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 받은 가계부채의 변명 -금융위원장 간담회 유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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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배’ 받은 가계부채의 변명 -금융위원장 간담회 유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1.09.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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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가계부채에 대한 선제 대응을 선언한 이후 가계부채에 대한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 지난 27일 고 위원장은 경제 금융시장 전문가와 간담회를 가졌다고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경제 전문가 면면을 보니 증권사 리서치 센터 출신 6인, 전직 경제지 기자,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들이었다.

고 위원장 표현대로 이들 전문가와 국가 경제의 잠재적 위기라는 18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대책을 논의하고 보도 자료까지 배포한 것은 다소 전시적인 이벤트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추측하건대 가계부채에 대한 고 위원장의 매파적 메시지를 언론에 보도하려는 방편이었던 것 같다.

고 위원장이 발표한 모두 말씀 자료는 그의 의지를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어서 눈여겨 볼 만하다. 과도한 가계부채는 폭탄이며, 이 잠재적인 위험을 제거하려면 ▲위험물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사전에 확실하게 뇌관을 제거해야 하며 ▲경각심을 높여 미리 대비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폭탄이면 그것을 제조한 서민은 테러리스트쯤 되려나 싶다. 보도 자료에는 간담회에 모인 전문가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아마 가계부채에 전혀 권한이나 영향력이 없는 참석자들은 마지막 당부에 당황했을 것 같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글로벌 경제 더블딥 가능성이 높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테이퍼링 가능성과 중국 헝다 부동산그룹 위기로 금융시장 위기 가능성도 크므로, 가계대출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고 전세 대출 증가도 눈여겨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포함했다. 전문가 의견은 금융위원장 모두 말씀에 담긴 주장에 설득력을 보태는 훌륭한 주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신임 금융위원장이 재무부,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금융통화위원을 거친 그야말로 정통 금융관료의 길을 걸어온 것을 보면 그의 행보가 이해되기도 한다. 정부와 은행 주도 관점에서 금융을 통제하는 업무로 거의 30년을 보내다 보니, 금융수장으로서 첫 행보를 보면 금융 속에 사람이 있다는 온기를 느끼기 쉽지 않다.

그저 경제를 탈 없고 흠 잡히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 관료적 관점에서는 가계부채는 폭탄이고, 선제적으로 과감하게 제거해야 하는 뇌관으로 보일 수도 있다. 국가 경제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지하고 탐욕스러워 가계부채를 계속 늘리려는 서민들에게 그 위험성을 강조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손발을 묶거나 목발을 제거해서 주저앉히는 것을 답으로 생각한다는 금융 관료 시각이 엿보이는 것은 오해일까?

고 위원장은 가계부채 억제라는 해법을 통해 부동산과 자산 시장 과열까지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취임 이후 유지하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가 주식시장의 묻지마 투기와 같은 탐욕이 원인이고, 부동산가격 폭등도 정부의 정책 실패보다는 나쁜 가계대출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쓰는 듯하다. 금융위원장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가계대출, 주식시장 버블과 주택가격 폭등이라는 골칫거리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고 위원장의 과도한 가계대출 혼쭐내기에는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가계부채는 정말 사회 독버섯인가? 세계은행은 지난 1월 <세계의 부채 파동>(Global Waves of Debt)이란 특별 보고서를 내면서 세계 부채는 2018년까지 GDP 대비 230%에 도달했고, 2010년 이후 세계의 부채 증가는 글로벌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즉, 한국의 가계 부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2020년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은 104%로 전년 대비 16.5% 증가했지만, 기업 부채 비율 역시 111%로 16.7% 증가했다. 사실이 이러한대도 기업 부채에 대한 언급은 없고 가계부채만 큰 죄악으로 취급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부채의 종류별 구분 없이 국가별 총부채의 증가를 주목하는데, 우리나라의 지난해 총부채 비율은 259%로, 미국 296%, 일본 418%, 영국 304%에 비해 낮은 상황이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우리나라 경제는 국가부채가 43%대로 선진국과 견줘 아주 낮고, 다만 민간부채가 높은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등 선진국은 국가부채를 사상 초유의 규모로 늘렸다. 특히 가장 잘 산다는 미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약 10조달러 이상, GDP의 약 50% 가까이를 기업과 가계에 지원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반면 정부가 외면한 우리나라 가계는 생존 차원에서 부채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경제는 정부, 기업, 가계가 함께 지탱하는 유기적 구조체다. 10년 이상 지속된 저성장 속에서 경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경제 주체는 부담을 떠 안아야한다. 가계소비 → 기업 매출 →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에서 저소득을 가계부채로 유도해서 우리 경제는 살아온 것이다.

