 사채를 금융당국과 정권, 언론이 일방적으로 악마화하면서 사모 사채의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데 제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사모 사채를 이용하는 기업은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것이며 증권회사도 이를 취급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성장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에 돌아갈 수 있다. 메리츠증권 사태가 초래한 앙급지어의 진짜 억울한 물고기는 성장 자금이 긴급한 기업들이 될 전망이다. 성장 산업 억제라는 피해는 결국 사회적 피해로 확산할 것이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올해 여러 가지 파문을 일으킨 메리츠증권은 최근 새로운 CEO를 맞이했다. 13년간 메리츠증권을 성과지향으로 몰아오다 결국 물의를 일으킨 최희문 대표가 물러난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 전 대표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영업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 물러난 것은 아닌 것 같다. 메리츠금융그룹은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하며 ‘원-메리츠’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데, 최 전 대표는 부회장 직함을 유지하며 그룹 자산운용 부문장을 담당한다. 메리츠금융그룹은 형식적으로 법인대표를 물러난 최희문 부회장의 과거 성과를 백분 인정하고 법적인 지배구조를 넘어 실질적으로 그를 메리츠증권 회장으로 추대한 효과를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도 메리츠증권의 불공정 영업과 관행의 줄을 타는 성과 지향적 모험형 비즈니스는 오히려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겠다.

최근의 메리츠증권 사태는 앙급지어라기보다 사필귀정이라는 생각이다. 진짜 피해를 본 물고기는 신기술 등을 가진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금융시스템이다. 또한 사실상 최희문 부회장의 입지 강화로 메리츠증권이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추구할지, 또 어떻게 새로운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지 금융당국은 바짝 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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