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투자증권 ELF(주가연계펀드) 시장 조성 업무를 맡은 부서의 부정 투자 및 손실 위장 사태(이하 신한증권 사태)를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착잡함과 답답함이 몰려온다. 금융사고 손실이 1300억원으로 과거 2010년 옵션 쇼크 사태 당시 대한투자증권(현 하나증권)이 입은 손실(약 750억 원)을 훌쩍 넘어 역대 최대 규모라는 사실 외에도, 해서는 안 될 엉뚱한 짓으로 사고가 난 뒤 두 달이나 뒤늦게 회사가 알아차렸다는 점도 크나큰 문제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이 신한투자증권은 물론 증권업계를 대상으로 전수 검사에 나섰다.
필자가 보기에 사태의 심각성은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신한증권 사태’ 발생 직전에 신한투자증권은 이러한 종류의 금융사고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도록 할 조치를 전격 실시한다고 떠들어댔다. 지난해 말 <금융회사의지배구조에관한법률>(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 개정안은 지난 7월 3일 시행됐다. 해당 개정 내용에 따라 금융회사는 임원이 지켜야 하는 ‘책무구조도’를 의무적으로 작성해 금융당국에 제출해야만 한다. 일부 언론은 이를 놓고 ‘금융 산업의 중대재해처벌법’이라 비유한다.
2022년 3월 취임한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대표는 책무구조도 도입에 앞장섰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 컨설팅에 착수한 후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자마자 올해 1월 ‘준법경영부’를 신설하고, 4월 금융당국에 증권업계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제출했다. 그런데 정작 개정안이 발효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월에 신한증권 사태가 시작됐고, 신한투자증권은 이를 알지도 못한 채 두 달이 지난 뒤에야 인지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신한투자증권은 금융당국이 도입에 공들인 ‘책무구조도’가 쓸 데 없는 허울뿐인 제도임을 몸소 보여주며, 금융당국을 조롱한 셈이 됐다.
금융당국은 왜 ‘책무구조도’를 도입했을까? 그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불편한 역사가 담겨 있다. 2019년 은행, 증권회사, 자산운용회사 등 금융회사는 총체적으로 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DLF)의 불완전 판매 사태를 일으켰다. 금감원 검사 결과 이들의 위법 부당 판매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에 감독 당국은 하나은행, 우리은행에 기관 경고와 대표자 중징계 조치를 했으나 두 은행의 CEO는 징계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냈다. 금융당국 처분에 피감기관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특히 고령자를 중심으로 한 DLF(파생결합펀드) 불완전 판매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렀으나, 예상을 벗어나 각 금융그룹 임원추천위원회는 두 은행 CEO를 당해 금융지주 회장으로 각각 선정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징계를 부과하자 금융회사 임원 자격을 놓고 충돌한 것이다. 해당 소송에서 법원은 징계를 부과할 만큼 감독 당국이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를 정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에 패소를 안겨줬다. 한마디로 일을 똑바로 해놓고 벌하라는 법원의 지적이었다. 금융당국은 피감기관의 처분 불복에 이어 법정에서도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피감기관에 다시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금융 산업 기강을 잡기 위해 당국이 마련한 것이 ‘책무구조도’다. 여기서 책무는 ‘금융 관계 법령 등에 따라 금융회사 또는 그 임직원이 준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한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의 집행 및 운영에 대한 책임’이며, 대표이사가 임원과 직원에게 중복하지 아니하고 책임소재가 명확하게 책무구조도를 마련하고 책무를 배분해야 한다. ‘책무구조도’에 따르면 과거 DLF 사태처럼 대표이사를 비롯한 관련 임직원은 법규 위반 시 불분명한 제도를 핑계로 빠져나갈 여지가 없어진다.
이처럼 절실한 금융사 배경이 담긴 책무구조도는 변화무쌍한 금융투자업 속성 때문에 도입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는 평가가 있었음에도 신한투자증권은 가장 먼저 책무구조도를 도입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신한투자증권은 라임펀드 사태로 초대형 IB(투자은행) 진입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 금융당국의 평가 개선을 위해서라도 책무구조도 도입에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었다. 대형 증권회사가 먼저 적극 협조하는데 금융당국도 도입 정착에 이바지할 거라는 기대가 컸을 것이다. 이후 신한투자증권은 책무구조도 최초 도입을 이미지 홍보에 십분 활용했다. 그러나 책무구조도 관련 법령이 시행되자마자 신한투자증권은 금융당국 뒤통수를 대차게 치고 말았다.
필자는 과거 옵션 쇼크를 현장에서 경험했다. 경험에 비추어 이번 신한증권 사태는 ‘리스크관리’와 ‘준법 감시’ 시스템에서 사고 징조나 징후를 일상적으로 점검하고 인지했어야 한다. 또한 이들 감시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도록 ‘감사’ 기능이 작동했어야 했다. 해당 사고 발생 부서가 아무리 용의주도했어도 두 달 동안 대규모 파생 손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은 기본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의 총체적 미작동 상태였다고 진단할 수밖에 없다(여기에는 시스템을 묶는 큰 외압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최소한 사고부서 직원들은 관련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신한투자증권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부고발제도’도 작동하지 않은 것을 보면, 신한투자증권에 도덕적 해이에 관대한 기업문화가 흐르고 있다는 의구심도 버리기 어렵다. 여기에 상근감사가 자본시장 경험이 있는 금감원 출신이었음에도 금융사고 사전 예방이나 점검에 무용지물이었던 점도 눈에 띈다. 끝으로 금융 리스크관리는 정밀하고 고도의 금융 지식과 이해력, 경험이 필요한데 위험관리위원회 의장이 언론인 출신인 점도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금융당국이 공지한 <책무구조도 해설서>에 따르면 개정 법안은 7월 3일 시행하며 최초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이후 적용한다. 신한투자증권이 지난 4월 이미 제출했다면 현재 책무구조도는 그 효력을 발생한다. 개정 책무구조도에 따르면 이번 금융사고에서 대표이사는 직·간접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필자 경험에 피감기관은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면 준법 대책과 함께 법을 우회하는 방법도 같이 연구한다. 설사 규제를 피할 비책을 연구 끝에 찾았더라도 기만에 가깝게 ‘책무구조도’ 제도를 영리 목적 홍보에 활용하며 당국의 노력을 조롱한 신한투자증권을 금융당국이 호락호락 용서하기는 정말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