이제 와서 아무리 금융만 책임지는 금융당국 수장이라도 가계를 부채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것은 극히 서운한 감정을 떨칠 수 없다. 더구나 주택가격을 잡지 못했다는 국민적 비난을 받던 정부가 청년들의 투기에 대한 화살까지 가계부채 책임으로 돌리니 가계부채 당사자로 억울한 생각도 든다.

고 위원장은 가계부채 문제가 오래된 만큼 되돌리는 과정에서 ‘불편한 시간’이 있을 수 있다고도 표현했다.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인 만큼 가계대출의 원인인 서민들이 희생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서민들이 불편하기만 할까? 이 대목은 잘못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빵’이 오버랩된다.

많은 연구를 보면 세계화 이후 닥친 저성장과 소득 불평등의 시대를 가계는 부채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필자는 퇴직 때 연봉 1억원 이상의 고액 소득자였음에도 주택담보 대출, 자녀 둘의 교육을 감당하면서 평생 마이너스 대출을 놓아 본 적이 없다. 이런 경제 환경에서 많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대비는 꿈도 못 꾸고 퇴직하며, 일부는 영세 소상공인 대열에 합류한다.

또한 많은 청년이 학자금 대출을 해결하지 못하거나 비정규직, 저임금으로 사회 초년생 때부터 자산보다는 부채와 친해져야 한다. 이들에게 부채는 향락 수단이 아니고 하루를 살기 위한 도구이다. 일부 서민 또는 청년은 더 악화할 불평등의 타개책으로 주택이나 주식에 목숨 걸고 투자했다.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과 가계부채, 주택 가격이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 원인을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욕구와 이를 이용하는 정치와 금융이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주택이 사회적 욕구 실현의 1순위라는 연구도 있다. 가계대출 증가, 주택가격 상승에 관한 진지한 연구 결과들은 조금만 신경 쓰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저성장 경제 환경에서 가계대출만 억제하면 금융수장이 원하는 대로 국가 경제가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가계의 소비는 기업 성장의 디딤돌이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총선 패배를 서민 가계대출에 잘못 화풀이하면 오히려 일본형 장기 불황도 무시할 수 없고, 자살률, 범죄율, 우울증 증가라는 GDP로 산출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계대출을 줄여서 국민보다는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고, 금융당국자의 고과평가를 높이겠다면, 경제 성장은 그만두고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추구하는 역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 과거 금융시스템의 위기 때마다 국민 세금으로 방만한 경영을 하던 금융기관의 부실과 부채를 국가가 떠안은 것처럼, 지금은 일시적인 재난 지원으로 생색내지 말고 국가가 가계부채를 국가부채로 대체하는 것이 저성장 극복과 가계부채 위험을 동시에 개선하는 대책일 것이다.

미국 정부가 왜 가계소득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무리하게 정부지출을 하는지, 미국 중앙은행은 금융지원과 저금리를 고수하는지 행간을 읽어봐야 한다. 정부는 가계부채가 단지 돈이라는 관점에서 금융위원회에 맡기는 것보다 국민 복지 차원에서 직접 나서야 한다. 그래도 꼭 가계부채를 회수하고 싶으면 샤일록에 대한 재판처럼 서민 가계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만 도려가기를 바란다.

소크라테스는 신성모독과 청년들을 오도했다는 고발로 마주한 독배 앞에서도 자신의 당당함을 변명했다고 플라톤은 전한다. 2021년 대한민국에서는 가계부채에 대한 변명은 거의 들리지 않고, 누구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돌이켜 보면 필자는 평생을 가계부채의 혜택으로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다.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과 의무감으로 가계부채의 변명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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