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 하반기 공채 없앤 은행들 [사자경제]
상태바
“문송합니다”… 하반기 공채 없앤 은행들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1.12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2016년 6월 26일 도전골든벨에 참가한 학생이 ‘태양폭풍’이라는 정답을 맞히지 못하자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정답판에 적어냈다. /사진=한국방송공사 도전골든벨 영상 갈무리
2016년 6월 26일 도전골든벨에 참가한 학생이 ‘태양폭풍’이라는 정답을 맞히지 못하자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정답판에 적어냈다. /사진=한국방송공사 도전골든벨 영상 갈무리

“문과라 죄송해요.”

2016년 6월 26일, 국영방송의 퀴즈 프로그램에 참석한 고등학생은 정답 대신 미안한 감정을 적어 올립니다. 쉰 문제를 모두 맞히면 황금종을 울릴 수 있는데 48번 문제에서 막힌 것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SNS를 중심으로 유행어가 손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문송합니다’. 문과생들의 상대적 취업난을 반영한 이 말은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이풍당당, 문풍당당 등으로.

‘공개채용’. 모두에게 널리 터놓고 일할 사람을 뽑아 쓰는 일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기업들의 일반적인 인력 채용 방식입니다. 달리 말하면 뽑는 머릿수가 가장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취업준비생들이 공채 알림이 나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주요 시중은행이 하반기 공개채용 문을 걸어 잠그면서 취준생, 특히 문과 출신들의 반발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올해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근 3년간 하반기에도 신입 은행원을 뽑은 하나은행은 아직 공채 일정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는 채용 절차를 고려하면 올해는 신입사원 공채를 진행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에 대해 “물리적으로 올해 공채는 없을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기존에 해오던 공채를 앞으로 폐지하겠다는 입장이 확정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하나은행은 올해 상반기에 지역인재 신입 은행원 공채와 수시 채용, 하계 인턴 채용을 진행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잇단 공채 중단으로 은행권의 수시 채용이 정례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잇단 공채 중단으로 은행권의 수시 채용이 정례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서너 차례 수시 채용으로만 인력을 뽑은 우리은행도 하반기 공채를 실시하지 않습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대규모 채용 절차를 진행할 수 없어서 공채를 진행하지 않은 것”이라며 “내년 채용인원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올해보다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잇단 공채 중단으로 은행권의 수시 채용이 정례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문제는 그동안 대학교 문과 출신들의 주요 일자리였던 은행이 정보통신기술(IT) 기업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점포 통폐합과 디지털·비대면 전환이 빨라지는 만큼 문과생들의 조건에 맞는 일반행원 채용 규모는 크게 쪼그라들 전망입니다.

실제 디지털·IT 부문 신입은 수시 채용까지 하며 앞다퉈 뽑고 있지만, 일반직은 공채에서도 모집 분야의 일부에 불과한 게 현실입니다. 지난 9월 공고를 낸 IBK기업은행의 채용 분야를 보면 디지털에 할당된 인원이 26명으로, 응시 제한이 없는 일반행원(30명) 채용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지방은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달 채용 공고를 발표한 대구은행은 일반금융 OO명, ICT(정보통신기술) OO명을 모집한다고 알렸습니다. 이는 인터넷 전문은행들의 급성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젊은 층을 대거 고객으로 끌어들인 이들 은행의 금융 신기술에 위기감을 느낀 것입니다. 인터넷 은행들이 IT 인재를 대거 영입하자 시중은행들도 가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행들의 공채 축소 소식에 누리꾼들은 시대적 변화는 불가피하다면서도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일러스트=픽사베이
은행들의 공채 축소 소식에 누리꾼들은 시대적 변화는 불가피하다면서도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일러스트=픽사베이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은행들의 시대적 변화는 불가피하다면서도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은행들의 채용 비리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애초에 문과는 실무에서 쓰일 곳이 별로 없어요. 공대에 비해서. 우리나라 잘못된 교육시스템이 지금 인문계열 학생들 취업률 바닥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구요. 고등학교 때 문과, 이과 구분 없이 통합 교육을 시켜야 되는데 뭣도 모를 시기의 고등학교 때의 선택으로 인생이 갈리도록 해놓으니... 어휴” “이럴 거면 문과 대학 없애자. 사시는 꼭 부활시키고. 로스쿨 같은 돈 많고 시간 많은 애들한테 유리한 제도 말고” “사실 문과 나오면 우리나라 채용시장에서 찬밥신세임. 학벌 좋고 고시 패스 아니면 고만고만함” “공무원 고졸 특채도 없애라. 학교장 XX X고 접대하고 시험 보는 게 맞냐” “근데 정치하는 곳만 고시 출신 XX 꼰대들이 씨글씨글하니 나라가 걱정이요”.

“은행 업무를 하러 은행에 가지 않고 휴대폰으로 거의 모든 걸 해결하니 인력감축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우리 삶이 더 편리해질수록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곧 은행원도 ai로 대체되지 않을까? 막말로 지금 ai판사도 나와야 한다, 어쩐다 하는 추세에” “요즘 은행 가면 행원들한테 이상한 상품 영업 당합니다. 예전에 은행 갔다가 이상한 상품 가입하라고 권유받아서 그다음부터 은행 안 갑니다” “은행도 무인 시스템으로 가는 상황이다” “은행계열 시스템 X 같아서 실력 있는 개발자는 안 가는 추세임. 전산을 갈아엎어야 하는데 기존 시스템 유지하면서 그게 되냐고”.

“그럼 그럼 뭣하러 공채 하나요. 실력 없는 애들이 평등, 공정, 정의라는 말에 선동되어 지들보다도 실력 없는 권력자 자녀들 몇몇 빽으로 들어간 애들 깐다며 그 난리를 쳤는데. 경력사원으로 들어가면 절대 회사 다칠 일은 없지요.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신입만 줄일 게 아니라 기존 직원들도 짤라야지” “글쎄 지들 윗대가리들은 가만히 앉아서 억대 연봉 졸라 쳐받으면서 잡다한 건 전부 비정규직 만들어 가지고” “불법으로 채용한 금수저들이나 해고 절차 진행하길” “낙하산들 천지가 되겠군” “은행원 연봉도 삭감해야지” “우리가 피땀 흘려 저금한 돈으로 엄청난 천문학적인 퇴직금 챙기는 은행원들”.

‘최대 7억원’으로 연일 화제인 한국씨티은행 특별퇴직 신청자가 전체 임직원의 66%인 2300명을 넘었다. 사진은 지난 7월 고용안정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씨티은행 노조원들. /사진=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
‘최대 7억원’으로 연일 화제인 한국씨티은행 특별퇴직 신청자가 전체 임직원의 66%인 2300명을 넘었다. 사진은 지난 7월 고용안정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씨티은행 노조원들. /사진=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

한편 ‘최대 7억원’으로 연일 화제인 씨티은행 특별퇴직 신청자가 2300명을 넘었습니다. 전체 임직원의 66%입니다. 소매금융이 철수하는 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소는 누가 키우냐’라는 농담이 나옵니다. 주변에는 ‘문송하지 않아도 되는’ 젊은이들이 널렸습니다. 한 누리꾼의 댓글처럼 은행들이 공채를 줄이고 있는 이유가 다음은 아니겠지요.

“DLF, 라임사태 CEO 제재 때문에 시위하는 거 아니죠? 왜 하필 하나, 우리은행만?”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