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이 계엄을 수습하고 정국을 안정하겠다며 국회 발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긴급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무회의는 금융위원회가 주도한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해서 눈길을 끈다. 주요 내용은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인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확산에 증가하는 자사주 폐단을 막겠다는 취지로, 재벌에는 불편을 주는 것임에도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는 성탄절 전날인 지난 24일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말 8조2000억원이던 상장법인의 자사주 취득이 올해 들어 지난 20일까지 18조7000억원으로 228%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면서 자사주 증가는 주주 환원을 위한 취지가 대부분이지만, 대주주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오용할 수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즉,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제한하고 자사주 관련 공시를 대폭 강화하며 자사주 신탁계약의 상대적 규제 차익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강조한 오용 사례는 일부 재벌이 상속세 등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기업 지배권을 승계하려는 행태에서 관찰되며, 그동안 큰 사회적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자료 2에서 보는 것처럼 자사주를 보유한 회사가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역할을 할 회사에 자사주를 몰아주면, 자사주의 의결권이 살아나며 그 비율만큼 지주회사의 다른 분할 회사 지배력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상증자와 현물 출자라는 자본 거래를 추가하면 지배주주의 기업 지배권은 세금 부담 없이 손쉽게 강화하거나 의도하는 세대에 넘길 수 있다. 금융당국이 한국 자본시장의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들고나온 기업가치 밸류업의 수단인 자사주가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태를 심화할 위험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부담이 적은 기업승계 통로를 차단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이렇게 단호한데도 재벌들 반응은 격렬하지 않다. 이에 비해 이사회의 충실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려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저항하는 중이다. 자사주 마법 규제에 대한 미온적 반응은 대한민국 재벌 현실에 단서가 있다. 자료 3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하는 2024년 기준 기업집단 자료를 뉴스웰경제연구소가 분석한 것이다. 올해 공정위가 지정한 88개 기업집단의 소속 회사 수는 3318개로 자본총액은 1874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상장회사는 11%에 불과하고, 이들 상장회사의 자본총액은 4.36%에 그친다. 상장회사가 주요 자본 조달원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재벌 부의 원천은 비상장 회사에 있다. 비상장 회사는 지분 소유 제한과 지배구조 감독 규제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며 공시의무가 제한적이어서 지배권 승계 등 기업 비밀 유지에도 유리하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88개 기업집단에서 상장회사가 1개 이하인 곳은 무려 29곳이고, 완전 비상장 기업집단도 8곳이나 된다. 상장회사 비율이 10% 이하인 곳은 42개로 전체 기업집단의 48%에 이르고, 상장사 자본총액이 20% 이하인 곳도 26개다. 특히 상장회사가 1개 이하이면서 상장회사 비율이 10% 이하이며 상장 자본이 20% 이하인 기업집단은 14곳에 이른다.
이들 관찰 대상 14개 기업집단 가운데 삼표그룹은 최근 3세 기업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에 이은 지주회사와 피지배 회사의 역합병을 감행했고, 앞으로 비상장법인 사이의 자사주 마법을 실행하면 3세 승계는 완성 단계에 들어갈 수 있다(☞12월 19일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참고). 삼표그룹의 사례에서 보듯이 비상장 기업에 집중된 기업집단에 금융위의 상장사 자사주 마법 규제 조치는 그저 간지럽고 타격 거리에도 미치지 않는 솜방망이에 불과할 전망이다.
재벌이 비상장 기업을 이용하면 일감몰아주기 등 사익편취로 특정 기업을 살찌운 뒤 자사주 마법 등 자본적 거래를 활용하는 방식의 기업승계는 제한하기 어렵다. 결국 ‘제2, 제3의 삼표그룹 기업승계 모델이 출현하지 않는다’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기업집단을 입맛에 맞게 주물럭거리려면 알짜 회사는 비상장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결국 재벌 우량 기업의 자본시장 진출 동기 약화는 자본시장에 큰 싱크홀을 만들어 결국 기반을 크게 흔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