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곧 끝날까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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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은 곧 끝날까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6.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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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유월이면 누구나 한두 번쯤 ‘전쟁과 평화’를 떠올릴 법하다. 올해는 ‘전쟁과 평화’를 체감하는 강도 자체도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뜬금없이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마침 올해는 한국전쟁 종전 70주년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고통을 모두 겪은 세대들은 빠른 속도로 퇴장하고, 전쟁의 비극을 조금도 체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이 어느새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9할에 육박한다. 통계청 인구 상황판에 따르면 올해 기준 우리나라의 70대 이상 인구 비중은 고작 12%에 불과하니 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진=이미지투데이
우크라이나 전쟁 /사진=이미지투데이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하더라도 전쟁은 금세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전쟁 양상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엎치락뒤치락하는 듯하다. 게다가 주말에 느닷없이 터져 나온 바그너 용병 그룹 수장의 군사 쿠데타 소식까지 더해져 혼란스럽기만 하다. 도대체 그들 두 나라는 왜 이토록 처절한 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인류의 역사를 장식했던 대전쟁들은 수십만의 군대가 막대한 자원을 총동원하여 사생결단으로 맞붙어 싸운 만큼 인류의 삶에 오래도록 파괴적인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지만, 그토록 끔찍한 전쟁의 결과에 비해 그 전쟁의 원인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보잘것없는 한 인간의 헛된 욕망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고대의 여러 이름난 전쟁과 인물들의 이야기에 유난히 탐닉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이같은 전쟁의 고약한 특성을 특유의 입심으로 다음과 같이 재치 있게 표현했다.

이 수천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
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호라티우스)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사진=나무위키
몽테뉴 /사진=나무위키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낳게 만든 저 유명한 트로이아 전쟁도 결국 따지고 보면 파리스라는 젊은 왕자의 불장난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미케네 왕국의 절세 미녀 헬레네를 납치한 일 때문에 그토록 많은 고대의 도시국가들이 1000척이 넘는 함대를 이끌고 바다를 건넜고, 무려 10년 동안이나 전쟁에 매달렸다는 걸 생각해 보면 몽테뉴의 말마따나 기가 막힐 일임이 틀림없다.

영화 『트로이』
영화 『트로이』

오늘날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도 따지고 보면 러시아의 지도자 푸틴이 스스로 21세기판 ‘러시아 제국의 차르’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무슨 기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란 말인가. 지금으로부터 211년 전인 1812년에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이끄는 60만 대군이 명목상의 동맹국이었던 러시아를 침공한 것도 자신을 전 유럽의 황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 퇴각하는 나폴레옹 /사진=위키백과
모스크바에서 퇴각하는 나폴레옹 /사진=위키백과

오랜 세월 동안 옛 소련 연방의 종주국이자 우크라이나에게는 큰 집이나 다름없던 러시아가 대체 무엇 때문에 다짜고짜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간단 말인가. 지금이 도대체 어떤 시절인데? 누군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수십만 군인이 하루아침에 탱크를 몰고 이웃 나라 영토를 마구 짓밟아도 좋단 말인가? 지금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도 아닌데?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 때문에 수도 모스크바까지도 포기하고 끝없이 도망치면서도 기어코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쳤던 그 위대한 러시아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고, 제국주의 군대에 무참하게 침략 당했던 러시아가 도리어 무람없는 침략자로 돌변해 나폴레옹의 군대를 흉내 낸단 말인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에는 ‘1812년 조국전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실제 상황과 가공의 이야기가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마침 그 작품 속에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비롯, 2014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크름 반도 등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지명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그 작품을 쓴 톨스토이는 젊어서 한때 포병 장교로 근무하면서 크름 반도의 군사적 요충지인 세바스토폴에서 터키 군대와 격렬한 전투를 치른 경험까지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보노라면 ‘전쟁과 평화 사이’가 얼마만큼 아득히 멀고도 또한 가까운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세바스토폴 /사진=위키백과
세바스토폴 /사진=위키백과

1812년 전쟁에서 나폴레옹 군대는 끝내 모스크바까지 점령했지만, 내심 러시아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모스크바로 통하는 관문인 보로지노에서 대격전을 치르는 동안 러시아의 저항이 얼마만큼 강렬한지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텅 빈 모스크바를 점령한 나폴레옹 황제의 군대는 곧 닥칠 혹독한 겨울 추위와 기근과 러시아 군대의 반격이 두려워 서둘러 퇴각을 시작했다. 모스크바에서 파리까지는 무려 2000km나 떨어져 있었다. 나폴레옹 군대는 어느새 다친 짐승처럼 끝없이 쫓기는 신세였고, 러시아 국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는 프랑스 군대를 소위 게릴라 작전을 통해 끈질기게 괴롭히며 추격하고 국경 밖으로 쫓아냈다.

​인류의 황제가 될 뻔한 나폴레옹은 패전의 쓰라림을 곱씹으며 퇴각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때 그가 남겼던 말이 걸작이었다. ‘숭고와 우스개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발짝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나폴레옹은 자신이 벌인 전쟁을 스스로 숭고하다고 여겼지만, 톨스토이가 보기에 나폴레옹의 그런 인식이야말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데 불과할 뿐이었다.

“숭고에서 (그는 자기 내부에 무슨 숭고한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스개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발짝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온 세계가 50년에 걸쳐서 ‘숭고! 위대! 위대한 나폴레옹! 숭고와 우스개 사이는 단 한 발짝이다!’라고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선악의 기준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은 다만 자신의 무가치와 한없이 비소(卑小)함을 인정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중에서

​일생을 러시아 민중들의 삶에 대해 각별한 애정과 연민을 지녔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눈에 비친 나폴레옹은 한낱 어리석은 전쟁광일 뿐이었다. 나폴레옹이 마치 전 인류를 구원할 듯이 파죽지세로 전 유럽을 휩쓴 끝에 마침내 대군을 이끌고 모스크바 원정까지 감행했지만, 사실 러시아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은 한낱 전쟁 기술의 천재가 벌인 무모한 침략 전쟁일 뿐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가. 나폴레옹 황제가 대참패 끝에 빠른 몰락의 길로 접어든 단초를 제공했던 모스크바 원정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톨스토이 /사진=나무위키
톨스토이 /사진=나무위키

​2022년 2월에 러시아가 벌인 무모하기 짝이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새 1년 4개월을 훌쩍 넘기고 있지만, 종전의 기미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듯하다. 끝없는 파괴와 소모전으로 변한 참혹한 전쟁도 차츰 양상이 바뀌어 잔뜩 웅크렸던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시작했다. 이런 양상들을 보노라면 ‘1812년 조국전쟁’을 점점 더 닮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 수십만의 군인을 끔찍한 추위와 기근으로 죽게 만든 장본인이 나폴레옹이었다면 지금은 단지 푸틴이 그 역할을 대신 떠맡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톨스토이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권력자들은 한갓 역사의 노예일 뿐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푸틴이 지금까지 저지른 전쟁범죄만 하더라도 이미 차고 넘친다. 전쟁만 아니었더라면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을 꾸려나갈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희생당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어서 빨리 전쟁이 끝나고, 거대한 폐허로 변한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땅에도 예전처럼 평화가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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