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R’ 희생양과 화신(化身) 사이에서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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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R’ 희생양과 화신(化身) 사이에서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5.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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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사진=넷플릭스
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사진=넷플릭스

인도 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의 초반 도입부는 강렬하다. 제국주의 국가 영국이 이미 ‘시간적 과잉’과 ‘공간적 과잉’을 갖추고 무궁무진했던 인도에서 헤매지 않았다면, 그들은 거침없이 순식간에 동아시아 모든 국가로 들이닥쳤을 것이다. 영국을 수백 년 동안 묶어두었던 인도의 저력이 장면마다 배어있다. 그리고 지금 영국의 수상은 인도계인 수낵이다.

식민지 시절 앞잡이 경찰로 위장한 저항군의 전사와 납치된 소녀를 구하려는 부족의 지도자가 손을 맞잡는 순간 영화는 박동한다. 인도에는 수많은 부족과 그들 고유의 언어, 그리고 종교가 용광로처럼 뒤섞여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외세의 침략 앞에서는 쉽게 허점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들에겐 단결만이 유일한 과제처럼 여겨진다.

의사소통이 복잡한 단계와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평상시에는 ‘제3의 물결’ 정보혁명의 맨 끝자락에 있는 인공지능(AI) 혁신의 원천인 빅데이터가 풍부하다는 것이,고 딥러닝(Deep Learning)의 특이점에 도달하는 속도가 중국과 맞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인도계인 팀 쿡 애플 CEO가 인도에서 애플 공장을 증설하거나 머스크가 미·중 간의 무역분쟁에도 불구하고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판교 테크노밸리의 오래된 침체는 우리 IT 산업이 AI 물결에 충분히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약해지고 있다는 전망을 뒷받침하는데, 빅데이터의 보고(寶庫)인 중국이나 인도와 긴밀하게 협력하지 않고 오히려 주도권을 내주고 추월당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도체와 IT 초기산업에 우리가 뛰어들 때와는 다르게, 지금 AI 패권을 둘러싼 경쟁자의 리스트에는 미국·일본·서유럽 외에 중국과 인도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대기업의 족쇄를 더 풀어줘야 하고 단순히 선택과 집중이 아닌 그야말로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 시점이다.

이러한 때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자본 조달과 초기 투자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함의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월의 금리 조절과 옐런의 백도어를 통한 양적완화에서 얻을 수 있다. 연준과 월가가 보여주는 사양산업에서 혁신산업으로의 자본이동을 촉진하는 산업 구조 개편 전략에는 그야말로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가뜩이나 부동산에 몰입하다 AI 특급열차에 올라타지 못하고 20세기 후반으로 후퇴해 K-컬 처나 K-방산에서만 겨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60여년 만에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진입한 지구상 유일한 국가라는 자부심을 강가에 묻어버리고 다시 피난 열차에 올라타는 절박한 심정과 생존본능을 일깨워야 한다.

<RRR>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고문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던 라주가 환각제 같은 가루를 묻히고는 갑자기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영국군을 격퇴하는 장면이다. 일종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남미 국가나, 동남아시아 국가, 지중해 연안국가 등과 같이 공간적 과잉이 일어나는 지정학적 조건에서 100년 이상 제국주의 국가의 착취를 받아온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방어기제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외세에 저항하는 데 있어 환각제를 암살이나 전투를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지만, 현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헬리콥터 머니’는 사실상 화폐·금융 분야의 마약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발권은행의 통화공급과 정부의 사실상 양적완화는 경제성장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 한 자산 가격의 거품과 인플레이션을 동반한다. 물가 상승은 노동자들에게 구매력 감소라는 삶의 질 문제로 연결되고 결국 임금인상 투쟁으로 표출되지만, 쁘띠 부르주아를 포함한 자산가들에게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마약과 같이 금단증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자산 가격 감소를 저지하기 위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경제적·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만이 이 함정을 경험하고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작은 죽음인 쇼크를 오히려 구조조정을 위한 기회로 삼고 신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축적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옐런의 미국 국채에 대한 바이백(Buyback)이 자기 모순적이고 지극히 정치적이며, 결국 또 다른 파국이나 아니면 중국과의 화해를 위한 단초가 될 수 있는지는 미국 대선 결과에 달려있을지라도. 그에 비하면, 우리 사회가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라는 해시시를 계속 피워대는 한 신산업으로의 구조조정은 요원하다.

<RRR>에서 빔의 역할은 춤과 노래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그의 이러한 모습은 라주에게 대의를 위한 희생과 그 희생양이 저항의 화신이 될 때 노래만으로도 민중의 분노를 화산처럼 폭발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두고 깊은 상념에 들게 한다. 춤과 노래가 자본의 전위가 아니라 자기희생과 결합할 때 비로소 포효하고 모두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의 자기희생은 불가능하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도 어림없다. 다만 위험과 수익률의 모순관계만이 존재하며 이 상충관계를 벗어나는 길은 기업의 성장에 달려있다. 그리고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그렇게 달려왔으며, 현재 그 성장을 멈추지 않는 길은 AI 산업에서 전 지구적 지분을 확보하는데 달려있다고 단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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