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너마이트 손자’가 반대한 노벨경제학상과 ‘승자의 저주’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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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마이트 손자’가 반대한 노벨경제학상과 ‘승자의 저주’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10.13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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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국내 기업이 2015년 2월 경매에 최초로 나온 노벨 경제학상 메달을 낙찰 받았다. 1971년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수상한 메달이다. /사진=이랜드그룹
국내 기업이 2015년 2월 경매에 최초로 나온 노벨 경제학상 메달을 낙찰 받았다. 1971년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수상한 메달이다. /사진=이랜드그룹

‘알프레드노벨을기리는경제과학에대한스웨덴중앙은행의상’

1968년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죽음의 상인’으로 불린 이의 손자가 펄쩍펄쩍 뜁니다. 경제학상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이용하는 ‘홍보 쿠데타’라는 것입니다. “노벨 할아버지는 사회의 행복보다 사익을 더 많이 추구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1년 뒤 첫 수상자를 탄생한 상의 이름이 지저분하게 길어진 이유입니다.

‘해트트릭(hat trick)’. 한 경기에서 한 선수가 세 번의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축구에서 한 명이 세 골을 넣었을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올해 경제학상 수상자가 ‘노벨 해트트릭’을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로버트 윌슨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수(83)입니다.

윌슨 교수는 올해 함께 수상한 같은 대학 폴 밀그럼 교수(72)의 스승입니다. 또 2012년 수상자 앨빈 로스 하버드대학교 교수(68)와 2016년 수상자인 벵트 홀름스트룀 메사추세츠공과대학 교수(71)도 그의 제자입니다. 4년마다 치러지는 올림픽에 빗대면 감독과 선수로 3연패를 이룩한 것입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로버트 윌슨(왼쪽)과 폴 밀그럼 . /사진=스탠퍼드대학교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로버트 윌슨(왼쪽)과 폴 밀그럼 . /사진=스탠퍼드대학교

“폴! (똑똑똑) 폴! (똑똑똑) 나 윌슨이네, 자네가 노벨상을 받았다네”. 윌슨 교수는 수상자 발표 직후 집에서 40m 정도 떨어진 이웃사촌에게 달려갔습니다. 걸어서 2분도 안 되는 거리인 밀그럼 교수의 집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위원회 측의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밀그럼 교수는 잠을 푹 자기 위해 전화기를 꺼놓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왜 (스승님은 아니고) 저만 받은 거지요?”.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에 수상 소식을 들은 밀그럼 교수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축하한다는 스승의 말에 자신만 상을 받았다고 오해한 뒤, 되물은 것입니다. 윌슨 교수는 간밤의 상황에 대해 노벨위원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반응이었다”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밀그럼 교수는 수학을 전공한 뒤 보험계리사로 일하다 스탠퍼드대학에서 통계학으로 석사, 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윌슨 교수가 평생의 은사가 됐습니다. 윌슨의 “경제학 박사를 공부해보면 어떻겠냐”라는 제안에 밀그럼은 흔쾌히 응했고, 경제학자의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고안한 ‘동시 다중 라운드(simultaneous multiple round)’ 경매는 여러 단계의 입찰 과정을 거치며 경쟁자들이 상대방의 입찰가격에 대한 정보를 가늠해볼 수 있도록 고안한 제도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너무 높은 낙찰가격을 써내 ‘승자의 저주’에 빠지거나, 너무 낮은 낙찰가로 정부나 국민이 손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는데 주안점을 뒀다고 합니다.

윌슨 교수는 “나는 전통적인 방식의 경제학자인 반면 폴은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라며 “마켓 디자인과 경매 연구에서 나는 항상 폴이 이끄는 연구에 참여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폴이 자랑스러웠다”라며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비유)’을 이야기했습니다.

윌슨과 밀그럼 교수가 함께 고안한 '동시 다중 라운드(simultaneous multiple round) 경매'에 대한 소개가 트위터에 공유되고 있다.
윌슨과 밀그럼 교수가 함께 고안한 '동시 다중 라운드(simultaneous multiple round) 경매'에 대한 소개가 트위터에 공유되고 있다.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윌슨과 밀그럼 교수는 ‘진정한 스승’이라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왜 저만 받은 거지요??? 국적은 다르지만 선생님들의 겸손과 사람됨에 감명 받습니다” “제자가 너무 뛰어나면 스승으로서 참기 어려운 충돌도 있었을 텐데 자기보다 출중한 제자를 질투해 경쟁하거나 망치지 않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조언하여 결과를 창출하게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여러번 한 진정한 스승이다” “사제 간에 수직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이 존중하는 선진적 문화가 부럽다” “진정한 학자들은 참 순수한 것 같다” “노벨상도 꿀잠을 이길수 없었다 꿀잠이 최고지”.

“제자를 3명이나 노벨상을 타게 했으니 본인도 노벨상을 탈 만했네~” “모든 참된 스승은 위대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 때 자신보다 나은 후학을 길러내는 것은 내키는 일도 또 쉬운 일도 아님” “축하드립니다. 우리나라도 저런 훈훈한 소식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왜 미국 대학에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까? 우린 노벨상을 노리기보다 이걸 더 깊게 국가적으로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교수들이 학교 안팎에서 사판승 노릇하기 바쁘고, 미국교수들은 사회문제를 캠퍼스 안으로 가져와 학문적인 논증을 하기 바쁜 게, 결국 노벨상 노골드와 골드러시의 차이인 듯”.

2017년 코리안웨이 인도 원정대의 등반 당시 맨왼쪽이 김창호 원정대장이다. /사진=영원아웃도어
2017년 코리안웨이 인도 원정대의 등반 당시 맨왼쪽이 김창호 원정대장이다. /사진=영원아웃도어

“그들을 용서합니다, 판사님.” 2004년 7월 6일 히말라야에서 권총 살인범에게 죽을 뻔했던 산악인은 태산과 같은 마음을 내어줍니다. 8000미터가 넘는 낭가파르바트를 하루빨리 오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14년 뒤 오늘(10월 13일) ‘영원한 대장’ 김창호는 눈 덮인 산에서 잠듭니다. 그에게 산이란 노벨상처럼 도전하고픈 혁신은 아니었을까요.

“지도에 없는 설산을 발견했을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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